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딸을 포기하지 않는다 — 〈좀비딸〉이 K-좀비에 던진 새 질문

〈부산행〉이 열차 안 계급을, 〈킹덤〉이 왕조의 부패를 좀비 바이러스 아래 묻어뒀다면, 2025년 여름 한국 극장가를 장악한 〈좀비딸〉이 꺼내든 것은 훨씬 작고 밀도 있는 이야기다. 딸이 좀비가 됐다. 아빠는 딸을 버릴 수 없다. 영화는 이 두 문장으로 출발하고, 113분 내내 거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필감성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이자, 이윤창 작가의 동명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한 〈좀비딸〉은 전 세계를 강타한 좀비 바이러스 속에서 홀로 딸을 키우는 아빠 ‘정환'(조정석)의 이야기다. 맹수 전문 사육사인 그는 사춘기 딸 수아가 감염되자, 어머니 밤순(이정은)이 사는 바닷가 마을 은봉리로 수아를 데리고 피신한다. 감염자를 색출하려는 사회의 시선을 피하면서, 정환은 호랑이 조련의 경험을 살려 딸의 본능을 조절하는 훈련을 시작한다. 배가 부르면 물지 않고, 좋아하는 춤에 반응하는 수아의 특성을 하나씩 파악해가며.

 

 

이 설정은 K-좀비 장르가 외국 관객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를 새로운 방식으로 설명한다. 좀비물의 공식적 쾌감, 즉 추격과 학살, 무리의 파도는 이 영화에서 의도적으로 억제된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우는 건 부성애와 일상의 디테일이다. 호랑이 조련사가 딸에게 조련 기술을 쓴다는 설정은 황당하면서도 설득력이 있고, 그 웃음 뒤에 아빠의 절박함이 배어 있다. 〈워킹 데드〉를 보며 좀비에 익숙해진 외국 관객이라면 오히려 이 낯선 감정적 접근에 무장해제될 것이다.

조정석의 연기는 이 영화의 심장이다. 필감성 감독이 그를 두고 대본을 썼다고 밝혔을 만큼, 영화는 조정석의 능청과 진심이 공존하는 얼굴 위에 세워져 있다. 〈엑시트〉(2019)와 〈파일럿〉(2024)에 이은 여름 코미디 3부작의 완성이라 불릴 만하다. 이정은은 효자손 하나로 할머니 밤순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신예 최유리는 극도로 제한된 표현 범위 안에서 좀비의 본능과 사춘기 소녀의 감정을 동시에 담아낸다. 〈부산행〉과 〈반도〉에서 좀비 안무를 담당한 전영 안무감독이 이번에도 합류해, 수아의 움직임에는 공포와 우스꽝스러움이 절묘하게 섞여 있다. 무섭지 않은 좀비가 무섭지 않으면서도 좀비로 보이는 이유다.

여기에 반려묘 애용이를 연기한 고양이 ‘금동이’는 실제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배우로, 당초 CG로 계획됐던 장면 상당수를 실제 촬영으로 바꿀 만큼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감독 본인이 집사여서 고양이 캐스팅을 강행했다는 뒷이야기까지 더하면, 금동이의 존재는 이 영화에서 단순한 귀여움 이상이다. 수아와 애용이가 나누는 교감 장면은 좀비 영화에서 가장 이상한, 그리고 가장 따뜻한 장면 중 하나다. 외국 관객이라면 이 고양이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를 찾을 이유가 생길 것이다.

 

 

영화의 공간도 눈여겨볼 만하다. 원작 웹툰의 산촌 배경을 남해 어촌으로 옮긴 것은 단순한 장소 변경 이상의 효과를 낸다. 햇살과 바다가 있는 은봉리는 좀비 아포칼립스의 배경치고는 지나치게 아름답고, 그 간극이 오히려 영화의 정서를 완성한다. 무너진 세계 한가운데서 가족의 일상이 유지되는 공간. K-콘텐츠가 꾸준히 탐구해온 ‘일상과 재난의 공존’이라는 주제가 여기서도 기능한다. 〈부산행〉이 열차라는 밀폐 공간으로 긴장감을 만들었다면, 〈좀비딸〉은 열린 바닷가 마을에서 느슨한 공동체의 온기를 꺼낸다. 채경선 미술감독이 설계한 밤순의 집 세트는 동화 같은 질감으로 현실의 위기를 부드럽게 감싼다. 좀비 영화를 보는데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것, 이 역설이 〈좀비딸〉의 장르적 정체성이다.

 

 

필감성 감독은 스릴러 데뷔작 〈인질〉(2021)과 티빙 드라마 〈운수 오진 날〉로 긴장감 연출에 정평이 난 감독이다. 그 이력이 이 가족 코미디에서 엉뚱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수아의 정체가 들통날 듯 말 듯한 순간, 마을 사람들과의 충돌, 좀비 무리 사이를 헤쳐나가는 부녀의 탈출. 영화는 긴장을 조성할 줄 알기 때문에, 그 긴장을 웃음으로 해소하는 타이밍도 정확하다. 코미디를 하려고 하는 순간 코미디가 무너진다는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의 웃음은 억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좀비딸〉은 K-좀비의 새로운 좌표를 제시한다. 공포 대신 감동, 스펙터클 대신 관계. 개봉 첫날 43만 명을 동원하며 최근 5년간 비시리즈 한국영화 최고 오프닝을 기록하고 563만 관객을 모은 숫자는, 이 영화가 단순히 장르 팬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웹툰 원작의 글로벌 누적 조회 수 5억 뷰가 증명하듯, 이 이야기의 정서는 이미 국경을 넘어 있다. 좀비가 무서운 이유는 언제나 사람 때문이었다. 이 영화는 그 반대편, 좀비가 됐어도 사람이 사람을 놓지 못하는 이유를 묻는다. 그 질문은 언어와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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