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켄트 존스 감독의 <나의 사적인 예술가(2026)>이 상영되었다.
〈나의 사적인 예술가〉의 주인공은 한때 시인이었으나 현재는 뉴욕의 우체국에서 일하는 노년 에드이다. 이 영화는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에드에게, 그의 시집에 열광하는 젊은 예술가 지망생들이 찾아오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다.

<나의 사적인 예술가> 속 젊은 예술가 지망생들은 그의 시집을 추앙하며, 다시 시를 발표해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한다. 오랜 시간 시를 쓰지 않았던 에드는 그들의 낯선 반응에 부담을 느끼지만, 점차 자신을 향한 존경에 매혹된다. 그 과정에서 연극 배우 글로리아를 만나고, 그녀에게 미묘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스포일러 주의*

에드는 젊은이들의 모임에 정기적으로 나가며, 그들이 개최하는 발표회에서 새로운 시를 발표하기로 한다. 젊은이들과 글로리아의 찬사에 처음엔 혼란스러워하지만, 점차 그 분위기에 적응해간다. 자신이 정말 존경받을 만한 예술가라는 생각에 빠지고, 그곳에서 만난 글로리아에게 사랑과 희열을 느낀다.
마치 젊었을 적 예술에 대한 열망과 활기를 되찾은 듯한 감각이다.
하지만 발표회가 다가올수록 어긋남이 드러난다. 진실된 사랑이라 믿었던 글로리아는 결국 그를 이용했을 뿐이고, 발표회가 끝난 뒤 그는 자신이 그저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장식, 일종의 들러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의 시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낭독하고 박수를 받는 순간. 분명 짜릿하고 희열을 느끼는 순간이어야 하지만, 커튼 뒤로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은 오히려 쓸쓸하고 초라하게 느껴진다. 발표회의 잔기를 즐기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에드는 조용히 그곳을 벗어난다.
에드와의 첫 만남에서 젊은이들은 주변 인플루언서를 비난하며, 자신들은 폰을 멀리하고 옛것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예술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강조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발표회에 오는 사람들, 그들에게 보여질 ‘보기 좋은’ 작품, 그리고 발표회 이후 스마트폰 속 익명의 평가에 집착한다. 심지어 다른 관객인 척 직접 글을 쓰기까지 한다.
결국 에드는 그곳을 떠난다. 그를 뒤쫓아 나온 한 어린 청년이 자신의 재능을 묻고, 글을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런데 그 청년은 에드의 시를 읽어본 적조차 없다.
사실 그 모임에서 에드의 시집을 제대로 읽은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나머지는 그의 작품이 아니라, ‘과거의 예술가’라는 명성과 서사를 소비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 장면에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나 역시 발표회 전까지 에드의 시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도 젊은이들의 추앙을 보며, 자연스럽게 ‘실력 있는 시인일 것’이라는 착각을 했다. 물론 미묘한 괴리감은 있었다. 그들의 존경은 구체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시를 내달라는 말, 존경한다는 말은 넘치지만, 정작 그의 시를 언급하는 순간은 없었다. 첫 모임에서도 질문은 에드 개인이 아니라, 그의 주변 예술가들에 대한 것이었다.
<나의 사적인 예술가>는 허영된 명성이 예술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드러낸다.
젊은이들에게 에드는 작품이 아니라, ‘필요한 서사’였다. 에드는 그들에게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줄 상징, 그리고 그들이 소비하고 평가받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자연스레 ‘나의 사적인 예술가(Late Fame)’라는 제목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우리가 믿는 건 무엇인가? 허왕되고 부풀려진 명성, 거품 낀 평가는 현재의 예술, 그리고 지금의 사회에도 여전히 이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