〈동주〉, 한 점의 부끄럼에 대하여


프롤로그 : 인생영화의 정의

인생영화란 무엇일까.

내 심장을 정확히 파고들어,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영화 아닐까.

딴생각이 끼어들 틈조차 없이 러닝타임 내내 그 세계 안에 붙들려 있게 되는 것, 화면이 꺼진 뒤에도 쉽게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고 한동안 그 감정에 잠겨 있게 되는 것. 영화 속 인물과 같은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그 인물이 된 듯한 착각이 들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에도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되는 경험.

나에게 그런 영화는 <동주>이다.

 

 

 

<동주(DongJu; The Portrait of A Po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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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드라마

개봉 2016.02.17.

러닝타임 110분

관객수 117만명

 

 


 

 

1. 단백함이 만드는 깊이

 

 

이 영화는 복잡하지 않다. 괜히 설명하려 들지도 않고, 감정을 과장해 증폭시키지도 않는다. 전체적으로 담백한 태도를 유지한다.

총 제작비 5억 원의 저예산 영화라는 사실이 먼저 눈에 들어올 수도 있지만, 그래서 좋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예산이 적어서가 아니라, 그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가 담백해서 좋다. 흑백 화면으로 시작하는 장면은 생각보다 오래 머릿속에 남는다. 색이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인물의 얼굴과 표정을 더 또렷하게 드러내고, 군더더기 없는 화면 구성이 인물의 감정에 더 집중하게 만든다.

연출은 과장되지 않고, 감정선은 끝까지 절제되어 있다. 울어야 할 것 같은 순간에도 억지로 눈물을 밀어내지 않는다. 그래서 더 아프다. 감정이 폭발하는 대신 서서히 스며들기 때문에, 오히려 관객은 더 오래 그 자리에 머물게 된다. 화려한 장치 대신 인물의 얼굴이 남고, 큰 음악 대신 거칠게 고르는 숨소리와 미세한 침묵이 더 크게 들린다. 화면을 채우는 것은 스펙터클이 아니라 사람의 표정과 눈빛이다.

이 단백미는 풍경을 한 번 더 보게 만들고, 인물의 표정을 오래 바라보게 하며, 대사 한 줄을 그냥 흘려보내지 못하게 만든다. 아무것도 과하지 않기에, 관객은 자연스럽게 그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게 된다. 과도한 상업성과 거리를 두고 있는 그 태도. 이야기를 소비하게 하기보다 마주 보게 만드는 그 태도. 나는 그 점이 좋다.

 


 

 

2. 흑백의 대비가 만든 슬픔

 

 

영화는 윤동주가 일제 경찰에게 심문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시작부터 관객을 안전한 자리에서 끌어내려, 차가운 현실 한가운데 세워둔다. 도망칠 수 없다. 이미 결말을 알고 시작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 뒤로 이어지는 과거 장면들, 고향에서의 평화로운 시간과 가족과 함께하던 일상은 같은 흑백 화면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온도로 다가온다. 색은 없는데 감정의 온도는 분명히 다르다. 그래서 더 잔인하다. 행복한 장면이 오히려 더 슬프게 느껴진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 평화가 오래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저 맑은 얼굴이 결국 심문실의 지친 얼굴로 변해버린다는 사실을.

심문 속 윤동주와 송몽규는 지쳐 있고, 상처 입어 있고, 애절하고, 때로는 분노에 차 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은 이미 많은 것을 빼앗긴 사람의 얼굴처럼 보인다. 그런데 과거의 동주는 맑다. 아직 시대의 무게를 온전히 짊어지기 전의 표정이다. 그래서 더 아프다.

같은 인물인데도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영화를 단번에 붙잡는다. 나는 그 첫 장면에서 이미 빠져버렸다.

 


 

 

3. 저항이 아닌, 참회의 기록

 

 

동주와 몽규는 같은 시대를 살지만 다른 방향을 바라본다. 몽규는 행동하는 인물이고, 현실을 직접 바꾸고자 하는 사람이다. 반면 동주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를 검열하는 인물이다. 앞장서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동주는 얼마나 괴로웠을까. 시대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듯한 감각, 그 무력함을 견디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부끄러움. 초라함. 용기 없음에 대한 자책. 그 감정들이 쌓여 결국 그는 ‘참회록’을 썼을 것이다.

 영화는 중간중간 동주의 시를 나레이션으로 들려준다. 활자로 읽을 때보다 훨씬 더 날것으로 다가온다. 목소리를 통해 전해지는 숨결과 미묘한 떨림이, 시를 하나의 기록이 아니라 한 사람의 고백처럼 느끼게 만든다. 정말 동주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처럼, 나 역시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나는 왜 이렇게 망설이는 걸까. 나는 저 상황에서 무엇을 했을까.

 

 

영화 마지막에 흐르는 「서시」는 그래서 더 크게 남는다. 이 시는 더 이상 교과서 속 문장이 아니다. 시험을 위해 외우던 문장이 아니라, 한 사람이 끝까지 붙들고 있었던 다짐처럼 들린다. 윤동주는 거창한 혁명가라기보다, 시대 앞에서 무력함을 느끼는 한 개인에 더 가깝다. 그래서 더 인간적이고, 그래서 더 솔직하다. 저항의 언어라기보다 부끄러움의 기록처럼 느껴진다. 나는 그 점이 좋다. 그리고 그 복잡한 내면을 조용히 따라가는 이 영화가 좋다.

 


 

 

4. 조용하게 단단히 스며드는 작품

 

 

이 영화는 격렬하게 몰아치지 않는다. 대신 잔잔하게 흐르면서도, 어느 순간 깊은 곳을 건드린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된다. 장면 하나하나가 크게 요동치지 않는데도, 이상하게 마음은 계속 흔들린다. 심문 장면에서 감정이 치솟고, 결국 눈물이 터질 때조차 이 영화는 관객에게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다. 과장된 장면은 많지 않다. 그런데도 마음에 남는 장면은 유난히 많다.

 

 

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이들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그 시간을 견뎌냈을까, 어떤 다짐으로 하루를 버텼을까.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그 질문은 쉽게 정리되지 않고 오래 남는다.

이 정도로 한 인물의 내면을 깊이 따라가 본 영화가 또 있었을까 싶다. 그의 망설임과 부끄러움, 끝내 놓지 못했던 다짐까지 함께 들여다보며 나 역시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동주>는 단순히 잘 만든 영화가 아니라, 내 안에 조용히 자리 잡은 영화로 남아 있다.

보고 나면 괜히 마음 한쪽이 먹먹해지고, 말없이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게 된다. 별이 보이지 않는 밤이어도, 습관처럼 고개를 들게 된다. 아마 앞으로도 나는 이 영화를 몇 번이고 다시 보게 될 것이다. <동주>는 내게 그런 영화이다.

 

(이미지 출처 : <동주> 스틸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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