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을 놓아 버리고 어둠으로 사라져 버린다 해도, 기꺼이 먼지 쌓인 어둠을 더듬으며 다가와 깍지를 끼는 손이 있다. 우리는 이걸 사랑이라고 부른다.
드라마 <미지의 서울>은 같은 얼굴을 지녔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쌍둥이 자매가 인생을 바꿔 살게 되며 자기만의 삶과 사랑을 찾아가는 성장 드라마이다.
비슷한 상처를 가진 ‘미지’와 ‘호수’
‘미지’에게는 잊지 못할 첫사랑 ‘호수’가 있다. 공부는 못하지만 사람 좋은 ‘미지’와 문자 그대로 엄친아 변호사 ‘호수’.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왔고, 살 것 같은 두 사람은 비슷한 삶의 굴곡을 지녔다. 두 사람의 시련은 모두 육체적인 고통에서 온다. 육상 선수인 ‘미지’에게 발목 부상은 처음으로 ‘미래 동생’이 아닌 ‘유미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기분을 단숨에 박살 내 버렸다. 또한 가족이라곤 피 안 섞인 새어머니뿐인 ‘호수’에게 사고로 인한 몸의 장애는 평생 짐이 될지 모른다는, 그래서 버려질지 모른다는 불안함을 안겨주었다.
상처 입은 두 사람은 문을 걸어 잠그고 방 안으로 숨는다. 두 사람의 상처는 다른 누가 아닌,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새긴 상처다. 이 꼴로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짐만 될 것이라는 마음, 여기서 더 나아질 수 없다는 가시 돋친 마음. 자신을 미워하는 마음이 방문을 더 굳게 걸어 잠그게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몇 번이고 문을 두드리는 것은 이들을 사랑하는 이들의 손이다. 물론, 그들은 서로의 방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고등학생 시절, 한껏 날이 서 있던 ‘호수’에게 먼저 손을 내민 것은 ‘미지’다. ‘미지’는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운 ‘호수’의 곁을 계속하여 맴돈다. ‘호수’는 이런 ‘미지’가 성가시다가도, 동굴 안에 웅크리고 있던 자기를 자꾸만 햇볕 아래 꺼내 두는 ‘미지’가 점점 좋아진다.
선을 넘지 못하는 ‘호수’
그렇게 ‘미지’는 ‘호수’를 세상으로 꺼냈다. 하지만 ‘미지’가 방 안으로 숨었을 때, ‘호수’는 그녀에게 제대로 손을 내밀지 못했다. 이는 ‘선을 넘지 않으려 하는’ 호수의 성격 탓인데, 이런 호수의 성격은 작품 내에서 입체적으로 표현된다.
‘미지’는 ‘호수’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떠 있는 줄도 몰랐지만 내내 따라오는 달처럼 언제부터인지도 알 수 없게 그저 묵묵히 기다리는 바보.”(6화 中) ‘호수’는 늘 알면서도 모른 척, 타인이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는 먼저 캐묻지 않는다. 그러고는 한 발짝 뒤에 서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도와준다. 키다리 아저씨처럼 말이다. 참으로 이상적이고 로맨틱한 성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작품 내에서 이러한 성격의 명과 암을 다 그려낸다는 것이다.
‘호수’가 철저하게 선을 지키는 사람이라면, ‘호수’의 로펌 선배인 ‘충구’는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다. 혹여 상대방이 선을 그으려 하면, 어느 틈에 그 선을 넘어와 있다. ‘충구’는 ‘호수’의 성격에 대하여 “배려 아니고 방관”이라며 충고한다. 아끼는 이를 한 발 뒤에서 지켜보는 것과 선을 넘어서라도 확실한 도움을 주는 것. 둘 중에 어느 것이 아끼는 이를 위한 방법일까. 정답은 없다. 때론 전자가, 때론 후자가 이로울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흥미롭다. 작품은 주인공과 주변 인물을 선과 악으로 이분법화 하지 않는다. 그리고 주인공 ‘호수’의 성격을 마냥 이상화하여 그려내지 않는다. 인물의 성격은 상황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다. 이는 작품 밖 우리와 닮았다. ‘호수’가 더 매력적인 인물로 느껴지는 이유다.
‘호수’가 이러한 성격을 갖게 된 데에는 어린 시절 환경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호수’는 새어머니 ‘분홍’에게 짐이 되기 싫어 계속하여 선을 긋는다. 지겹도록 부딪히는 것이 ‘가족’이라는 관계의 피할 수 없는 속성임에도 불구하고, ‘호수’는 ‘분홍’에게 늘 안전거리를 유지한다. 하지만 ‘호수’는 다 자라서야 깨닫는다. ‘분홍’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 선을 넘어와 자신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고 있었음을.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동아줄이었음을.
드라마 <미지의 서울>은 사랑하는 이를 향하여 기꺼이 손을 내민 자와 용기 내어 그 손을 잡은 자들의 이야기이다.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는다는 건 안전한 선 바깥에 서서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그 선을 넘어와 함께 무너져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손을 내민 자의 용기와 자비로움을 칭송한다. 하지만 그것만큼이나 칭송받아 마땅한 것은 그 손을 잡는 용기이다. 손을 잡는 데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타인이 내민 손이든, 자기 자신이 내민 손이든 말이다. 때로 방에서 영영 나가지 못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 부디 문 너머에 있는 사랑하는 이들의 손을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