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과 사는 남자”에 밀린 남자들 — 「휴민트」(2026) 리뷰
류승완 감독 / 조인성, 박정민, 신세경, 박해준 주연
2026년 2월 11일, 설 연휴를 겨냥해 개봉한 「휴민트」는 류승완 감독의 전작 「베를린」(2013)과 「모가디슈」(2021)를 잇는 해외 로케이션 3부작의 마지막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조인성·박정민·신세경·박해준이라는 화려한 캐스팅으로 개봉 전부터 많은 주목을 받은 기대작이었다.
그리고 지난 달, 극장가를 찾은 관객들은 「왕과 사는 남자」의 손을 들어줬다.
무슨 일일까?
줄거리
동남아시아에서 국제 범죄 조직을 추적하던 국정원 블랙 요원 조 과장(조인성)은 자신이 직접 관리하던 휴민트 정보원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다. 죄책감을 안고 단서를 쫓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한 그는, 현지 북한 식당 종업원 채선화(신세경)를 새로운 정보원으로 선택하며 그녀와 관계를 쌓아간다. 한편 같은 시간, 국경 지역 연쇄 실종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북한 보위성 조장 박건(박정민)은 사건의 배후에 북한 총영사 황치성(박해준)이 있음을 알게 된다. 박건에게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과거 약혼자였던 채선화를 다시 찾기 위해서다.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세 사람이 같은 도시에 모여들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Key point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은 역시 액션일 것이다. 류승완 감독 특유의 액션은 이번에도 유효하다.
오프닝 동남아 시퀀스부터 블라디보스토크의 추격전까지, 류승완 영화에 기대하는 것들이 대부분 충족된다.
또한 첩보물로서 기본적인 얼개를 잘 갖추고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정보의 흐름, 인물 간의 관계들이 비교적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어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기 어렵지 않다. 일부 첩보 영화들이 설정을 과도하게 쌓다가 오히려 피로감을 주는 것과 비교하면, 휴민트는 훨씬 담백한 접근을 취한다.
멜로의 사용 역시 눈에 띄는 부분이다. 첩보물에서 멜로는 자칫 장르의 무게 중심을 흐트러뜨릴 수 있는 요소인데, 이 영화는 그 비중을 의식적으로 절제한 느낌이다. 박건과 채선화 사이의 감정선은 존재하지만 과하게 밀어붙이지 않으며, 이야기의 중심을 액션과 첩보에 두려는 노력이 보인다. 균형이 잘 지켜진 멜로는 모든 이야기에 좋은 감미료가 된다.

#Warning point
하지만 영화가 가진 한계 역시 분명하다. 전체적으로 작품에서 느껴지는 정서가 다소 구시대적이다. 첩보물의 문법 자체가 낡았다기보다는, 그것을 다루는 방식이 익숙하고 안전한 선택에 머물러 있다는 인상이다.
특히 아쉬운 부분은 여성 캐릭터의 활용이다. 대표적으로 신세경이 연기한 채선화라는 인물은, 영화의 중심 인물처럼 포지셔닝되어 있지만, 실제 서사에서 채선화가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정보원으로 선택받고, 위기에 처하고, 구해진다. 그게 전부다. 캐릭터가 서사의 중심에서 어떤 선택을 한다기보다, 남성 인물의 서사를 보조하는 장치처럼 사용되는 느낌이 강하다.
이 문제는 특정 장면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통 안에 갇힌 채 흰 원피스를 입고 있는 여성들을 구출하는 장면은 시각적으로도 상당히 낡은 이미지다. 그림 자체가 그냥 촌스럽다. 여성 인물들이 서사의 동력이 아니라 구출의 대상으로만 기능하는 이 구도는, 「밀수」에서 보여줬던 여성 중심 서사와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진다.
재밌냐고 물으면, 재밌다. 류승완 영화가 주는 종류의 만족감은 「휴민트」에서도 분명히 작동한다.
화려함보다는 타격감, 복잡함보다는 명료함, 과잉보다는 절제. 이런 선택들이 모여 이 영화만의 리듬을 만든다. 완전히 새롭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지루하다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익숙하지만 안정적인 장르 영화의 미덕이 살아 있다.
다만 이 감독이 이만한 재료로 이것밖에 못 만들었냐고 물으면, 조금 다른 대답을 해야 할 것 같다.
한국 상업영화에서 첩보물은 늘 어딘가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 할리우드처럼 거대한 스케일로 밀어붙이기엔 제작 환경이 다르고, 그렇다고 인간 드라마에만 집중하기엔 장르적 쾌감이 아쉽다. 그런 상황에서 류승완 감독은 「베를린」을 통해 한국형 첩보물의 가능성을 여실히 증명해낸 바 있다. 그런 그가 다시 시도하는 첩보물인 만큼, 기대치가 높아졌음을 부정할 수 없다.
큰 기대를 받지 못하던 왕과 사는 남자는 공전의 히트를 치고, 휴민트는 쓸쓸히 극장 뒤편으로 사라졌다.
류승완이라는 이름값이 오히려 독이 된 것일까. 어쩌면 지금의 류승완은 ‘잘하는 것을 잘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관객들은 한 발 더 나아간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이젠 그에게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일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