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용기에 대하여 — 「변산」(2018)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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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갈 용기에 대하여 — 「변산」(2018) 리뷰

이준익 감독 / 박정민, 김고은 주연

이준익 감독이 「사도」 「동주」 「박열」로 이어진 역사 영화 행보를 잠시 내려놓고 만든 작품.

힙합과 전라북도 변산, 이 두 이질적인 단어의 조합이 인상적이다.

 


 

줄거리 ※ 스포일러 포함

서울에서 래퍼를 꿈꾸며 발레파킹과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잇고 있는 학수(박정민).

쇼미더머니에 6년 연속 도전했지만 매번 초기 라운드에서 탈락한다. 고향 변산은 그에게 지우고 싶은 곳이다.

어머니 장례식에도 나타나지 않은 건달 아버지, 자신이 괴롭혔던 친구들, 잊고 싶은 기억들이 쌓인 땅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초등학교 동창 선미(김고은)로부터 전화가 온다.

아버지가 쓰러졌다고. 어쩔 수 없이 변산으로 내려온 학수 앞에 흑역사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자신이 어린 시절 괴롭혔던 친구 용대(고준)는 지역 건달이 되어 이제 학수를 부하 부리듯 대하고,

자신의 시를 몰래 훔쳐간 교생 원준(김준한)은 지역 신문기자가 되어 나타난다. 첫사랑 미경(신현빈)은 다시 학수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그 와중에 선미는 “변산 좁잖여”라는 말로 시도 때도 없이 학수의 삶에 끼어든다.

처음엔 귀찮기만 한 존재였던 그녀가 사실은 고등학교 때부터 학수가 쓴 시의 팬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두 사람 사이 감정이 천천히 쌓이기 시작한다.

영화의 중심은 아버지와의 관계에 있다. 평생 가족을 내팽개치고 살았던 아버지가 이제 병상에 누워 학수 앞에 있다.

미워하고 싶은데 미워하기만 할 수 없는 그 감정 — 학수는 그 감정을 가사로 적어내린다.

그리고 학수는 도망치는 대신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Key Point

 

변산은 힙합 영화가 아니다. 내용만 보자면 “고향”을 소재로 한 드라마 장르에 가깝다.

주인공 학수가 래퍼고, 쇼미더머니에 나간다는 설정 외에는 사실상 랩과 이 영화는 전혀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랩이라는 도전적인 시도를 한 이유는, 새로운 형태의 나레이션에 있다.

극 중 나레이션처럼 등장하는 랩들은 학수의 속마음을 표현하는 가사로 이루어져 있다.

말로는 꺼내지 못하는 것들을 가사로 뱉어내는 구조는, 이준익 감독이 「동주」에서 시로 인물의 내면을 드러냈던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이것이 효과적으로 다가왔는지 아닌지에 따라 이 영화에 대한 평가가 갈릴 것이다. 

이 영화는 화려하지 않다. 스펙터클도 없고 거대한 서사도 없다. 심지어 랩이라는 장벽도 있다.

그러나 도망치고 싶었던 자리로 돌아가 결국 마주해야 하는 것들 — 부끄러운 과거, 외면했던 사람,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감정 —

이것들은 학수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누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비록 눈물이 터져나오는 감동은 아니지만, 피식피식 웃다 보면 어느새 가슴 한켠에 와닿는 것이 있는 영화다.

 

Warning Point

이 영화는 흥행에도 실패했고 평도 호불호가 갈린다.

특히 극 후반부 가해자인 아버지에 대한 용서가 지나치게 쉽게 이루어진다는 비판이 있다.

평생 가족을 내팽개친 아버지를 학수가 받아들이는 과정이, 그 무게에 비해 서사적으로 충분히 쌓이지 않은 채 감정으로 봉합된다는 지적이다.

이것을 인생의 현실적인 화해로 읽을 수도 있지만, 설득력 없는 신파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한가지 더 꼽자면, 장르적 정체성이 흐릿하다는 점이다.

힙합 영화를 기대하면 랩이 아쉽고, 로맨스를 기대하면 감정선이 충분히 발전하지 않는다.

코미디라고 하기엔 진지하고, 드라마라고 하기엔 가볍다.

이 이도저도 아닌 느낌이 이 영화의 단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영화만의 캐릭터이기도 하다.

어떤 장르를 기대하느냐에 따라 경험이 크게 달라지는 영화이니, 가급적 아무 기대 없이 보는 것을 권한다. (실제로 아무생각 없이 본 필자는 랩도, 스토리도 어느 정도 만족했다)

 

 


 

 

“내 고향은 폐항,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건 노을밖에 없네”. 학수의 시와 랩 가사 중 한 구절이다.

화려하지 않아서, 큰 소리로 울게 만들지 않아서, 오히려 더 오래 마음에 걸리는 영화다.

 

리뷰]영화 '변산' - 소소한 순간에 담은 삶의 빛나는 순간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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