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이 내리던 그 마을, 〈웰컴 투 동막골〉

학창시절, 누구나 겪는 경험

🙋 : 선생님!! 시험도 끝났는데

재밌는 영화 틀어주세요!!!

🧑‍🏫 : 오케이 👌👌

그렇게 교실 불이 꺼지고,

지금 생각하면 제목도 가물가물한 영화 한 편이 재생된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어? 이 영화 학교에서 봤던 건데?”

하고 기억이 돌아오기도 한다.

내게 그런 영화가 바로,

<웰컴투 동막골(Welcome To Dongmakgol)>

_________________________

개봉 : 2005.08.04.

감독 : 박광현

출연 : 정재영, 신하균, 강혜정

관객수 : 643만명

 

줄거리

1950년 11월,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그 때… 태백산맥 줄기를 타고 함백산 절벽들 속에 자리 잡은 마을, 동막골.

이 곳에 추락한 P-47D 미 전투기 한 대. 추락한 전투기 안에는 연합군 병사 스미스(스티브 태슐러)가 있었다.

동막골에 살고있는 여일(강혜정)은 이 광경을 목격하고 소식을 전달하러 가던 중 인민군 리수화(정재영) 일행을 만나게 되고 그들을 동막골로 데리고 온다.

바로 그 때, 자군 병력에서 이탈해 길을 잃은 국군 표현철(신하균)과 문상상 일행이 동막골 촌장의 집까지 찾아 오게 되면서

국군, 인민군, 연합군이 동막골에 모이게 되고 긴장감은 극도로 고조된다.

(출처 : KMDb 한국영화데이터)

__________________________

 

*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꼭 감상 후 읽으시길!

1. 머리에 꽃을 꽂은 소녀와 군인들

그리고 추락하는 비행기, 슬로우모션, 나비.

분명 전쟁 영화인데 이상하게 동화 같은 이미지가 먼저 들어온다.

곧이어 이후 리수화(정재영)가 이끄는 북한군이 등장한다.
부상병을 두고 가자는 부하와 대치하는 장면에서 전쟁의 냉혹함이 드러난다.


이어 남한군과 조우하며 총격전이 벌어지고 사상자가 발생한다.

한편, 부대에서 도망친 남한군 문상상(서재경)은 자결을 시도하려는 표현철(신하균)을 만난다.
두 장면은 전쟁이 개인을 어디까지 몰아붙이는지 보여준다.

2. 평화로운 마을, 동막골

“뱀이 나와.”

그 말과 함께 머리에 꽃을 꽂은 여일이 등장한다.

 

총격전과 대비되는 그 모습이 묘하게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이 영화의 방향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그 한마디를 따라 군인들은 점점 산속으로 들어가고 전쟁을 모르는 마을, 동막골에 닿는다.

 

꽃과 풀이 무성하고 나비가 날아다니는 곳. 조금 전까지 서로를 공격하던 공간과는 전혀 다른 세계다.
이 영화에서 꽃과 나비, 자연은 사람이 사람으로 돌아오는 공간, 전쟁을 잠시 잊게 해주는 평화의 장치이다.

남한군과 북한군이 처음 마주한 순간. 분명 긴장감이 넘쳐야하지만, 동막골 사람들은 수류탄을 보고도 아무 동요가 없다.
오히려 지금 눈앞의 무기보다 감자밭의 맷돼지가 더 중요한 자들이다.

전쟁과 이념이 아니라 먹고 사는 일, 오늘을 살아내는 일, 그리고 눈앞의 사람. 곁에 있는 삶이 먼저인 세계. 그러한 점이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3. 늘 최악을 먼저 상상하는 우리

<웰컴 투 동막골>의 명장면은 역시, 수류탄이 터지며 옥수수가 팝콘처럼 하늘에 쏟아지는 장면이다.

위협의 상징이었던 무기가 아이처럼 뛰어다니게 만드는 눈이 된다.

나는 이 장면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 울컥한다.
우리는 늘 최악을 먼저 상상하며 산다. “터지면 어떻게 하지”, “망하면 어떻게 하지”

 

그런데 이 영화는 말한다. 같은 폭발이라도,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팝콘 사건’ 이후 남한군과 북한군은 처음으로 긴장을 내려놓는다.
코를 골며 안심한 모습이 무겁게 다가왔다. 무엇이 그들을 잠도 못자고 총을 들게 만든 걸까.

 

그중 어린 북한군은 어느 나라가 먼저 쳐들어간지도, 이유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나는 가라니 갔소.” 라고 말한다.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거창한 이념도, 분노도 없다. 그저 시키는 대로 움직였을 뿐이라는 담담한 고백.

그들 중 전쟁을 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전쟁만 아니었다면 그들은 평범하게 밥을 먹고, 웃고, 잠들었을 사람들이다.

