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란 장르에 들어온 초현실, 〈신이랑법률사무소〉

시대를 타지 않고 늘 먹히는 장르가 ‘법조물’이라고 생각한다.
입시물이 드라마계를 휩쓸고 지나가고, 청춘물이 대거 등장했다 사라지고,
잔잔한 일상물이 대두되던 시절을 지나는 동안 늘 자리를 지킨 장르의 위엄.

웅장하고 복잡하고 화려하던 법조물은
이제 옷가지 하나를 더 입었다.

초현실.

지옥에서 온 판사
판사 이한영
그리고 이제 막 방영을 시작한 <신이랑 법률사무소>.

지옥을 지키던 신이 인간 판사의 몸에 빙의를 하고
죽은 판사가 시간을 회귀해 10년 전으로 살아 돌아오고
귀신을 보는 변호사가 귀신의 도움을 받아 재판을 진행한다.

법조물은 현실에서 벌어진 사건을 각색하여 등장시키고
당시의 법체계를 최대한 반영하여 구성하는 등
현실 고증에 굉장한 공을 들인다.
법조인 출신이 대본을 집필하거나, 촬영 현장에 자문인이 함께하는 등의 방법으로
실제 현실을 충실히 따르려 노력한다.

그런 현실적인 장르에 초현실이 덧씌워지게 된 배경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이제 평범한 법조물로는 새롭게 선보일 수 있는 모습이 없기 때문일까?

 

 

법의 빈틈, 초현실이 들어갈 자리.


 

법은 언제나 옳은가.
법은 언제나 정의로운 결과를 만들어내는가.

우리는 알고 있다.
법은 옳고 정의로운 대상을 밝게 빛내주는 존재이자
구석에 숨어 숨 쉬는 불의를 향해 무심히 손전등 비추는 존재이며
동시에 증거로 남지 못한 목소리 앞에서는
한없이 차갑게, 침묵하는 존재라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법을 동경하고, 법 앞에 동요한다.
법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법은 내 편을 들어주겠지,
법만은 나를 알아봐 주겠지, 기대한다.

그러나 차가운 법이 뜨겁기만 한 우리 앞에 버티고 서 있을 때,
그것이 도저히 넘지 못할 벽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법을 내 편이라 인식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끝내, 기대를 거둔다.

 

우리가 법정 드라마를 볼 때 씁쓸해지는 순간도 이 지점이다.

서사를 따라가며 응원해 온 대상이 법이란 현실 앞에 막혀버리는 순간.
그리고 완전히 꺾여버리는 순간.

그것은 뼈아픈 현실이고 가슴 깊이 여운을 남기지만
그만큼 외면하기 어려운 괴로움이기도 하다.

그래서 최근의 법정 드라마는
초현실이라는 장치를 끌어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간다.

 

 

 

神 들린 변호사 : 神이랑 (함께하는) 법률사무소


 

드라마 <신이랑 법률사무소>의 신이랑 변호사는
35세의 나이에 이제 막 변호사가 된 늦깎이 변호사다.

검사였던 아버지의 불명예스러운 사망으로 인해
법조계에서 지긋지긋한 낙인찍혀버린 신이랑은
변호사라면 누구나 입사를 원하는 <태백>의 면접 자리에서 노골적인 멸시를 마주하고 돌아선다.

이후 빤한 그 바닥 사정을 느끼고
신이랑은 직접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다.

하필 무당집으로 쓰이던 곳.
그곳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차마 외면할 수 없는 돈 한 푼 없는 의뢰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귀신.

그렇다면 귀신 보는 초보 변호사는 어떻게 귀신과 공존할 것인가.
그리고 그 관계는 법이라는 시스템 앞에서 어떻게 작동할 것인가.
그게 관건인 것이다.

 

 

 

사람의 한계, 귀신의 개입 : 빌려 쓰는 힘


 

 

<신이랑 법률사무소>의 신이랑 변호사는 이제 막 변호사가 된 초짜 변호사다.
아직 요령도 없고 부족한 것도 많은 풋내기.
그런 그에게, 그의 한계를 채워 귀가 되고 눈이 되어줄 공조자가 생긴다.

 

죽은 자, 자신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한 사람.
하지만 도통 알릴 길이 없어 억울한 마음만 남기고 구천을 떠도는 존재.
매 사건마다 비밀스러운 사건 당사자가 조력해 준다면, 신이랑에게 그 점은 가장 큰 무기가 될 것이다.

 

 

<신이랑 법률사무소>의 1-2화에서는
조폭 출신이자 의료사고 피해자인 이강풍이 신이랑의 의뢰인이자 조력자로 등장한다.
그는 인간의 영역 바깥에서 사건에 개입한다.

상대 변호인단의 회의 내용을 엿들어 전달하고,
검사로부터 새로운 정보를 빼돌리며 사건의 흐름을 뒤집는다.
사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정보의 지점에, 귀신은 자연스럽게 접근한다.

 

그는 의료사고 당시의 침묵을 대신 깨뜨리기도 한다.
말하지 않는 의료진들을 대신해 그날의 진실을 전달하고
사건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장면들을 보여준다.
증언이 사라진 자리에서, 귀신은 소리 없이 증언한다.

게다가 귀신이 흥분할 경우 신이랑의 몸에 빙의 된다는 설정은
위기의 상황에서 구원 장치로 역할 하는 동시에 예측 불가능한 변수로 작동한다.

