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아직도 〈살인의 추억〉 을 기억하는가

인생작이란 무엇일까? 인생작이라는 단어에는 다양한 견해들이 존재한다. 우리의 영화적 감각을 눈 뜨게 해주는 스펙타클한 작품일까, 보고 나서 많은 고민과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일까? 혹은 잔잔한 울림을 통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시 보게 만드는 작품이 될 수도 있다. 각자의 취향과 관점에 따라서 인생작에 대한 정의는 차이가 있지만, 시간이 지나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을만큼 뛰어난 가치를 지닌 작품이라는 데에는 다들 동의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뛰어난 가치를 가진 작품들에게 ‘영원하라’라는 의미의 ‘불후’라는 수식어를 붙여, ‘불후의 명작’이라고 한다. 위대한 작품들이 영원히 다음 세대로 전해지며 더 많은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그럼으로써 더 많은 명작들이 탄생하길 희망하기도 한다. 오늘은 시간이 지나도 나에게 있어서 변하지 않는 불후의 영화, <살인의 추억>을 소개하려고 한다.

 


 

 

봉준호 감독은 2019년에 개봉한 <기생충>의 국제적인 성공 이후 한국 영화계의 상징이 되었다. 이런 그의 성공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영화 <살인의 추억>은 봉준호 감독이 얼마나 천재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는지 세계적으로 알려주었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3년에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두 번째 장편으로서 그 당시 장기 미제사건으로 유명했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다. 영화는 경기도 화성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살인사건으로 인해 특별수사본부가 설치되고, 지역 형사 박두만(송강호)과 서울에서 온 형사 서태윤(김상경)을 필두로 내용이 전개된다. 서로 사는 지역이 다른 만큼 범인을 쫓는 방식도 달랐다. 박두만은 실질적인 물증보단 심증을 위주로 지역 양아치들에게 접근했고 서태윤은 증거와 서류를 토대로 정석적인 방식의 수사를 고집했다. 스타일은 달라도 범인을 잡겠다는 일념 하나는 같았던 두 형사가 밤낮 가리지 않고 수사에 혼신을 다했지만 범인을 잡기는 커녕 진실은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당시 복잡했던 시대적 배경을 캐릭터를 통해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영화는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 일대에서 여성 10명이 연속적으로 살해되었던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를 한다. 이 영화를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선 당시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1980년에 들어선 전두환의 신군부 정권은 국가를 전유해 국민을 억압시켰다. 그에 저항하는 국민들이 민주화 운동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군사정권은 국민들을 폭력으로 진압했고 이런 유혈사태는 국가를 더욱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영화 속 1986년은 전두환의 신군부 정권이었던 제 5공화국의 막바지 시기였고 민주화 운동에 가장 불이 붙었던 투쟁의 시기이자 민주사회 전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봉준호 감독은 이런 시대적 특징을 영화 속 캐릭터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형사 조용구(김뢰하)는 전두환 정권의 하수인으로 나타난다. 군부를 의미하는 군화로 시위대와 시민들을 밟고 때리며 구타한다. 증거는 만들어서 조작하고 용의자들에게는 사형을 언급하며 거짓자백을 받아내기 일수였다. 그는 식당에서 밥을 먹다 정권을 비판하는 대학생들과 싸우게 되는데 이 때 못이 박힌 각목으로 다리를 얻어맞고 파상풍에 걸리며 다리를 절단하게 된다. 감독은 전두환의 군부독재를 조용구라는 캐릭터로 나타내고 ‘절단’이라는 처단을 내리며 말끔히 잘라내야만 민주주의 사회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주인공 박두만(송강호)도 청렴 결백한 인물로 묘사되지 않는다. 박두만은 조용구와 마찬가지로 야만스러운 수사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폭력적인 경찰관임에는 조용구와 다를 게 없지만 시위대 진압에 경찰 인력이 동원되는 것에 불만스러운 목소리를 내는 등 전두환 정권에 적극적으로 동조하지 않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는 작중에서 미국 수사드라마나 미국 제품, 이른바 미제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표현한다. 영화 막바지에 DNA 대조 검사도 실제로는 일본에 보내졌지만 영화에서는 미국 FBI로 보내는 걸로 각색한다. 결국 박두만의 미제 사랑도 범인의 DNA와 유력 용의자의 DNA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감정보고서와 함께 무너져버린다. 이는 당시 전두환 정권의 혼란 속 우리나라의 미국 의존성을 암암리에 나타낸다.

