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와 정보화로 초연결 사회가 된 오늘날, K-POP 산업은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며 한류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 영향인지 아이돌 장르에서는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숨겨진 명곡을 더 잘 아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반면 아이돌이 아닌 솔로 가수나 밴드는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지기도 한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름이지만, 해외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아티스트들이 여전히 많다.
오늘 소개할 델리스파이스가 바로 그런 경우다.
델리스파이스, 어떤 밴드인가

‘한국인이라면 아는 밴드’라고 했지만, 막상 델리스파이스라는 이름을 들으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2015년 이후 공식적인 활동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남긴 음악은 여전히 많은 사람의 플레이리스트에 살아있다.
델리스파이스는 1997년에 데뷔한 밴드로, 한국 인디 록 1세대를 대표하는 그룹이다.
팀명은 ‘한국 가요계의 맛있는 양념이 되자’는 뜻을 담고 있지만, 멤버들 스스로도 깊이 고민해서 지은 이름은 아니고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PC통신 게시판에서 시작된 밴드
이들의 출발은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음악을 좋아하던 20대 청년 김민규가 PC통신 음악 모임 게시판에 밴드 멤버 구인 글을 올린 것이 시작이었다.
이를 보고 연락해온 윤준호를 시작으로, 같은 PC통신 음악 모임에서 알고 지내던 오인록과 류한길이 합류했다.
이후 몇 차례의 멤버 교체를 거쳐 김민규(보컬·기타), 윤준호(베이스), 최재혁(드럼), 이승기(키보드)로 최종 라인업이 완성됐다.
멤버들은 데모 앨범을 제작해 라이브 클럽 무대에 섰고, 이를 눈여겨본 음반사 관계자의 계약 제의로 1집 Deli Spice가 탄생했다.
데뷔 초반에는 헤비메탈 중심의 강렬한 사운드가 대세이던 시대 분위기 탓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잔잔한 인디 록 특유의 감성은 입소문을 타고 서서히 퍼져나갔고, 결국 라디오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델리스파이스의 대표곡 — 챠우챠우
델리스파이스의 곡 중 단 한 곡을 꼽으라 한다면, 주저 없이 ‘챠우챠우 –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택하겠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와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하는데도”
사실상 이 두 문장이 가사의 전부인 곡이다.
그럼에도 이 노래를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한국인은 드물 것이다.
일렉기타와 드럼으로 시작되는 전주는 어딘가 애틋하고 아련한 감성을 건드린다.
마치 노을 지는 오후, 풀밭에 앉아 바람을 맞는 기분이다.
델리스파이스라는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이 곡은 1990년대 100대 명반에서 3위를 기록했고, 2002년 영화 〈후아유〉의 OST로 삽입되며 다시 한번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이 곡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가 있다.
제목이 왜 ‘챠우챠우’인지, 의문을 가져본 적 있는가.
챠우챠우 하면 자연스럽게 강아지 품종이 떠오르지만, 설마 그 챠우챠우이겠냐 싶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맞다.
원래 제목은 가사 그대로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였으나, 너무 길다는 주변의 반응에 챠우챠우를 제목으로, 해당 문장을 부제로 삼았다.
뜬금없어 보이는 이 작명에는 이유가 있다.
멤버들은 인터뷰에서 “델리스파이스의 음악을 비난하는 평론가에 대한 분노의 마음을 담았다. 당시 우리 음악을 몰라줘 마음이 답답했다”고 밝힌 바 있다.
비난에 반항하고 맞서는 마음으로 지은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곡에 대한 인상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립고 애틋한 사랑 노래처럼 들리던 것이, 자신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다가온다.
엉뚱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좋은 노래임에는 변함이 없다.
요즘은 세계 반대편 카페나 음식점에서도 한국 인디 음악이 흘러나오는 시대다.
“음악은 영혼의 언어다”, “음악은 세계 만국의 공용어다”라는 말처럼, 한국인의 감성을 건드리는 곡은 외국인에게도 그대로 전해져 똑같은 울림을 준다.
델리스파이스의 음악 또한 그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