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한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방식, [다음 소희]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는 2017년 전주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고, 제 75회 칸 국제 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되었다. 마이스터고에서 애견학과를 다녔던 소녀가 졸업을 앞두고 배치된 현장실습 환경은 전공과 전혀 다른 통신사 콜센터의 해지 방어팀이었다. 통신사의 위장 자회사였던 콜센터는 고인을 비롯해 다른 현장실습생들에게도 높은 실적을 요구했으며 고객들은 상담원들을 생각하지 않은 채 강도 높은 폭언과 욕설을 내뱉었다. 결국 소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고통에서 해방된다. 회사의 이름은 LG유플러스의 위장 자회사 LB휴넷이며 고인의 이름은 전주생명과학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3학년 홍수연이었다.

 

 

누구를 위한 현장 실습 제도인가?

현장 실습 제도는 실업계 고등학생 학생이 학교에서 익힌 기술을 실제 산업 현장에서 실습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제도다. 학생들은 실무를 배울 기회를 얻고, 기업은 학생을 가르친 뒤 채용해 준비된 경력직을 선발 할 수 있는 기대효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실적이 좋아도 회사는 실습생에게는 추가 수당을 주지 않는 게 원칙이라며 어떻게든 급여를 깎을 궁리만 한다. ‘실습 학생’과 ‘수습 기간’이라는 교묘한 언어로 그들의 노동을 착취적 계약 조건 속에 묶어두고 학생들의 발목을 잡는다. 결국, 현장 실습생은 제대로 된 교육조차 받지 못한 채 일하고, 노동법의 보호 또한 받지 못하는 학생도 노동자도 아닌 처지인 것이다. 소희는 노동력을 착취할 때는 노동자가 되었다가 급여를 지급할 때는 학생으로 둔갑해버리는 이 지옥 같은 이중적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다.

소희의 죽음 이후, 회사는 소희가 원래부터 문제아였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학생을 보호해야 할 학교와 교육청은 다른 학교와 교육청과의 경쟁에서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취업률을 높여야 한다며 소희의 죽음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합리화한다. 취업률이라는 숫자로 수치화 할 수 없는 실습생 개인의 이야기는 그렇게 가려져간다.

 

 

 

노동의 지옥 속에서 우리는 모두 자유롭지 못하다.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은 소희가 스스로 이런 선택을 하게끔 만든 이들을 단순히 비열한 악당으로 묘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애견학과에서 공부하던 소희를 콜센터로 보낸 담임 선생님도, 일터에서 소희를 비롯한 실습생들에게 높은 실적을 요구했던 직장 상사들도, 분명 비판 받아야 마땅한 존재들이다. 이들은 어린 소녀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주길 바랬던 소희를 어떻게든 억누르기에 바쁜 존재였다. 그러나 영화는 소희를 압박하는 인물들 또한 결국엔 노동의 구조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나타내며, 이들도 사실은 ‘구조의 희생자’라는 의미를 전하고 있다.

영화에서 콜센터 상담원들을 그나마 이해해주던 소장은 자신의 윤리 의식과 업무의 부당한 압박 사이에서 괴로워하다 콜센터 주차장에서 자살을 한다. 마이스터고의 담임 선생님은 높은 실적을 요구하는 교육기관의 인센티브 지급 구조에서, 콜센터는 지속적으로 실적 유지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모두를 착취 속에서 얽매이게 하는 이 구조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자본은 자신들이 얼마나 더 많이 이윤을 낼 수 있는 지에만 몰두한다.

 

 

 

영화는 크게 2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에서는 ‘소희’에게 초점이 맞춰져 영화가 진행되고 후반부에서는 형사 ‘유진’이 소희를 죽음으로 내몬 이 냉혹한 구조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노력하는 내용이다. 유진은 사건을 조사하던 중 이 소녀의 죽음이 단순 자살이 아니라 학교, 사회 그리고 더 넓게는 국가가 저지른 살인 방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유진은 소희와 같은 처지에 있는 아이에게 힘들면 자신에게라도 털어놓으라며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책임자가 처벌 받는다거나, 이후라도 실습 환경이 개선되었다거나 하는 시원한 결말은 찾아볼 수 없다.

 

 

<다음 소희>가 개봉된 뒤, 직업교육훈련촉진법 일부 개정안, 이름바 ‘다음 소희 방지법’이 국회에서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실습생들도 근로기준법 제 7조: 강제근로의 금지, 제 8조: 폭행의 금지, 제 76조의 29: 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 등 노동자로서 마땅히 받아야 될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전까지 실습생들은 이 조항들의 보호를 받지 못했으며, 여전히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온전히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씁쓸하다.

영화는 우리에게 질문한다. 노동이라는 필수적인 행위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다음 소희’는 없어야 하기 때문에, 모두가 자유롭지 못한 이 지옥의 구조를 더 묻히지 않게 드러내는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절실히 우리에게 이야기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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