 

 

 

명장면 속 뒷 이야기

영화는 몰라도 한 때 누구나 다 알던 명대사, “밥은 먹고 다니냐”는 영화 후반 박두만이 유력 용의자 박현규의 DNA가 범행 현장 속 범인의 DNA와 일치하지 않음을 알고 난 뒤 내뱉었던 대사이다. 이는 사실 실제 대본 속에 있던 대사가 아니라 촬영 현장에서 박두만 역을 맡은 배우 송강호가 즉흥적으로 한 애드리브였다. 실제로 대본에 있었던 대사는 “됐다, 가라.”였다고 한다. 이 대사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했다. 첫 번째로는 ‘인간으로서 밥이 입으로 넘어가니?’라는 의미로 용의자 박현규를 범인으로 생각하는 상태에서 던지는 말이라는 의견이고 두 번째로는 잡지 못한 범인을 향한 말이라는 의견도 있다. 마지막으로는 비를 쫄딱 맞고 처량한 신세의 모습을 하고 있는 용의자 박현규에게 실제로 동정심을 느껴 한 말이라는 해석도 있다. 추후 송강호는 인터뷰에서 범인을 만난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었을 말이라며 관객들의 판단에 맡기겠다고 전했다.

 

 

 

선택은 온전히 관객의 몫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박현규는 진짜 범인인가?’ 영화 속 등장하는 박현규(박해일)는 여러 가지 정황 증거들로 인해 수사 과정 중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 받게 된다. 하지만, 정황 증거들만으로 범인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피해 현장에서 발견된 범인의 DNA와 박현규의 DNA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끝내 풀려나고 만다. 박현규라는 캐릭터는 영화를 클라이맥스로 끌고 올라가는 장치에 가깝고 감독은 그런 장치를 통해 관객들에게 그가 진짜 범인일 거라는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실제로 영화에서 박현규를 연기했던 배우 박해일은 봉준호 감독으로부터 진짜 결백하다고 믿은 채 연기를 하라고 지도 받았다고 전했다. 그렇게 영화의 결말은 다시 수사의 초기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열린 결말은 우리를 알 수 없는 가능성으로 인도한다. 보통 일반적인 범죄 영화에서 사람들은 확실한 범행동기와 증거를 통해 범인을 검거하는 사이다 같은 결말을 원한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범죄영화인 <살인의 추억>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영화의 마지막은 16년 뒤, 경찰 일을 그만 둔 박두만이 다시 사건장소를 찾아오는 장면으로 마무리가 된다. 범인을 잡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안타까움, 미련이 모두 담긴 표정으로 범행장소를 바라보던 박두만은 지나가던 소녀와 만나게 된다. 소녀는 박두만에게 예전에도 누군가 이곳에 찾아와서 가만히 보고있었다고 말한다. 혹시나 범인일까 싶어 생김새를 물어보는 박두만에게 소녀는 ‘평범’하다고 답한다. 감독은 이 부분에서 범죄자들은 특별하거나 독특하지 않으며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누군가’라고 관객들에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는 송강호가 정면을 바라보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 장면은 송강호가 스크린을 넘어 아직도 잡히지 않은 범인을 향해 무언의 메세지를 전하는 것이라고 해석된다.

 

 

영화가 개봉한지 벌써 23년이 지났고 영원히 미제 사건으로 남을 것 같았던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진범도 잡혔다. 이 결말을 보기 위해서 1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뛰어난 한국 작품 중 하나라고 평가받고 있다. 봉준호 감독은 항상 다양한 사회문제와 인간의 복합성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보여준다. 그 중 영화 <살인의 추억>은 다크코미디 요소와 섬세한 현실 묘사를 적절히 섞어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게 관객들이 실제 있었던 사건에 더 쉽게 공감하고 빠져들게 만들며 깊이 고민하게 만든다. 영원히 나의 인생작으로 남을 <살인의 추억>에 대한 글을 마무리 지으며 앞으로도 이런 작품을 스크린에서 만나볼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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