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1일(현지시간), 제68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K-pop 역사에 남을 장면이 만들어졌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삽입곡 〈골든(Golden)〉이 ‘베스트 송 라이튼 포 비주얼 미디어(Best Song Written for Visual Media)’ 부문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이 부문은 가창자가 아닌 작곡가와 송라이터에게 수여되는 상으로, 곡의 창작 역량을 평가하는 영역에 해당한다.
이번 수상의 주인공은 가수이자 작곡가 이재(EJAE), 더블랙레이블 소속 프로듀서 테디, 24, 그리고 아이디오(이유한·곽중규·남희동)이다. 과거에도 황병준, 영인 킴 등 한국계 인물이 그래미에서 엔지니어 부문 수상을 한 사례는 존재했다. 그러나 K-pop을 전문적으로 만들어온 작곡가와 프로듀서가 그래미 트로피를 거머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지점에서 이번 수상은 K-pop이 미국 음악 산업 내 창작 영역에서 공식적인 인정을 받았다는 사건으로 읽힌다.
수상 직후 미국 언론의 관심도 집중됐다. AP통신은 〈골든〉이 K-pop 아티스트 최초로 그래미를 수상한 곡이라고 전하며, 수상자들이 영어와 한국어를 오가며 소감을 밝혀 곡의 이중언어적 매력을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수상을 두고 “K-pop이 오랜 시간 넘지 못했던 장벽을 마침내 허문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2025년 가장 강력한 글로벌 문화 콘텐츠 중 하나이며, 넷플릭스 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이라는 점에도 주목했다. 단순한 음악 수상을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이 제도권의 인정을 받았다는 해석이다.
버라이어티 역시 〈골든〉을 “그래미를 수상한 최초의 K-pop 곡”이라 소개하며, 후렴구 가사인 “It’s our moment”를 인용해 “지금이야말로 K-pop의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더불어 해당 곡이 오는 3월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 주제가상 부문에서도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테디의 수상은 K-pop 산업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그는 1998년 그룹 원타임으로 데뷔한 이후 YG엔터테인먼트의 핵심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빅뱅, 투애니원, 블랙핑크 등 글로벌 K-pop의 흐름을 이끌어온 인물이다. 서구 시장에서 K-pop의 기반을 다진 1세대 글로벌 확장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번 그래미 수상은 하나의 상징적 귀결이라 할 수 있다.
테디는 과거 레이디 가가와의 작업 제안을 받았으며, 2021년에는 빌보드가 선정한 ‘21세기 가장 뛰어난 프로듀서 50인’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이미 국제적 명성을 확보한 프로듀서였기에, 이번 그래미 트로피는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이번 수상은 그래미 본시상식이 아닌 사전 행사(Premiere Ceremony)에서 이뤄졌다. 그래미는 수십 개의 세부 부문으로 구성되며, 이 중 일부만이 본무대에서 시상된다. K-pop은 아직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앨범’, ‘올해의 노래’ 등 이른바 제너럴 필드의 본상 수상에는 이르지 못했다.
〈골든〉은 올해의 노래를 포함해 총 5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나, 주요 부문 수상은 불발됐다. 이는 K-pop이 그래미의 중심 무대에 완전히 진입했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래미는 빌보드 뮤직 어워즈,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와 함께 미국 4대 대중음악 시상식으로 꼽히며, 동시에 오스카, 에미상, 토니상과 더불어 미국 4대 문화 시상식 중 하나로 분류된다. 대중적 인기보다는 음악성과 예술적 완성도를 중시하는 보수적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K-pop은 아시아 기반의 아이돌 산업 구조와 10대 중심 팬덤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어, 전통적 미국 주류 음악계와는 구조적으로 거리가 있었다. 방탄소년단(BTS)조차도 후보에 오르며 존재감을 과시했지만, 끝내 수상의 벽을 넘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이번 시상식에서 로제 역시 브루노 마스와의 듀엣곡 〈APT.〉로 주요 부문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에는 실패했다.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곡이었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버라이어티는 그래미에서 외면당한 아티스트로 “대부분의 K-pop”을 언급하며, 여전히 K-pop에 인색한 태도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그래미의 보수성과 미국 중심적 시각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수상이 갖는 의미는 분명하다. 〈골든〉의 작곡자들이 그래미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는 사실 자체가 K-pop 그래미 수상의 물꼬를 텄기 때문이다. 또한 제너럴 필드를 포함한 여러 부문에 후보로 지명됐다는 점도 이전과 비교하면 진전된 성과이다.
하이브의 글로벌 걸그룹 캣츠아이(KATSEYE) 역시 후보에 오르며 존재감을 드러냈고, 로제는 오프닝 무대를 장식하며 시상식의 중심에 섰다. 이는 K-pop이 글로벌 음악 산업의 주요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래미와 같은 전통적 시상식은 급격히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K-pop의 위상은 한층 강화됐다. 앞으로 본시상식 주요 부문 수상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특히 완전체 복귀를 앞둔 방탄소년단의 행보는 다음 그래미에서 중요한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미가 끝까지 지켜온 상징적 아성을 K-pop이 어떤 방식으로 흔들게 될지, 그 다음 장면을 기다리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