 

이강풍 역시 예외가 아니다.
갑작스러운 빙의는 몇 차례 위기를 만들었다.

알레르기로 삼겹살을 먹지 못하는 신이랑의 몸으로 삼겹살을 폭식하거나,
재판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변호사의 몸으로 과격한 언행을 일삼는 등
통제되지 않는 개입으로 신이랑을 위기에 빠뜨리기도 한다.

 

하지만
조직폭력배에게 붙잡혀 죽음을 목전에 둔 신이랑에게 빙의하여서는
조폭 출신답게 폭력배들을 단숨에 제압하는 등
신이랑과 일행을 구해내는 결정적인 역할 역시도 수행한다.

 

 

 

사라지는 공조자, 그가 남긴 것


 

 

이강풍은 사건이 해결된 뒤, 더 이상 이승에 머무르기를 바라지 않는다.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 그리고 자신을 사랑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졌음을 확인하고는
이승에 대한 미련을 거둔다.

그와 잠시나마 함께 지내며 공조한 신이랑은
쉽게 지울 수 없는 아쉬움을 드러낸다.

얼른 부적을 태워 눈앞의 귀신을 치워버리려 했던
초반의 태도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정을 쌓았던 만큼
시청자 역시 이강풍과의 이별 앞에서 아쉬움을 느낀다.

현실이란 장르에 스며든 비현실, 귀신, 이강풍.
그의 등장과 퇴장은 단순한 공조를 넘어선다.

사이다 전개의 쾌감을 남기고,
현실 속 힘없는 피해자들 역시 저렇게 구제받기를 바라는 마음을 건드리며
억울함을 모두 풀어냈음에도 다시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
씁쓸한 한계를 본다.

그리고 그 끝에는,
이 모든 과정을 통과하며 한층 성장한 신이랑이 남는다.

 

이제 관심은 다음으로 향한다.
새로운 공조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지,
귀신이라는 존재에 조금 더 익숙해진 신이랑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그리고 새로운 의뢰인 겸 공조자는 어떤 능력으로 사건을 유리하게 만들지.

이강풍은 떠났지만,
그가 남긴 질문과 가능성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았다.

 

 

 

변호사, 들어주는 존재.


 

<신이랑 법률사무소>의 기획 의도를 읽어보다
유독 눈에 띄는 문장을 찾았다.

“용기 있는 변호사 신이랑을 통해
죽은 이는 마지막 안식을 갖고, 산 자는 다시 살아갈 용기를 갖는
희망찬 세상을 그려 보려 한다.”

신이랑은, 산 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변호사이자
죽은 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무당이다.

산 자의 억울함과 죽은 자의 한을 풀어주는 존재.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모두 마음 편안해질 수 있는 사회.
그를 바라는 염원에 응답하여 신이랑이 나타났다.

“세상에 없는 변호사가 들려주는, 그 어디에도 있었으면 하는 이야기.”

<신이랑 법률사무소>.

 

 

You May Also Like...

광해 왕이 된 남자, 이 영화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 이유!

영화를 보면 하선은 완벽한 전략가도, 정치적 천재도 아니다. 오히려 그는 실수하고, 감정적으로 행동하며, 때로는 두려움에 흔들린다. 그러나 바로 그 인간적인 모습이 백성들에게는 진짜 위로가 된다. 이로써 “정치는 냉정해야 하는가? 아니면 따뜻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만든다. 폐지한 대동법에 대한 이야기와 사월이의 부모님을 만나게 해준다는 이야기 이런 것을 보면 얼마나 하선이 인간적인 모습인지를 알 수 있는 장면이다.

본문보기 »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는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 ‘파반느’

원작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소설 기반의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2026년 2월 20일에 개봉이 되었으며, 등장하는 배우는 고아성, 변요한, 문상민이다. 원작 소설인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작가의 소설의 내용을 대략적으로 설명하면 외모지상주의와 인간 존재의 본질을 기묘하면서도 서정적으로 탐색하는 작품이다.

본문보기 »

끝에서 맞이하는 시작, 윤하의 [END THEORY] 리뷰

윤하의 [END THEORY]는 지난 21년 11월 16일에 발매된 윤하의 정규 6집입니다. 22년 3월 30일에는 기존의 앨범에 3곡이 추가되어 [END THEORY: FINAL EDITION] 라는 이름의 리패키지 앨범이 발매되기도 했는데요, 추가 수록곡 3곡 중 <사건의 지평선>은 역주행과 함께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이기도 합니다. [END THEORY], 직관적으로 해석하면 ‘끝(에 대한) 이론’ 정도로 읽히는데요, 보통 ‘끝’을 떠올리면 부정적인 감상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본문보기 »

밀양 –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하여

남편을 잃은 신애(전도연)는 아들과 함께 남편의 고향인 밀양을 찾아온다. 돈이 없지만 얕보이지 않으려 땅을 보러다니던 신애. 때문에 그녀는 부자로 오해 받아 그녀의 아들이 유괴, 살인 당한다. 절망한 신애는 교회에서 구원을 받았다 느끼게 된다. 종교에 따라 유괴범을 용서한다며 그녀는 유괴범과 면회를 신청한다.

본문보기 »
error: 콘텐츠가 보호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