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일으켜준 작품, ‘스물다섯 스물하나’

세상에 좋아하는 다양한 작품이 있지만, 진정한 ‘인생작’이란 내가 가장 힘들 때 버틸 힘을 준 작품이 아닐까.

수많은 작품 중에서 나에게 그런 의미로 남은 드라마는 바로 ‘스물다섯 스물하나’다.

 

 

이 드라마는 입시 시절, 내가 가장 크게 흔들리고 있을 때 운명처럼 다가왔다.

반복되는 불합격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갉아먹었다. 나보다 늦게 시작한 친구들조차 저만치 앞서 달려가는데, 나만 제자리에 멈춰 있는 듯한 박탈감은 나를 끝없는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그 캄캄했던 시기, 한 줄기 빛처럼 다가온 대사가 있다.

 

 

“그래, 나는 아직 나를 못 믿어. 그런데 나를 알아봐 준 당신을 믿어.” (5회, 나희도)

스스로를 믿지 못해 매일같이 무너지던 나에게, 이 말은 더없이 필요한 위로였다.

내가 당장 나 자신을 믿지 못하더라도, 나의 가능성을 믿어주는 사람들을 믿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하지만 실패가 계속되자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때, 또 다른 대사가 나를 붙잡았다.

 

 

“모두가 펜싱을 그만두라고 했다. 그런데 그만두지 않았다. 왜냐하면 난 여전히 이게 너무 재밌다.” (6회, 나희도)

다른 길을 고민하면서도 내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이 일이 좋고,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짙은 미련이 남아 있었다. 이 대사를 듣는 순간 깨달았다. 남들이 뭐라 하든, 성과가 당장 나오지 않든, 나는 아직 이 길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다시 나섰지만, 현실은 여전히 냉혹했다. 나보다 뛰어난 수많은 경쟁자들 속에서 내 가능성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은 늘 두려움을 동반했다. 내가 겁먹었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들키는 순간, 내 작은 가능성마저 산산조각 날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 대사를 주문처럼 외웠다.

 

 

“네가 진 이유! 질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 겁먹지 마라! 겁먹더라도 들키지 마라!” (4회, 양찬미)

그래, 겁먹지 말자. 아니, 속으로는 겁을 먹더라도 절대 겉으로 들키지는 말자. 내가 최고라고 스스로를 세뇌하며,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려 애썼다.

때로는 나를 향한 주변의 다정한 응원조차 무거운 짐으로 다가오던 순간도 있었다. 실패하면 끝이라는 강박에 갇혀, 쏟아지는 기대 속에서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웠다.

 

 

“할 수 있다는 말이 오히려 힘에 부칠 때가 있습니다.” (5회, 백이진)

이 대사는 그런 내 마음을 정확히 대변해 주었다. 나아가 내게 이렇게 덧붙여 말해주는 듯했다. 실패해도 괜찮다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 따뜻한 시선 덕분에 ‘결과’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나의 ‘과정’을 바라보게 되었다. 당장 잘하지 못하더라도, 넘어지더라도 그 과정 속에서 툭툭 털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을 기르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마침내 다가온 결전의 날. 수많은 경쟁자들 틈에서 시험장에 앉아 있을 때, 그동안 겪었던 숱한 불합격의 기억들이 다시금 불안감으로 밀려왔다. 그때, 나를 가장 든든하게 무장시켜 준 대사가 있다.

 

 

“너는 평가전에 나온 선수 중에 가장 많이 져본 선수야. 진 경험으로 넌 지금까지 계단을 쌓아 올린 거야. 생각해 봐, 이젠 네 계단이 제일 높다?” (4회, 백이진)

그동안의 쓰라린 실패들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 나만의 단단한 계단을 쌓아 올린 시간이었음을 깨닫게 해준 말이었다. 시험장에서 이 대사를 곱씹으며, 내가 겪은 수많은 실패의 경험들이 결국 나를 가장 높은 곳으로 데려다줄 것이라 믿고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나에게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다. 확신이 없어 웅크리고 있던 나에게 괜찮다고 어깨를 토닥여준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잘하지 않아도, 완벽하지 않아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해도 된다고 응원해 준 작품. 그래서 이 드라마를, 내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을 버티게 해준 ‘인생작’으로 기억할 것이다.

혹시 지금 나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혹은 누군가의 따뜻한 위로가 필요하다면 한 번쯤 봐 보는 건 어떨까?

 


 

 

스물다섯 스물하나

2022년 2월 12일 ~ 4월 3일 (16부작) tvN

극본: 권도은 연출: 정지현, 김승호

출연: 김태리, 남주혁, 김지연, 최현욱, 이주명

 

 

기획의도:

1998년, 세상이 통째로 흔들리듯 불안하던 해, 스물둘과 열여덟이 만났다.

둘은 서로의 이름을 처음 불렀다.

스물셋과 열아홉이 되었고, 둘은 의지했다.

스물넷과 스물이 되었고, 둘은 상처를 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됐을 때, 둘은 사랑했다.

시대를 막론한 영원한 스테디셀러, 청춘.

비록 지금의 청춘이 입시와 스펙, 학자금 대출과 취준생 같은 이름으로 사회면에나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됐을지언정 나도 당신도, 모두가 청춘을 사랑한다.

청춘인 자들도, 청춘을 앞둔 자들도, 청춘을 지나온 자들도 하나 같이 청춘을 동경한다.

왜일까.

청춘이 매력적인 근본은, 남아도는 체력에 있다.

무언가를 좋아할 체력, 좋아하는 것에 뛰어들 체력, 뛰어들었다가 실패하고 좌절할 체력, 그 와중에 친구가 부르면 나가 놀 체력, 그래놓고 나는 쓰레기라며 자책할 체력.

유한한 체력을 중요한 일들에 신경 써서 분배할 필요가 없는 시절, 감정도 체력이란 걸 모르던 시절, 그리하여 모든 것을 사랑하고 모든 일에 아파할 수 있는 시절.

그 시절의 우정은 언제나 과했고, 사랑은 속수무책이었으며, 좌절은 뜨거웠다.

불안과 한숨으로 얼룩지더라도, 속절없이 반짝였다.

이 드라마는 ‘청춘물’할 때 그 ‘청춘’.

우리 기억 속 어딘가에 필터로 보정해 아련하게 남아있는 미화된 청춘, 우리가 보고 싶은 유쾌하고 아린 그 ‘청춘’을 그릴 것이다.

살벌하게 불태웠다 휘발되는 이야기 말고, 천천히 적시다 뭉클하게 새겨지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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