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반느〉, 당신의 사랑은 오늘도 안녕하신가요?

날이 점점 따스해지며 푸른 빛들이 얼굴을 빼꼼 드러내기 시작했다. 집에 있는 화분에도 초록색 싹이 자라기 시작하며 그들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있다. 사랑이라는 씨앗이 살랑살랑 바람을 타고 날아와 매말랐던 사람들의 마음에 새로운 싹을 심어주는 시기도 바로 이 즈음이다. 새로운 사랑에 가슴 설레며 영원을 다짐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에 결심한 일을 자주 깨뜨리기도 한다. 셰익스피어는 ‘결심이란 기껏해야 기억의 노예 같은 것이어서 탄생은 요란하지만 그 힘은 미약하다’고 말했다. 그렇다, 모든 사랑은 오해다. 그 사람은 남들과 다르다는 오해. 그리고 영원할 거라는 오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해야 할 당신을 위해, 영화 <파반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변요한, 고아성, 문상민이 주연으로 출연한 이종필 감독의 영화<파반느>는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었으며 작가 박민규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원작으로 한다. 각자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3명의 인물이 함께 하며 삶과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우게 된다. 경록(상민)의 아빠는 집을 나가서 새로운 가정을 꾸렸고 엄마는 경록의 곁을 떠나게 된다. 그렇게 꿈꾸던 현대무용도 포기한 뒤, 무작정 아이슬란드에 가서 오로라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백화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고 그 백화점에서 요한(요한)과 미정(아성)을 만나게 된다. 미정과 함께 있을 때,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될 필요 없이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해도 괜찮다는 걸 깨닫게 된 경록은 미정에게 특별한 마음을 품게 된다. 그렇게 경록과 미정은 여느 커플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모든 사랑이 그러하듯 이 둘의 사랑도 오래 가지 않는다. 한편, 백화점 사장의 사생아로 태어나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어렸을 때부터 마음의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던 요한은 자살시도를 하게 되고 혼수상태로 병원에 입원한다. 요한의 입원 이후, 경록과 미정의 행복했던 시간들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미정은 아무 말 없이 경록을 떠나고 경록은 미정의 빈 자리를 그리워하며 슬픔에 잠긴다.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나게 된 두 사람은 재회를 약속하지만 경록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며 둘은 영영 만나지 못하게 된다.

 

 
 
 
우리의 지난 시절을 잊지 마. 우리의 청춘은 영원하니까.”
영화는 청춘의 사랑, 20대의 성장, 미래의 불안함을 이야기 하고 있다. 꿈을 포기한 경록, 집안의 빚을 갚아야 하는 미정, 어릴 적 트라우마로 여기저기 방황하는 요한은 일터에서 만나 우정을 쌓아간다.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만나 서로를 알아주고 위로해주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누군가가 말했다. 사람은 순간의 기억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을 이들의 시간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미래를 그린다. 경록이 목숨을 잃게 된 뒤에도 이들은 지난 시절의 추억을 생각하며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불교에서 말하는 ‘소멸’처럼 영화는 경록의 소멸을 마냥 ‘끝’으로서 표현하지 않는다. 그의 소멸은 다른 삶으로 이어지는 순환의 시작이자 ‘배려심’으로 표현된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가 잠시 내려서 자신이 달려온 방향을 바라본다고 한다. 그 행위는 숨이 차올라서 쉬기 위한 것도 아니고 말을 걱정하는 것도 아니다. 걸음이 느린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까봐 기다려주는 배려라고 한다. 남겨진 두 사람에게 있어서 경록의 부재는 언젠가 다시 만날 그 날을 기다리며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는 요소로 작용된다.
 
 
 
 
 
도시락에 가득 담은 빨간 방울토마토처럼
극 중 미정은 경록에게 빨간 방울토마토를 도시락 통에 담아 전해줬다. 사랑은 이런 게 아닐까? 새빨갛고 동글동글한 내 마음을 꾹꾹 눌러담아 상대에게 전하는 것. 미정은 비를 상대하는 게 사람을 상대하는 것보다 편하다며 포기하는 것이 편하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부터 남들에게 외면 당해 마음의 문을 닫은 채,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어둠 속에서 없는 사람처럼 살던 미정에게 경록은 캄캄한 어둠 속을 밝히는 전등 같은 존재였다. 도망치는 게 편하다는 사람에게 도망치지 말라고 말해준 사람.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소박한 것이다. 도시락 통에 담긴 방울토마토처럼. 하지만 그래서 더 소중하고 행복한 것일지도 모른다.
 
 
 
 
 
해피엔딩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배드민턴을 치던 공원도, 비 오는 날 그대를 생각하며 달리던 도로도, 함께 했던 모든 곳이 기억나는데 그곳에 그대만 없다. 이 둘의 사랑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별에도 해피엔딩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극 중에서 하루종일 경록만 생각한다는 미정이 그의 곁을 떠나기로 마음 먹었을 때, 이런 말을 남겼다. “이렇게 떠남으로서 당신과의 추억을 더 간직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 말에 무심코 공감이 되었다. 가끔 사랑이 너무 커지면 그 사랑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내가 그 사랑에 잡아먹힐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온다. 그리고 포기가 쉬운 미정은 그렇게 경록을 포기해버린다. 우리의 이별이 슬픈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다는 고통 때문이 아니다.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었는데 그 느낌이 끝나서 괴로운 것이다.
 
 
 

 

사랑은 마치 템페라 기법과 같다. 유화가 발명되기 전,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은 템페라 기법을 자주 사용했다. 템페라는 달걀 노른자와 안료를 섞어 그리는 회화 기법이다. 겹겹히 층을 쌓아 올리면 깊은 색감을 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쉽게 갈라지고 색이 변한다는 한계점이 있다. 결국 사라져버릴 그림인데도 불구하고 그 당시 작가들은 왜 그림을 그렸을까. 이런 점에서 사랑과 템페라는 비슷한 부분이 있다. 완벽하지도 않고 결국엔 사라져버릴 사랑을 왜 해야만 하는 것일까? 영화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사랑은 유약하기 때문에 비로소 완전하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행위 자체가 필연적으로 고통과 실연을 안고 가는 셈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시시각각 변하는 사랑의 풍경은 더욱 더 아름답다. 언젠가는 사라져도 괜찮다는 마음, 그리고 한 동안은 존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은 채 우리는 오늘도 여전히 사랑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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