그저 맷돼지 한 마리를 함께 잡고 기뻐하고, 고기를 구워 먹으며 웃고, 잔디밭에서 썰매를 타며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4. 표현철이란 인물

내가 영화에서 제일 좋아하는 인물은 표현철(신하균)이다. 그는 첫등장에 자결을 시도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먼저 마을 사람들을 지킨 인물이기도 하다.

수류탄이 터질 위기 앞에서 망설임 없이 뛰어들고, 맷돼지에게 위협받는 어린 북한군을 구해낸다.
겉으로는 무기력해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그는 사람을 살리는 쪽을 선택한다.

이런 모습들은 그의 희생적인 성격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표현철에게는 과거가 있다. 피난민이 건너던 다리를 자신의 손으로 폭파했던 기억.
그 사건 이후 그는 깊은 죄책감과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자결을 시도했던 이유 역시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은 거대한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파괴하는 일이다.

그가 자결을 시도하고, 몸을 던져 사람을 구하는 행동은 현재를 위한 선택이면서 동시에 과거의 자신에게 건네는 속죄가 아니었을까.

그를 그 기억에서 잠시나마 꺼내준 공간이 바로 동막골이다.

 

<웰컴 투 동막골>은 전쟁을 다루고 있지만 동시에 상처 입은 사람을 바라보는 영화,
즉 치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5. 동화같은 CG

중간에 등장하는 어색한 CG도 지금 보면 솔직히 촌스럽다.
팝콘이 터져 눈처럼 내리는 장면, 다같이 맷돼지를 붙잡는 장면

 

그런데 이상하게 그 어설픔이 동막골의 분위기와 잘 맞는다.

현실과 동화의 경계에 서 있는 느낌이다.

완벽하지 않아서 더 동막골 같다.

6. 현실이 꿈이었다면

평화는 오래가지 않는다. 미군이 등장하면서 동막골에도 결국 현실이 밀려온다.
표현철(신하균)과 리수화(정재영)는 마을을 지키는 쪽을 선택한다.

 

모두 이미 충분히 죄책감 속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표현철은 희생된 민간인을 위해, 리수화는 두고 온 동료들을 위해.

폭격기가 떨어지는 마지막 장면은 처음 팝콘이 터지던 순간과 겹쳐 보인다. 같은 폭발이지만, 한 번은 웃음이었고 이번에는 끝이었다.

그들이 마지막에 지은 미소는 속죄이면서 안도였고, 어쩌면 해방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 아무 일도 모른 채 다섯 사람이 나란히 잠든 모습.

 

초등학생이던 나는 그 장면에서 크게 울었다. 마치 모든 일이 한낱 꿈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꿈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전쟁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그냥 평범하게 웃으며 살아갔을 사람들이었다.

<웰컴 투 동막골>은 전쟁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보다 전쟁이 사라진 세계를 잠시 보여준다.
그리고 그곳이 얼마나 행복한지 우리에게 말해준다.

 

전쟁은 거대한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일상을 파괴하는 일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어딘가에서는 실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7. 여전히 그리운 동막골

가끔 힘든 날, 아무 생각도 하기 싫은 날에 이 영화를 다시 꺼내본다. 잔인하게만 느껴지던 어린 시절과 달리, 어른이 된 지금은 조금 다르다.
오히려 동막골처럼 잠시라도 걱정과 시름을 내려두고, 전쟁 따위의 같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서 그저 자연 속에 섞여 지내보고 싶다.

 

가끔은 잔디밭에서 썰매도 타고, 비를 맞으며 춤을 추기도 하고, 누군가를 의심하지 않아도 되고 이유를 따지지 않아도 되는 곳. 그곳이 그립다.


아마 어디선가 그들은 여전히 평화롭고 조용하게, 어딘지 모를 산속 깊은 곳에서 잘 지내고 있을 것만 같다.

내 마음속에서 동막골은 어딘가에 그대로 남아 여전히 웃고 있다.

 

(이미지 출처 : <웰컴 투 동막골> 스틸컷)

 

You May Also Like...

나의 20살을 채운 백예린

이 앨범을 2020년 봄쯤 접했는데 자취방 근처에 산책로가 있어서 마음이 심란해질 때마다, 외로울 때마다 걸으며 이 앨범의 노래들을 들었다. 특히 라는 노래, 이 노래에는 유난히 애정이 있다. 점차 따뜻해지는 공기와 심란할 때마다 걷는 평화로운 거리가 유려한 이 음악과 너무 잘 맞았다.

본문보기 »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지점 〈캐치 캐치〉 — 최예나

최예나 하면 이제 록 사운드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네모네모’, ‘착하다는 말이 제일 싫어’를 거치며 그는 록과 팝을 중심으로 신나고 발랄한 음악을 자신의 색깔로 굳혀왔다. 예나 자신도 “록 사운드 무대에서 확실히 신이 난다, 팬들 반응 역시 뜨거운 게 느껴진다”라며 “이 음악을 부를 때 행복하고 스스로 멋져 보이는 느낌”이라고 밝힌 바 있다.

본문보기 »
error: 콘텐츠가 보호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