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안은 게 많아 떠밀리듯 떠난 사람, 〈비밀의 숲〉 영은수

제가 못 미더우세요?
응.

사회 초년생에게 이보다 더 답답할 순간이 있을까?
열정은 넘치고, 스스로 해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있지만
여전히 어리고 서툴다는 이유로 끝내 믿음을 얻지 못하는 순간.

<비밀의 숲>의 영은수는 그 답답함 속에 사는 인물이다.

겨우 20대 중반.
사회 초년생이 무얼 그리 짊어지고 있길래
매번 시간에 쫓기듯, 사람에 쫓기듯,
여유 없이 부딪히고 깨지기만 할까.

영은수는 기울어버린 가세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무게와
불명예를 떠안고 주저앉아버린 아버지의 명예를 되찾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함께 짊어진 채 검사가 된 인물이다.

이제 막 수습 딱지를 뗀 만큼 제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만,
그만큼 해야 할 것도 많아 마음이 조급할 수밖에 없는 사람.
그게 영은수다.

그리고 이 인물은
자칫 미움받을 수 있는 선택과 행동으로 극 전체를 활보하지만
<비밀의 숲>을 본 사람이라면 모두 영은수를 가슴 한 켠에 품는다.
그의 서툰 발버둥을 미워하지 못한다.

최애 캐릭터는 따로 있을지언정,
영은수는 영은수대로 사람들의 마음에 오래 남는 인물이다.

 

 

짊어진 것들, 그가 서 있던 자리


 

 

“이날만을 기다렸어요. 내가 왜 검사가 됐는데요.”

모함에 걸려 법무부 장관에서 물러난 아버지를 보며 검사가 된 외동딸.

하루아침에 범죄자가 되어
자신의 후배 검사들에게 강도 높은 조사를 받고
알콜 의존증에 걸린 아버지.

몇 년이고 방문을 걸어 잠그고 단절을 택한 아버지는
딸의 검사 임관 소식을 전해 듣고서야 비로소 방문을 열고, 딸을 마주했다.

몇 년 만에 들어가 본 아버지의 방은
책이며 가구가 한껏 어질러져 있었고,
벽지엔 읽을 수 없는 낙서가 가득 차 있었다.
몇 년 사이 이전의 총기를 잃고 약해진 아버지의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딸은 검사가 되고도
처음 배정받은 검찰청이 어디인지,
자신이 일하는 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말할 수 없었다.

이미 약해진 아버지에게
당신을 모함한 자와 같은 곳에서, 그자의 밑에서
내가 일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저 여기서 쫓겨날 수 없어요.
억울해서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 세 식구 먹고 살아야 한단 말이에요.”

마음 둘 곳 없는 검찰청이지만
그럼에도 버텨내어야 할 이유, 가족.

20대 중반의 영은수는 이미 집안의 가장이고
부모님이 정신적으로 의지하는 기둥이며
아버지의 불명예를 씻어내야 할 의무를 지닌 사람이다.

영은수는 그런 자리에 위태롭게 서 있는 인물이다.

 

 

쉼 없이 달린 삶, 끝내 멈춰버린 순간


 

 

“왜 전 안 돼요? 특임에?”

“왜 너여야 하는데?”

“꼭 하고 싶어요. 열심히 할게요.”

“알아. 누구보다 열심히 할 거라는 거.”
“검사장 잡으려고 최선을 다할 거라는 것도.”

“없는 죄 뒤집어씌우자는 게 아니잖아요.”

“여기가 네 원한 풀어주는 곳인 줄 알아?”

 

 

영은수는 어서 자신이 인정받길 원한다.
믿을 수 있는 선배에게든,
믿음은 안 가지만 조직 내에서 영향력이 큰 선배에게든.

자신의 실력과 됨됨이를 증명하고
아버지와 관련된 사건을 수사하는 선배의 팀에
기어이 합류하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쓸모 있는 인재임을 증명하고
그 열정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영은수는 무엇이든 감수한다.

설령, 그 대가가 자신의 목숨일지라도.

비리 검사로 유명한 선배를 찾아가 협박과 공갈을 벌이다 목이 졸리고
아버지 사건에 위증했던 인물을 홀로 뒤쫓아
트럭 짐칸에 하루 넘게 몸을 숨기기도 한다.

“맞아요. 저 제정신 아니에요. 어떻게 제정신이에요?
우리가 이날을 얼마나 바라왔는데요.”

자신의 무모함을 나무라는 선배에게는 자신의 절박함을 호소한다.

이 사건이 왜 간절한지,
어떻게 찾아온 기회인지,
왜 반드시 붙잡아야만 하는지.

영은수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채 달려가는 덤프트럭과 같다.
이대로라면 언젠가 장애물에 부딪힐 것을 알면서도,
끝내 멈추지 못한 채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달리기만 하던 영은수에게도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순간이 있었다.

정식 팀원은 아니었지만,
믿을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가볍게 웃을 수 있었던 저녁.

영은수는
이날 저녁을 뒤로한 채
다시는 웃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너무 앞서 나간 대가로,
남들보다 먼저 진실에 닿았다는 이유로,
그는 표적이 되었다.

 

 

너무 늦은 인정, 이르게 도착한 결말


 

영은수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끝까지 몸부림쳤지만
끝내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선배와 마주해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가 먼저 진실에 닿았을 때,

인정보다 빨리 영은수에게 도착한 것은
죽음이었다.

사건의 실마리에 가장 먼저 도달했지만,
그 사실을 인정받을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어쩌면,
그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던 선배는
그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그가 앞서 나가지 못하게,
가장 냉정한 손끝으로 그의 손목을 붙잡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혼자 날뛰는 표적이 되지 못하도록.

 

 

뒤늦은 애도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에
애도할 시간조차 충분히 주어지지 못했다.

실감 나지 않아서, 받아들일 수 없어서,
죽음만을 온전히 추모할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서,
죽음 뒤에 떠밀린 ‘해야 할 것’들이 많아서.

영은수를 혼자 먼저 보내두고,
남은 일을 전부 해결한 다음에야
비로소 다시 돌아볼 수 잇다.

그의 존재와
부재를.

 

그의 죽음 앞에 마음껏 울지 못한 만큼,
손등을 타고 흘러내린 수돗물로 겨우 울음을 대신한 만큼,
제때 떠나보내지 못한 후유증에
뒤늦게 영은수를 찾게 된다.

우리는 그를
조금 더 오래 붙든다.

떠나보내지 못한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는다.

어리고, 서툴고, 치기 어린 영혼이
홀로 고군분투했던 삶을 이해하기에,
그의 죽음을
쉽게 지나치지 못한다.

 

 

 

보고 싶은 그대.
굿바이 잘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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