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주인공 장그래(임시완)의 첫 모습은 목욕탕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고 대리운전 일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누가 봐주지 않더라도 열심히 일을 하지만 친절했던 목욕탕 사장님도, 술에 취한 대리운전 손님도 건실한 직장에서 일을 할 것을 조언하는 쓴소리를 남깁니다. 불편한 느낌을 애써 거두고 발걸음을 재촉하던 찰나에 한 통의 전화를 통해 장그래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2번이나 구박을 들었던 바로 그것. 건실한 직장에서 땀 흘리며 일할 기회. 대기업 원 인터내셔널에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를 말이죠. 그러나 기쁜 순간도 잠시. 그 곳에서도 이전처럼 아니 이전보다 훨씬 더 큰 불쾌감을 마주하게 됩니다. 마치 본인 혼자만 다른 세상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을.
마치 이방인처럼 말이죠.

드라마 속 장그래는 이방인입니다. 유수한 명문대를 졸업하고 탄탄한 스펙을 갖춘 인턴 동기들과는 달리 장그래는 고등학교 검정고시 졸업 출신에 가진 스펙이라곤 컴퓨터 활용 능력 2급 뿐이었죠. 26살 먹을 동안 뭘 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던 직속 상사인 김동식 대리의 말이 그리 슬프게만 느껴지지는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원 인터내셔널 신입 인턴사원이라는 기준에서는 말입니다.
장그래는 본래 어린 시절 바둑을 두던 소년이었습니다. 11세의 나이로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입원할 정도로 장래가 촉망되던 젊은 유망주였지만 슬럼프와 함께 생활고로 인해 바둑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프로 기사로서의 입단에는 실패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실패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을 장그래는 회사 생활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원 인터내셔널에 입사하기 전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회사에서 프로 바둑 기사를 준비했던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고 그로 인한 부정 섞인 시선과 고지식하다는 갈굼 등으로 인해 적응에 더욱 어려움을 겪게 되어 퇴사를 하게 됩니다. 김동식 대리의 뭘 했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이야기에 ‘바둑을 두었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반박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이러한 계기들로 인해 장그래는 프로 바둑 기사를 위해 살았었던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고 잊으려 합니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는 결이 다른 새로운 방식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기존의 자신의 삶의 방식이었던 바둑 기사로서의 삶이 아닌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위해서 말이죠.

그럼에도 이방인의 삶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인턴 동기 사원들의 무시와 따돌림, 동기들과 달리 합격자 중 유일한 비정규직 계약직 사원 신분, 정규직과는 다른 명절 상여품 및 개인 물품 그리고 장그래가 존경하고 따르는 본인 팀의 팀장인 오상식 과장은 개인적인 트라우마로 인해 비정규직 사원을 배척하고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포기할 것을 강하게 주장하는 상황 등등 이방인에게 친절하지 못한 사회의 모습이 극 중에서 여실하게 나타납니다. 그래도 한 번 배운 재주는 어디 안 간다고 했나요. 새로운 현실인 회사 생활에서는 약점만 될 것 같았던 바둑을 두었던 시절의 경험을 통해 장그래는 회사 생활에서의 위기와 문제들을 해결해 나갑니다. 일생을 함께 했던 바둑판에서처럼 장그래는 전쟁 같은 회사 생활 속에서 전황을 통찰력 있게 파악하고 절묘한 한 수를 쌓아가며 점점 주변의 시선을 극복해 나갑니다. 스펙도 직무 능력도 부족하지만 성실한 준비성을 바탕으로 인턴 과정을 통과하고, 회사에 큰 실적을 가져다주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회사 직원의 비리 사실을 발견해 내는 등 어느덧 이방인 같던 장그래도 새로운 신분에 점점 녹아들어 갑니다.

그 중심에는 장그래가 속한 팀. 영업 3팀이 있습니다. 자신을 그 누구보다도 이방인 취급했었고 무시하는 발언도 들었었던 영업 3팀이지만 어느덧 어엿한 팀의 일원으로서 제 몫을 다 하고 서로 의존할 수 있는 사이로 발전합니다. 그리고 드라마의 후반부에는 본인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본인들의 회사 내 안위까지도 포기할 각오로 행동하는 팀원들의 모습도 마주하게 되죠. 장그래는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닌 진정한 팀원이자 식구로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그에게 이방인이라는 신분은 그저 타이틀일 뿐이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장그래 스스로 또한 더 이상 과거에 대해 숨지 않고 당당하게 마주하게 됩니다. 본인이 바둑을 통해 얻은 것과 잃은 것을 인정하고 포기할 부분은 포기하고 가져가야 할 부분은 기록하고 챙깁니다. 새롭게 마주한 현실과는 너무나도 달랐던, 하지만 본인의 전부였던 과거를 마주하며 한 단계 더 성장합니다. 그리고 본인의 삶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드라마에서는 현실적이면서도 서정적인 대사들을 통해 풀어냅니다.
“남들이 우리에게 넥타이 부대니 일개미니 하고 나 하나쯤 어찌 살아도 사회든 회사든 아무렇지 않겠지만, 그래도 이 일이 지금의 나야”
“그래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
우리의 인생에서도 어쩌면 이방인이 되는 순간을 마주할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학교나 직장에 가거나, 결혼을 하고 새로운 가족을 만나거나,. 평생 비슷한 경험을 해보지 못했던 현실에 던져지거나 새롭게 소속된 집단에서 환영받지 못할 수도 있죠. 그럼에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필요합니다. 조금은 부족하고 외면받더라도, 나 스스로가 부끄럽더라도 말이죠.
우리는 미생이기에 완생으로 나아 갈 수 있으니까요.
미생은 이 글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들 이외에도 너무나도 많은 것이 담겨있는 작품입니다. 비정규직의 애로와 직장인의 삶에 대한 적나라한 현실 고증, 만화 원작 기반의 드라마의 새로운 성공 스토리, 개성 있는 다양한 인물들의 서사를 통한 스토리 전개, 울림이 있는 메시지 등등 대중의 찬사를 받았던 수많은 지점들이 모두 녹아 완생에 가까운 작품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읽고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제가 전한 시선 이외에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관점과 포인트들이 많으니 꼭 한 번 찾아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당신도 살만한 인생을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