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를 알 수 있는 한국영화, 영화 ‘동주’

출처: 영화 ‘동주’

영화 〈동주〉(2016)는 윤동주 시인의 삶을 흑백 화면으로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이준익 감독의 절제된 연출과 강하늘(윤동주 역), 박정민(송몽규 역)의 밀도 높은 연기는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는 듯한 깊은 울림을 남긴다. 이 영화는 거창한 영웅담을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 속에서 ‘부끄러움’을 평생의 화두로 품고 살았던 한 청년의 내면을 고요히 따라간다. 그래서 더 조용하고, 그래서 더 아프게 다가온다.

영화는 후쿠오카 형무소의 적막한 공간에서 시작된다. 차디찬 감방 안, 사형을 기다리는 윤동주의 얼굴은 놀라울 만큼 평온해 보이지만 그 침묵 속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번민과 회한이 스며 있다. 카메라는 그의 눈빛을 오래 붙잡으며 관객을 과거로 이끈다. 북간도에서 자라던 소년 시절, 맑은 자연과 순박한 마을 풍경 속에서 동주는 유난히 생각이 깊은 아이로 그려진다. 반면 사촌 형 송몽규는 시대 현실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행동가적 기질을 지닌 인물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누구보다 이해하면서도, 시대를 대하는 방식에서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이 대비는 영화 내내 긴장감과 슬픔을 동시에 자아낸다.

연희전문학교 시절의 장면들은 젊음의 열기와 불안이 교차한다. 학생들이 모여 시를 낭독하고 조국의 현실을 토론하는 모습은 이상과 낭만으로 빛나지만, 그 이면에는 식민지 청년으로서의 한계가 선명하다. 동주는 친구들이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설 때마다 스스로를 돌아본다. 그는 총을 들지도, 격렬한 구호를 외치지도 않는다. 대신 언어를 붙들고 씨름한다. “나는 왜 이렇게 나약한가”라는 자문은 반복되며 그의 내면을 파고든다. 그러나 영화는 그의 망설임을 비겁함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치열한 자기반성이야말로 윤동주를 윤동주답게 만드는 힘임을 보여준다.

일본 유학 장면에서는 억압의 공기가 더욱 짙어진다. 창씨개명을 강요받고 조선어 사용이 금지되는 현실은 청년들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흔든다. 그 속에서 동주는 자신의 이름을 지키지 못한 채 괴로워하지만, 동시에 시 속에서만큼은 끝내 조선어를 놓지 않는다. 하숙방의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원고지를 채워가는 장면은 총칼보다 더 강렬한 저항처럼 다가온다. 작은 펜촉이 종이를 스치는 소리가 마치 시대를 향한 외침처럼 들린다.

흑백 촬영은 이 작품의 미학을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색을 덜어낸 화면은 인물의 표정과 숨결에 집중하게 만든다. 특히 눈 내리는 밤, 두 청년이 나란히 걷는 장면은 시각적 아름다움과 서정성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또한 카메라는 인물을 클로즈업하기보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관객이 스스로 감정을 곱씹게 한다. 과장된 음악 대신 흐르는 정적은 오히려 더 큰 울림을 만든다.

후반부 옥중 장면은 감정을 폭발시키기보다 끝까지 절제한다. 몽규는 신념을 굽히지 않는 단단한 태도를 보이고, 동주는 흔들리면서도 끝내 자신의 길을 부정하지 않는다. 실험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비인간적인 처우 속에서도 그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지 않는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는 다짐은 더 이상 한 편의 시가 아니라 삶 전체를 관통하는 신념이 된다. 죽음을 앞둔 그의 모습은 장엄하다기보다 담담하다. 그래서 더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윤동주의 시를 다시 펼쳐 보고 싶어졌다. 이미 알고 있던 구절들이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큰 소리로 감동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다가와 오래 머문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다르지만, ‘부끄러움’이라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나의 언어와 행동은 부끄럽지 않은가.

〈동주〉는 한 시인의 전기를 넘어, 시대 속에서 고민하는 모든 청춘의 이야기다. 화려함 대신 절제, 격정 대신 사색을 택한 이 작품은 오히려 그래서 더욱 강렬하다. 상영관의 불이 켜진 뒤에도 마음 한편이 오래도록 어두운 채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 나는 작은 빛을 보았다. 그것은 윤동주가 끝까지 붙들었던 양심과 언어의 힘이었다. 이 영화는 그렇게, 한 편의 긴 시처럼 우리 가슴에 조용히 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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