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대로 꿈으로 해석된 사람, 그저 빛나고 싶었던 마음 : 〈클라이맥스〉

나도 모르게 타인을 멋대로 바라보고 정의하는 때가 있다.

마냥 빛 나 보이는 사람을 두고
그는 아무런 고충 없이 행복하겠지,
나처럼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을 보면 비웃겠지,
애초에 높기만 한 그의 시선은
내가 있는 아래까지는 닿지도 않겠지.

하지만 우습게도
그를 통해 위로받는 순간이 오면,
우연히도 화면 속의 그가 나와 함께 울어주는 순간을 겪으면,
그는 나의 꿈이 되기도 한다.

혼자인 나와 함께 울어준 고마운 사람이
지금보다 더 높은 곳에서 빛나기를.
나의 고통스러움을 껴안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저 멀리로, 나의 고통을 던져버려 주기를.

나의 꿈이, 부디 잘 지내주길.

간절히 바라게 된다.

그러다, 내가 마음속 깊숙이 응원해 오던 꿈의 실체가
사실은 아주 여리고 약하고, 부러지기 쉬운 존재라는 걸 아주 가까이에서 목격하면,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존재였음을 알게 되면,
연민하게 된다.

지금껏 혼자 쌓아온 동질감과 친밀감은 안타까운 마음을 부르고,
멋대로 꿈이라고 정의한 대상의 추레한 뒷모습을 마주하는 순간
나와는 닿을 수 없을 만큼 멀리 있다고 믿었던 그와의 거리는
한순간에 좁혀진다.

황정원에게 추상아라는 존재는
그런 존재다.

 

 

화면 너머로 전해진 위로, 손 뻗어도 닿을 수 없던 거리


 

 

황정원에게 “배우” 추상아는
폭력적인 아버지에게 맞아 쓰러진 자신을 관찰하던 소주병이었고,
죽은 엄마를 끌어안고 울던 자신의 곁에서 함께 울어주던 TV였고,
바닥에 주저앉은 채 한참을 올려다봐야 하는 광고 전광판이었다.

직접 닿을 수는 없지만
꼭 결정적인 순간엔 곁에 있던 존재.

매정한 관찰자였다가
고마운 위로였다가
내 지옥을 내려다보며 웃는 허상이었던 추상아를 직접 마주하고,
“사람” 추상아를 손 뻗어 잡을 수 있게 되었을 때에 발견한
그의 지옥.

 

 

황정원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자신을 구원해 준 과거의 꿈이
빛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밝게 빛날 수 있도록,
그를 지옥에서 끄집어내기 위해
기꺼이 자신도 지옥 속으로 걸음한다.

지옥에 사는 이를 직접 빼내기 위해서는
지옥 바깥에서 손을 뻗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구원과 소비 사이


 

 

황정원과 같은 장소에서, 같은 허상을 바라보며
“아래”에 사는 자신의 삶을 뼈아프게 인식한 또 다른 사람.
방태섭.

그는 황정원과는 다른 방식으로 추상아를 바라본다.
자신이 “위”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기 위한 열쇠.

방태섭에게 있어 추상아는
처음부터 수단이었다.

수단인 추상아를 취하기 위해
추상아를 지옥에 살도록,
지옥으로 떠밀린 추상아가 손 뻗을 구석이 자신 뿐이도록,
자신의 열쇠를 획득하기 위해서, 그는 추상아를 교묘히 지옥 끝에 남겨두었다.

추상아와의 결혼에 골인한 이후에도
방태섭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만 움직인다.

지옥으로 밀어 넣은 추상아의 치부가
세상에 드러나지 않도록 애쓰는 모습을 보며
‘그럼에도 사랑하는구나.’ 싶다가도
그것이 정말로 추상아를 위한 선택인지,
추상아의 남편이라는 지위를 가진 자신을 위한 일인지는
알 수 없다.

아내의 입장을 무시한 채 상의 없이 일을 진행하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아내보다 또 다른 열쇠가 우선시되며,
독단적인 선택의 결과가 큰 파장을 불러올 때면
‘모두 너를 위한 일이었다.’ 소리치고
모든 선택을 정당화하는 관계를
과연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클라이맥스>는 방태섭과 황정원을
서로 다른 길 위에 나란히 세운다.

정반대 방향을 향해 차를 모든 두 사람이지만
황정원이 향하는 길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한 갈래의 길.
돌아갈 수도, 비껴갈 수도 없이, 추상아에게로 향할 뿐인 직선.

반면 방태섭의 앞에는
두 갈래의 길이 선택을 종용한다.

아직 정돈되지 않은 길과
이미 다듬어진 길.

그리고 방태섭은
망설임 없이 깔끔히 정비된 쪽을 선택한다.
아직 위태로운 추상아가 아닌,
자신을 더 위로 올려보내기 위한 또 다른 열쇠를 향해 달린다.

하지만 방태섭은
방해라고는 없을 것 같은 깔끔한 길목에서도
생각지도 못한 장애물을 만나
끝내 차를 세운다.

황정원이 추상아라는 사람을 향해 달리는 동안
사람을 버리고 선택한 권력의 길에서
방태섭은 홀로 멈춰 선다.

 

 

빛, 가장 어두운 곳에서 드러나는


 

이 이야기에서
가장 늦게 들여다보게 되는 존재는
아이러니하게도 추상아다.

그의 사랑을 두고 멀리 떠난 사람,
그를 이용해 높이 올라가려는 사람,
그에게서 자신의 끔찍한 과거를 발견하고 지키려는 사람,
그를 사랑해서 타인을 해친 사람,
그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사람,
그를 욕망하는 사람.

수많은 시선이 추상아를 향하지만
그 누구도 추상아를 온전히 바라보지 못한다.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는 존재이면서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추상아는 그런 사람이다.

남을 믿지 않고,
남에게 자신의 진실한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

배우는 관객도, 세상도, 그리고 나 스스로까지도 속여야만
성공할 수 있는 족속이라고 믿는 사람.

추상아는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까지 진짜 속내를 감춘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미 자신을 한 차례 속이고서
세상을 상대로, 그리고 자신을 상대로 연기하는 중일 수도 잇다.

배우로서 빛나고 싶다는 진심 하나만을 진실로 품고,
나는 빛나기 위해 어떠한 수단도 이용할 수 있는 모진 사람이라고,
최고의 연기로 스스로를 속여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을 위해
업계 최고의 실권자에게 맞서는 모습 하며,
부족한 후배 배우를 그 자체로 믿고 지키려 하는 순간들로

그가 차마 숨기지 못한 그의 또 다른 심성이 있음을 믿어보게 한다.

눈물 한 방울과 떨리는 목소리로
손 안 대고 이미 사람을 둘이나 해친 잔인한 인간의 탈을 쓰고 있지만
가면으로도 채 숨기지 못한 얼굴이 보이는 순간이 있다.

그를 마냥 악한 사람으로 남겨두지 못하게 하는 얼굴.
그 조각을 모두 모으면
추상아의 진짜 모습에 닿을 수 있을까.

추상아라는 스타가 내는 빛은
지금껏 그의 가장 어두운 과거를 배경으로
누구보다 밝게 빛나왔다.

살아남기 위해 버텨온 시간과,
그 끝에서 붙잡아온 단 하나의 이름.
배우.

빛나기 위해
스스로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간 사람에게서
그 어둠을 모두 걷어낸다면,

그의 빛은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빛날 수 있을까.

 

 

그가 가장 빛나는 순간, 클라이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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