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부재, 그 속에서 오는 외로움.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 시절부터 끊임없이 진화해 왔지만, 단 한 순간도 완벽히 ‘하나’로 연결된 적은 없었다. 언어와 기술, 문명은 눈부시게 발전했으나 역설적이게도 정치적·사회적 격차는 심화되었고, 인간은 늘 지독한 소통의 부재와 외로움 속에서 살아왔다. 그렇다면 소통의 부재도, 단절의 외로움도 없이 모두가 실시간으로 동기화되어 하나의 거대한 의식으로 묶인 ‘새로운 종(種)’이 탄생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그것은 인류의 오랜 숙원인 유토피아일까, 아니면 세계의 종말을 알리는 지옥도일까. 한국형 좀비 장르의 대가 연상호 감독이 신작 <군체>를 통해, 이 서늘한 질문을 던지며 새롭게 진화된 좀비 영화의 서막을 알렸다.

연상호 감독은 2016년에 개봉해 천만이 넘는 관객수를 동원한 <부산행>으로 큰 성공을 거둬 대중들에게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리고 10년 뒤인 2026년, 우리에게 새로운 좀비의 탄생을 알리며 기존의 좀비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특별함을 안겨주었다.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공식 초청된 <군체>가 이렇게 전 세계 영화 팬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장르의 변주’이다.

뇌가 죽은 시체는 끝났다, 지능적으로 무리 짓는 ‘새로운 종’의 탄생
우리가 알고 있었던 기존의 좀비영화는 대게 사고할 수 없이 본능에만 이끌리는 살아있는 시체였다. 하지만 <군체>의 좀비는 조금 남다르다. 이들은 서로의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점액질로 연결되어 ‘집단사고’를 할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짐승처럼 기어다니던 감염자들이 점점 진화하며 두 발로 걷기 시작하고, 사람을 식별하며 무리를 지어 생존자들을 공격한다. 하나의 좀비만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좀비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 인식하게 되면 이들만의 네트워크로 소통하여 다른 좀비들도 다 같이 사고하며 발전하게 된다. 연상호 감독은 지능형 좀비를 통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을 속도감 있게 전달하며 초고층 빌딩이라는 밀폐된 공간이 주는 고립감으로 관객들에게 끊임없는 충격을 안겨준다.

완벽한 연결이 가져온 디스토피아: 집단성 속에서 지워진 개인들
그렇다면 우리는 ‘집단사고’로 하나가 된 지능형 좀비를 어떤 시각에서 바라봐야할까. 집단사고는 응집력이 강한 집단에서 구성원들이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의견 일치를 유도하여 비판적인 사고 또는 객관적인 대안 탐색을 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지능형 좀비에 감염된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방황하지도 않으며 고독함을 느끼지도 않고 그 어떤 외로움도 없이 완벽한 네트워크의 일부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 일들이 영화 속 좀비들에게만 일어나는 판타지 픽션의 일부일까?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초광속 인터넷으로 24시간 연결된 사회에 살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 개인의 주체성이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느꼈을 것이다. 디지털 알고리즘과 SNS 플랫폼으로 인해 사람들의 취향과 성향은 거의 비슷해져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맞춤형 정보만 소비하며 스스로의 편견에 갇히게 된다. 이런 현상을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라고 부르는데 현대인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소통하기 보다는 집단이 제공하는 동질성에 매몰되기를 스스로 선택하고 있는 상황이다. <군체>의 좀비 바이러스 감염자들이 하나의 지휘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군집을 이루며 진화해가는 모습은 마치 오늘날 각자의 개성을 잃어버린 채 특정 여론이나 온라인 광기에 맹목적으로 동조하는 현대인들의 군중 심리와 다를 바가 없어보였다.


좀비와 인간, 과연 누가 더 나은 ‘종(種)’인가?
영화를 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인간이 좀비보다 더 악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여럿 있었다. 연상호 감독은 <부산행>에 이어 또 다시 극한의 상황에 처한 인간의 인간성에 대해 묵직한 철학적 질문을 던져낸다. 하나로 묶인 감염체들은 이미 완벽한 효율성과 압도적인 속도와 개체수를 자랑하는 반면에 초고층 빌딩에 고립된 인간들은 생존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불신하고 오해하며 여전히 소통의 부재 속에 놓여 끊임없이 갈등한다. 수 많은 역사가 말해주듯이 아직도 인간의 오랜 습성, 정치적 사회적 불통이 하나로 연결되어야 되는 순간에도 그들의 발목을 잡아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가 끝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그 모든 것을 이겨내는 인간성의 가치다. 소통의 부재 속에서 오는 외로움과 불완전함, 그리고 서로 다른 생각들이야말로 스스로 사고하며 판단하는 인간임을 증명하는 유일한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부산행> 이후 10년, 연상호 감독은 단순히 스케일만 키우거나 기존에 있던 자극을 더하는 안일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 그는 한국형 좀비 아포칼립스라는 장르 위에 현대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해부학적 시선을 얹어 거장의 귀환을 똑똑히 알렸다.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감염자들이 득실거리는 초고층 빌딩이라는 지옥 속에서,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했던 ‘소통의 부재’와 ‘고독’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본질임을 말한다. 오해하고 상처받으면서도 끝내 타인의 손을 잡으려 애쓰는 생존자들의 눈빛은, 효율성과 집단성만을 강요하는 이 시대에 단 한 번뿐인 ‘개별적 삶’이 얼마나 숭고한지를 절실히 증명해 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