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참교육>이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여성 혐오 및 흑인 비하 논란이 있었던 웹툰을 드라마화한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표한 바 있었다. 아무리 원작의 소재만 따온다 하더라도, 웹툰 자체의 논란을 지울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참교육>은 공개되자마자 엄청난 화제성을 기록했다. 2026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오리지널 드라마 중 가장 높은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했으며, 공개된 지 약 2주차인 시점에 45개국 넷플릭스에서 1위 자리에 오르며 ‘전 세계 1위’라는 쾌거를 달성했다. <참교육>은 교권 보호국이라는 정부기관을 통해서 피해 학생 및 교사의 ‘교권’을 보호하기 위해 가해자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교육해나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체적인 스토리의 맥락만 보았을 땐, <모범택시>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모범택시>는 법의 뒤편에서 꼭 학생이나 교사가 아니더라도 도움이 필요한 피해자들을 사적으로 응징하는 것이라면, <참교육>은 정식적인 국가의 주도로 교육 시스템 하에 있는 가해자들을 제한 없는 방법으로 체벌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참교육>은 분명 통쾌한 이야기이지만, 그 이면에는 불편함이라는 감정도 숨어있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참교육>에서의 무엇이 통쾌하고, 또 무엇이 불편한지 살펴보고자 한다.

수단의 제한 없는 체벌에서 느껴지는 극강의 통쾌함
<참교육> 속 교권 보호국에서는 가해자들을 교육하는 데에 있어서 제한 없는 체벌을 가할 수 있다. 극중 교권 보호국 감독관 나화진(김무열)의 대사인 ‘말로 해서 듣지 않는다면, 때려서라도 가르친다’에서 알 수 있듯, 가해자들을 일깨우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방식이든 가능하다는 것이다. 학생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교사들의 체벌이 금지된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학생들에 의해 이러한 권리가 악용되어 교권이 추락하고 있는 사례가 만연하게 나타나고 있다. 더 나은 교육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심각하게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다. <참교육>에서는 이처럼 교권을 무너뜨리는 가해자들을 철저히 응징한다. 교권 보호국의 감독관들은 마치 무적과 다름없다. 어떠한 상대도 그들에게는 단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에 불과하다. 이러한 교권국의 감독관들을 통해, 시청자들은 사회의 현주소에 대한 답답한 마음을 누그러뜨리게 된다. 현실에서는 매번 가해자들에게 고개 숙여야만 했던 피해자들은, 교권 보호국을 만남으로써 비로소 그 고통에서 벗어난다. 즉, <참교육>은 피해자의 편에 서서 잘못된 행동을 하는 가해자들을 갱생할 때까지 철저하게 관리 감독한다. 교권국은 가해자의 모든 경우의 수를 파악하여 그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원천봉쇄한다. 가해자들을 단숨에 제압하는 그들의 행보를 통해 시청자들은 극강의 짜릿함을 느끼게 된다.

