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되돌려도, 잃고 싶지 않은 것 ‘너바나 더 밴드’ 리뷰

 

정신없고, 황당하고, 계속 웃긴데 이상하게 다 보고 나면 마음 한구석이 오래 남는 영화가 있다.

최근 빠더너스의 수입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는 영화 <너바나 더 밴드>가 딱 그런 작품이다. 이 영화는 제목만 들으면 전설적인 밴드 ‘너바나’를 떠올리게 되지만, 정작 영화는 그들과는 아무 관련 없는 캐나다 코미디 장르의 이야기이다.

영화는 무명 밴드 ‘너바나 더 밴드’의 멤버 맷과 제이가 공연을 위해 타임머신을 만들고, 처음 만났던 17년 전으로 돌아가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설정만 보면 정신없고 황당하다. 그런데 그 황당함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방식이 이상하게 진심처럼 느껴진다.

토론토국제영화제 미드나이트 매드니스 관객상, 밴쿠버영화비평가협회 캐나다 최고영화상과 감독상을 수상했고, 한국에서는 빠더너스 수입 이후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되며 꽤 많은 화제를 모았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따른다는 점이다. 카메라는 두 주인공을 계속 따라다니지만, 그들의 행동에 개입하지 않는다. 덕분에 관객은 마치 실제 인물을 우연히 관찰하게 된 느낌을 받는다.

맷과 제이는 정말 말도 안 되는 행동들을 끊임없이 벌인다. 그런데 주변 인물들의 반응이 너무 자연스럽다. 지나가다 갑자기 촬영에 휘말린 일반인처럼 보이는 사람들, 어딘가 어설프고 현실적인 대화들. 보고 있으면 이게 영화인지 실제 기록 영상인지 헷갈릴 정도다. 마치 카메라 한 대를 현실 한복판에 조용히 세워두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사건들을 그대로 담아낸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심지어 긴박한 장면에서 등장하는 길거리 너구리조차 “설마 저것도 연출인가?” 싶을 정도로 절묘하게 웃기다. 감독 인터뷰를 보면 실제로 비전문 배우를 선호한다고 한다. 계산된 연기보다 의도되지 않은 자연스러움, 예상하지 못한 진짜 반응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그래서인지 영화 전체에 묘한 생동감이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내게 정말 특별하게 남은 이유는 따로 있다.

나는 평소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학창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땠을까. 우수한 성적을 받거나 주식 투자를 해서 떼돈을 벌까. 또 조금만 더 용기를 냈다면, 덜 후회하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누구나 한 번쯤 하는 생각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다른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정말 과거로 돌아간다면, 지금의 나는 그대로 존재할 수 있을까.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도 그대로일까. 지금까지 쌓아온 우정들, 함께 웃었던 기억들, 서로를 이해하게 된 시간들까지 전부 바뀌어버리는 건 아닐까. 그 생각을 하니까 갑자기 과거를 바꾸고 싶지 않아졌다.

 

맷과 제이는 서로 너무 다르다. 맷은 무모하고 시끄럽고 사고도 많이 친다. 사회와 적당히 타협하지 못한 채 아직 어린 마음을 간직한 사람 같다. 같이 있으면 괜히 더 말이 많아지고, 쓸데없는 상상도 하게 만드는 타입의 친구.

반면 제이는 점점 현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오래된 친구인 맷을 답답해하면서도 결국 그의 곁을 떠나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영화에서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다. 그런데 또 신기하게, 맷과 함께 있을 때만큼은 제이 역시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인다. 오래된 친구를 만나면 잊고 지냈던 말투와 감정이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그래서 이 영화는 단순히 시간여행 영화가 아니다. 결국 ‘함께 보낸 시간’에 대한 영화라고 느껴졌다.

 

빠더너스의 문상훈이 “가장 친한 친구와 큰 화면으로 보라”고 추천했던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이 영화는 보고 나면 괜히 오래된 친구들이 떠오른다. 한심했던 순간들도, 의미 없이 웃기만 했던 시간들도 같이. 그리고 그런 기억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지금의 행복을 포기하면서까지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가. 예전의 나는 망설임 없이 돌아가겠다고 말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 역시 잃고 싶지 않은 친구들이 생겼고, 그 사람들과 보낸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웃기고 황당한 코미디인데도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는다. 결국 내가 감동받은 건 타임머신이 아니라, 시간을 함께 지나온 사람들이었다.

You May Also Like...

그래미 본상 후보에 오른 케이팝, 로제 APT.·골든·캣츠아이

케이팝이 그래미의 중심 무대에 섰다. 제68회 그래미 어워즈 본상 후보 명단에 K-pop 아티스트의 이름이 오른 것은 역사적 전환점이다. 블랙핑크 로제의 ‘APT.’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OST ‘Golden’이 본상 부문에 동시 지명되며, 케이팝은 이제 ‘특수 장르’가 아니라 글로벌 팝의 한 갈래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전 세계 주요 언론도 이번 후보 발표를 ‘케이팝이 예술성과 완성도로 평가받기 시작한 순간’이라고 분석한다. 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이번 후보 지명 자체가 이미 하나의 이정표다.

본문보기 »
error: 콘텐츠가 보호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