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의 시간들〉, 영화를 사랑하는 우리

 

<극장의 시간들>은 세 편의 단편영화로 이루어진 영화다.

각 단편은 서로 독립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극장’이라는 영화가 상영되는 공간을 공통적으로 이룬다. 극장 속에서 영화와 기억, 그리고 시간이 어떻게 얽히는지를 세 명의 감독이 각자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은 예술영화관 씨네큐브의 25주년을 기념하여 제작됐고, 이종필, 윤가은, 장건재 감독이 참여했다. 세 연출의 스타일은 다르지만, 모두 극장을 중심으로 한 사람들의 순간에 주목한다. 영화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고 어떤 영향들을 끼칠 수 있을까.

 


 

 

1. 이종필 감독의 <침팬지>

 

이종필 감독의 <침팬지>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영화였다. 어렸을 때 내가 분명 본 것 같았던 기억이 지금은 정말 실제였을까, 아니면 내가 원해서 지어낸 기억일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영화 속 주인공(감독이 자신의 경험을 투영했다고 한다)은 우연히 들어간 작은 책방에서 한 침팬지 이야기를 발견하고 그 침팬지를 보기 위해 동물원 지하실까지 찾아간다. 그 순간은 마치 어릴 적 기억처럼 분명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책방에 돌아왔을 때 그 이야기는 사라져 있다. 동물원에 전화까지 하며 침팬지를 찾으려 했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다. 과거에 대해 마음속 깊이 믿었던 것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순간이 어쩌면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 겪는 경험이 아닐까.

 

 

하지만 극장 안에서는 침팬지가 여전히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 신비로움과 기억의 모호함이 나를 뭉클하게 만들었다. 극장은 현실을 잠시 잊게 해준다. 내가 가장 나답게 만드는 공간이다. 나도 여전히 나의 침팬지가 살아있다고 믿는다.

 


 

 

2. 윤가은 감독의 <자연스럽게>

 

윤가은 감독의 <자연스럽게>는 “자연스럽게”라는 말이 무엇인지 되묻게 만드는 영화다. 영화를 찍는 현장에서 감독은 아이 배우들에게 “좀 더 자연스럽게!”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작 자연스럽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이들도, 스태프들도, 관객인 나도 쉽사리 정의할 수 없다.

 

영화 속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느껴졌던 장면은 감독과 아이들이 편안하게 웃음을 나누는 순간이었다. 말로 지시할 때보다, 성과를 요구할 때보다 서로가 서로의 감정을 받아줄 때 아이들은 진짜 모습을 드러냈다. 어쩌면 진짜 자연스럽다는 건 형식이나 기술이 아니라 스스로 편안하고 자유롭다고 느끼는 순간이 아닐까 한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웃고 떠드는 장면이 그 답을 가장 솔직하게 보여줬다.

 


 

 

3. 장건재 감독의 <영화의 시간>

 

장건재 감독의 <영화의 시간>은 극장을 향한 러브레터처럼 느껴졌다.

영화 속 주인공의 이름은 ‘영화’다. 그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찾아, 오래전 들렀던 독립영화관을 우연히 지나간다.

그곳에서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나고, 함께 영화를 본다. 친구가 주인공을 부를 때 “영화야! 영화야!”라고 부르는 장면은 마치 영화 자체가 한 사람처럼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영화는 영화를 보는 동안 자신도 영화가 되는 경험을 한다. 영화를 보며 잠에 들기도 하고 추억에 빠지기도 한다.

우리에게 ‘영화’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세 편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극장과 시간을 다룬다.

극장은 단순히 영화를 상영하는 장소가 아니다. 극장이라는 하나의 공간을 가지고 우리는 여러 기억을 꺼낼 수 있다. 가족과 함께 간 기억, 친구와 좋아하는 영화를 보러간 기억, 기분이 안좋은 날 혼자 영화관에 들린 기억. <극장의 시간들>은 그런 힘을 가진 공간과 순간에 대한 이야기다. 극장 안에서 우리는 과거와 현재를 한 번에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영화를 통해 다시 살아난다. 이 영화는 극장의 존재 의미와, 영화를 통해 우리 삶에 새겨진 시간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를 사랑하는 우리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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