일차원적이고 단편적인, 힘에 의한 복수
일차원적이라는 개념은 장단점 모두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스토리의 전개 상 ‘일차원적’의 개념은 복잡한 생각이 필요 없다는 뜻으로 해석 가능하다. 심오한 해석에 매몰될 필요 없이 보이는 그대로 이해하면 된다. 이는 복잡한 현실 속 단순한 해결책이 되어주며 큰 진입장벽 없이 작품 자체를 즐길 수 있다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법의 테두리 내에서 보호될 수 없는 피해자들을 위해 가해자들을 공적인 기관을 통해 무력으로 체벌하고 복수하는 행위는 ‘눈눈이이’ 법칙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사건들을 조명하고 있는 만큼, 현실에 대한 고려도 외면하지는 말아야 한다. 우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을 또 다른 폭력으로서 제압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이 있다. 드라마 속 교권국의 감독관들은 어떤 가해자들과 붙어도 무조건 이기는, 절대적인 힘의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렇기에 가해자들은 자신이 만만하게 봤던 교권국 감독관들이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에 엄청난 공포감을 느낀다. 힘으로, 권력으로 웬만큼 밀리지 않았던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상대를 만나게 됨으로써 그들은 결과적으로 무력감과 압박감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단체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교권국 감독관들은 ‘드라마’라서 그려낼 수 있는 가상의 인물들이다. 그들을 최상급의 싸움 실력으로 설정한 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짜릿함을 선물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상 세계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한계를 보여준다. 폭력으로서 그들을 잠재운다는 것을 과연 진정한 교육이라고 볼 수 있을까. 만약 교권국 감독관들이 가해자들에게 힘으로써 지는 경우는 어떨까. 그렇다면 정부기관으로서의 교권국의 신뢰가 급락함과 동시에 학생들을 비롯한 가해자들이 공권력을 더 우습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단순히 힘겨루기를 통한 어른들의 우위를 보여주는 건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진정한 인식과 반성으로 유도하는 것이 아닌, 물리적인 권력에서 오는 일시적 후퇴에 불과하다는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권리를 침해하는 교권국
드라마 속 교권국은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 해킹, 시험지 변경 등의 행위를 당연한 권리처럼 자행한다. 이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다. 교권을 위협하는 가해자를 잡기 위해 또 다른 시스템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9화에서는 교권 감독관들이 가해자의 목소리를 따와 자신들의 목소리 위에 입혀 피해자의 피해 상황을 파악하는 장면이 나온다. 또한, 3화에서는 ‘거짓 성추행 폭로’로 교사를 자살까지 몰고 간 인플루언서 학생의 인스타그램을 해킹해 접근을 제한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따라서 그동안 자신이 올렸던 사진과 영상들이 모두 지워지게 되고, 어떠한 게시글도 올리지 못하게 제한 당한다. 더불어 교권국에 의해 거짓 성폭행 폭로 영상의 원본이 업로드되면서 가해자의 만행을 공개적으로 SNS에 드러낸다. 가해자의 목소리를 이용하며, 개인의 SNS를 국가 차원에서 제한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단지 피해 사실에 대한 단서를 얻고 가해자를 ‘참교육’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또한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특히나 그것이 정부 산하의 기관에서 행해지는 방법임을 고려할 때, 이를 통해 파악한 단서들이 증거로서 활용될지도 의문이 든다. 더불어 4화에서는 숙명여고 쌍둥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에피소드가 펼쳐지는데, 이 장면에서 교권 감독관 나화진은 시험을 치고 있는 도중 들어와 교무부장의 비리 사실에 대해 폭로한다. 이는 작중 사이다 장면으로서 기능하지만, 학생들의 입장에서 보면 시험시간에 문제를 풀 권리를 침해당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특히나, 전날 시험지의 구성을 교권국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몰래 변경했다는 것 또한 시험문제를 출제한 교사에 대한 권리를 존중하지 않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겉보기에는 교무부장을 공개적으로 폭로함으로써 좋은 교사라는 이면에 숨겨진 추악한 면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지만, 시험을 치는 무고한 학생들의 시간을 방해함과 동시에 고민 끝에 문제를 배치한 무고한 교사의 또 다른 권리를 침해했다는 것이다. 한편, 교권 감독관 임한림(진기주)의 극중 대사도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성형했냐는 학생의 말에 ‘가슴 축소 수술’을 했다고 답하며, 반 학생들에게 ‘그런데 우리 반에는 딱히 축소가 필요한 학생은 없어 보인다’라고 덧붙이는 임한림의 발언은 교육이라는 목적 하에서 우선적으로 지양해야 하는 발언이다. 학생들이 교사에게 행하는 교권 침해의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면, 이러한 대사는 더더욱 다른 내용을 대체 가능하다. ‘여성이라면 이렇게 생각하겠지’에 대한 고정적인 프레임에 갇힌 발언이기에 사이다로서 이러한 장면을 삽입했다는 것에 아쉬움이 남는다.

드라마 <참교육>은 사회 문제들을 언급하며 가해자들에 대한 시원한 공적 복수를 감행한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고 있지만, 이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부차적인 문제들을 외면한 채 안일하게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점에서 비판 또한 받고 있다. 교권이 무너졌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교권 보호국’이라는 정부 기관의 등장은 신선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정말 교육을 목적으로 어떠한 제한도 없는 체벌을 행하는 것만이 과연 교권을 재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지에 대해선 의문이 남는다. 우리의 일상에서 ‘슈퍼히어로’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