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촌(村)스러움에 대해

빼곡한 빌딩 숲으로 뒤덮인 도시를 벗어나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에서 유유자적하며 살고 싶은 생각, 해본 적 있는가?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또 현실에 치이고. 그냥 모든 속세를 훌훌 버리고 자연 속에서 자유로이 농사나 지으며 살아가고픈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행복한 귀농 생활? 여유로운 농촌 생활? 대부분은 도시 사람들의 허황된 상상일 뿐이다. 땅을 경작하고 수확까지… 농사는 나의 몸과 마음을 온전히 바쳐야 비로소 결실을 맺을 수 있는 행위이기에. KBS 2TV 미니시리즈 <심우면 연리리>는 이러한 ‘농촌 라이프’를 실감 나게 담아낸다. 물론,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태훈(박성웅)은 시골 생활에 로망이 있어 도시를 떠난 건 아니다. 그 이면에는 번듯한 대기업 부장이었지만, 산지 문제 해결에 앞장서다 ‘연리리’라는 유배지 아닌 유배지로 좌천되었다는 슬픈 사연이 있다. 아들 셋을 둔 가장이 과연 쉽지 않은 농촌 생활에 적응해 다시 본사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지, <심우면 연리리>는 이를 특유의 촌(村)스럽고도 정겨운 방식으로 풀어낸다.

 

 


 

촌(村)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고군분투하며 성장해갈 식구들

시골 사람들이 서울로 상경하며 느끼는 낯섦과 그리움에 대해 다루는 드라마는 꽤 많다. 반면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시골로 내려가 느끼는 막막함과 어려움 등을 묘사하는 드라마는 대체로 적다. 이러한 측면에서, <심우면 연리리>는 외지인이 시골에 정착하는 과정을 사실적이지만 코믹하게 그려낸다. 특히, 드라마 속 태훈이 몸 담고 있는 회사인 ‘맛스토리’는 과거 연리리 사람들에게 무언의 배신을 안겨주었다는 점에서 그는 더욱더 환영받지 못한 채 배척 아닌 배척을 당한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고 세 아들의 아빠로서, 가장으로서, 생각만 하지 않고 먼저 행동하며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다. 그의 아내인 미려(이수경)는 처음엔 부녀회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거절하는데, 남편의 순탄한 정착을 위해서 자존심도 다 버리고 부녀회에 가입하겠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아들들도 비슷하다. 둘째와 셋째 아들은 캐나다에서 유학한 탓에 조그마한 시골 학교 적응을 어려워한다. 특히 둘째는 자신을 놀리는 또래 친구들 때문에 전학 온 지 며칠 만에 싸우기도 한다. 이처럼 시골 생활은 그들에게 어려운 것 투성이다. 원하지도 않았는데 한순간에 연고도 없는 곳에 툭 하고 떨어져 버린 태훈의 가족에겐 시골은 혼돈의 카오스 그 자체이다. 따라서 이 ‘촌’은 그들에게 끊임없이 낯선 경험을 안기고, 그 낯섦 속에서 스스로를 성장하게 만든다. 도시에서는 감히 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일들을, 이곳에서는 깊이 고민할 틈도 없이 부딪치고 도전하게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무모함이 그들을 익숙하고 아늑한 컴포트존 밖으로 밀어내고, 수많은 어려움을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시골 사람들의 텃세, 그러나 불편하지 않다

<심우면 연리리>는 2부까지 방영되었는데, 현재까지 가장 두드러지는 갈등 요소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시골 사람들의 텃세’이다. 서울에서 좌천된 태훈을 마을 사람들은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듯이, 태훈의 회사인 ‘맛스토리’가 과거 마을 사람들과 좋지 않은 관계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들은 앞다투어 대놓고 ‘텃세’를 시전한다. 특히 텃세의 중심인 ‘이장’은 마을 사람들에게 연리리의 위상을 위해서 태훈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말라고 누누이 당부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시골 텃세는 비단 드라마에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시골에 정착하면서 원주민들의 텃세로 적응하기 힘들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는 ‘텃세’라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관계’에 대해 집중해야 한다. 단순히 도시 사람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척이 아닌, 과거의 사건으로 비롯된 방어기제가 더 컸기에 결국 그것이 텃세라는 아이러니한 행보로 귀결되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연리리 마을 사람들 중 동식(박석원)은 이장의 경고에도 마음이 쓰여 태훈을 몰래몰래 도와주려 한다. 처음 농사를 지으며 끙끙대는 태훈을 보며 그는 안타까움과 애처로움을 느끼며 태훈의 숨은 조력자가 되는데, 그 과정을 이 드라마에서 경쾌하고도 산뜻하게 풀어낸다. 결국 사람들의 천성이나 마음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상황’이 문제였음을 시청자들에게 전한다. 그리고 그 상황 속에서 시골 사람들 역시 조금씩 변화해가는 과정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만든다.

 

 

‘수줍은 도시 소년과 사랑스러운 시골 소녀’라는 최고의 조합

이 드라마에서의 또 다른 촌(村)스러움을 담당하고 있는 건 바로 태훈의 첫째 아들인 지천(이진우)과 연리리의 햇살캐 보미(최규리)의 로맨스이다. 참 클리셰적인 조합이다. 그런데 아는 맛이 무섭다고. 이런 클리셰일수록 더욱더 찾게 된다. 왈가닥 햇살 여주에게 빠진 수줍은 도시 소년, 누구라도 설레지 않을 수 없는 최강의 조합이 아닌가. 특히 <심우면 연리리>에서 이 둘의 로맨스는 복잡한 현실을 잠깐이나마 환기해 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연리리에 정착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태훈과 미려를 제쳐두고 온전히 이 둘의 설렘과 두근거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특히 지천은 원래 의대생이었지만, 현재는 자퇴한 상태다. 의대생은 많은 드라마에서 흔히 부모의 기대에 따라 수동적으로 살아온 인물로 그려지곤 하는데, 이 작품 역시 그렇게 묘사한다. 그렇기에 시골에서 누구보다 자유롭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보미와의 만남은, 막 의대를 자퇴한 뒤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찾아 헤매기 시작한 지천에게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지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이처럼 단순한 풋내기 사랑이 아닌 서로를 이끌어주는 이정표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심우면 연리리>는 도파민 가득한 유행 음식들이 아닌 따뜻한 집밥 같은 드라마이다. 부모님의 정성으로 천천히 완성되는 집밥처럼, 이 드라마는 과정은 비록 느리더라도 그 맛은 분명하다. 어느새 풍족해지는 마음을 느끼며 또다시 ‘한 그릇 더!’를 외치게 될 것임이 틀림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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