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연약한 영웅이 되어 │ ‘너의 목소리가 들려’ 리뷰

 

종영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매년 여름이 되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이보영(장혜성 役), 이종석(박수하 役) 주연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 드라마는 여름의 풋내와 뜨거운 햇빛을 닮았다.

 

 


 

 

‘연약한’ 영웅

약 10년 전, 도로 위에서 사고를 가장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사건의 피해자는 한 부자(父子). 아버지는 살해당하고 어린 소년만이 목숨을 부지한다. 그리고 혜성은 이 사건의 목격자로 법정에서 증언한다. 그런데 10년 뒤, 고등학생이 된 소년이 혜성을 지켜주겠다며 그녀를 찾아온다. 

10년 전, 수하는 눈앞에서 아버지의 눈앞에서 살해를 목격했지만, 아무도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이런 수하에게 법정 문을 박차고 들어온 혜성은 영웅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서 수하는 그 이후로 영웅이 되어 혜성을 지켜주기로 결심한다. 

수하는 ‘사람의 눈을 보면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영웅적인 면모가 더욱 나타난다. 그는 이 능력을 활용하여 법정에서 진실을 밝히는 데 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나 상황 속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에 능하다. 물론 ‘애어른’처럼 보이는 그의 인격적인 성숙함에는 어린 시절의 사고와 부모의 부재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영웅이 되고자 하니, 얼마나 연약한 영웅일 것인가. 수하는 능력을 활용하여 악을 물리치고 선을 쟁취하는, 혹은 존재 자체만으로 선이나 정의로 대변되는 일반적인 영웅이 아니다. 수하는 완전한 선의 편에 서지 않는다. 수하는 혜성을 지키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혜성을 위협하는 살인범 민준국을 직접 살해하려고까지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인물의 연약함은 인물을 더욱 인간적으로 만들고, 시청자들이 인물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든다. 

혜성 또한 연약하다. 그녀는 온전히 정의를 위하여 수하의 아버지를 죽인 범인에 대해 증언하지 않았다. 그녀가 증언을 결심하는 데에는 자기에게 억울하게 누명을 씌운 친구와 그 아버지에게 자기가 옳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이 크게 작용한다. 그리고 민준국의 협박을 받자, 증언한 것을 줄곧 후회하며 살아간다. ‘정의’라는 대의보다는 개인적인 이유로 인해 행동하고, 자기의 신변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과거의 증언을 후회하는 이러한 모습은 한없이 정의로운 영웅보다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서로의 연약함을 보완하는 것 

이러한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누군가의 영웅이 되고자 할 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두 사람의 발자국은 처음부터 끝까지 평행하게 나 있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두 발자국이 서로 엉키고 다른 방향으로 엇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종국에 그들은 서로를 구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그들은 서로의 연약함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리고 그 연약함에 넘어가려 할 때, 서로를 붙들었다. 가령 혜성은 “진실이 재판에서 이기는 게 아니라, 재판에서 이기는 것이 진실”이라고 믿었는데, 수하는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활용하여 그녀가 진실을 좇을 수 있도록 도왔다. 혜성 역시 수하가 그녀를 지키기 위하여 민준국을 해하려할 때, “저 인간을 죽이면 넌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라 살인자가 된다.”라며 그를 막았다. 이러한 그녀의 행동에는 당시 수하에게 결여된 이성적인 판단력과 내면적 성숙이 깃들어있다. 이처럼 그들은 서로의 연약함을 보완하며 결국 서로를 구했다. 아주 본능적이고도 필사적으로 말이다.

 


 

햇빛이 뜨거워지고 푸른 잎이 무성해지는 여름마다 혜성과 수하가 생각난다. 전력을 다하여 서로에게 달려가던 두 사람. 종영한 지 약 13년이 흐른 추억의 드라마이지만, 여전히 이 작품 덕분에 여름이 더욱 싱그럽게 느껴진다. 다가오는 이번 여름에는 나 또한 누군가의 연약한 영웅이 되어줄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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