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드라마 〈태풍상사〉 속 자수성가 캐릭터에 관해서 | 드라마 리뷰

로맨스 장르 속 남성 주인공의 유형

본인은 2017년에 발표한 소논문에서 로맨스 장르에는 남성 주인공의 유형이 네 가지가 존재한다고 밝혔습니다. 바로 ‘자수성가 캐릭터’, ‘상속자 캐릭터’, ‘천재 캐릭터’, ‘초능력자 캐릭터’입니다. 남성 주인공이 재력을 획득하는 방법에 따라 구분해 놓은 것입니다.

왜 하필 그런 기준을 세웠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반면 로맨스 장르에 조예가 깊으신 분들은 쉽게 파악하실 수도 있습니다. 로맨스 장르에서 남성 주인공의 재력은 중요한 매력이자 작품의 서사를 끌어나가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비단 현실 세계 속 결혼 상대자의 조건으로서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추후 이 유형은 더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도 있고 명칭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많은 연구자들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캐릭터 분류 자수성가 캐릭터 상속자 캐릭터 천재 캐릭터 초능력자 캐릭터
획득 과정
후천적
선천적
후천적
후천적
획득 여부
진행
완료
완료
완료
획득 가능성
현실적
현실적
현실적
비현실적
획득 난이도
어려움
쉬움
어려움
쉬움
표방 드라마
성장 드라마
신데렐라 드라마
전문직 드라마
판타지 로맨스

로맨스 장르가 사랑했던 상속자 캐릭터

네 가지 유형 중 로맨스 장르에서 가장 많이 등장했던 남성 주인공의 유형은 바로 ‘상속자 캐릭터’입니다. 아마 로맨스 장르에 큰 변화가 없는 한 이건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상속자 캐릭터는 현대물에서는 재벌가의 후계자로, 사극에서는 왕자나 고관대작의 자제로 주로 그려집니다. 이들은 이복형제들이나 반동 집단과의 암투에서 승리를 거두면 바로 물려받은 재력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최고경영자의 자리나 왕좌를 쟁취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 이르는 동안 각성이나 깨달음, 상처의 치유와 같은 내면의 변화만 이루어지면 되기에 재력 획득의 방법이 쉽습니다. 그러나 극중에서는 이를 매우 드라마틱하게 그려내며 남성 주인공이 재력을 획득까지의 과정이 전혀 순탄치 않다는 착각에 빠지도록 만듭니다.

로맨스 장르에서 상속자 캐릭터가 사랑받는 이유는 단지 위와 같은 특징 때문만은 아닙니다. 바로 여성 주인공이 남성 주인공이 선사하는 경제적인 지원이나 혜택을 누리거나 그와 연인 또는 부부 관계를 맺게 되면서 단숨에 신분이나 지위가 상승하기 때문입니다. 남성 주인공이 백화점 명품관에서 여성 주인공에게 줄 명품 옷과 구두를 싹쓸이 쇼핑한다든지, 호화로운 레스토랑에서 이벤트를 벌인다든지, 고급 승용차로 배웅을 해준다든지, 값비싼 반지나 목걸이를 선물하는 등의 장면들은 상속자 캐릭터가 등장하는 로맨스 드라마에서 클리셰처럼 따라붙습니다. 이러한 설정들이 담긴 로맨스 드라마를 따로 분류해 ‘신데렐라 드라마’라고 일컫기도 합니다.

로맨스 장르를 선호하는 젊은 여성 대중들한테 ‘상속자 캐릭터’는 ‘백마 탄 왕자’의 다른 표현입니다. 남성의 경제력이 연인이나 반려자의 중요한 결정 요소가 된 오늘날에는 더더욱 여성 대중들의 욕망을 여성 주인공을 통해서 충족하고 대리만족을 얻으려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tvN)>, <사내맞선(tvN)>, <킹더랜드(JTBC)> 등이 상속자 캐릭터가 등장하는 대표적인 작품들입니다.

〈태풍상사〉 속 자수성가 캐릭터, 강태풍

그런데 tvN에서 2025년 10월에 방영을 시작한 <태풍상사> 속 남성 주인공인 강태풍은 다릅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아 단숨에 사장의 자리에 올랐으니 얼핏 보면 전형적인 상속자 캐릭터로 볼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로부터 건실한 회사를 상속받은 게 아니었습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숱하게 쓰러져 갔던 수많은 회사처럼 빚더미에 올라 직원들이 다 떠나버린 속 빈 강정과도 같은 회사를 물려받았던 것입니다. 즉, 일반적인 상속자 캐릭터는 아버지의 유산이 큰 축복이지만 강태풍에게는 짐이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며 다시 가족과 회사를 일으켜 세우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한 그의 험난한 여정을 <태풍상사>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강태풍은 ‘자수성가 캐릭터’의 유형에 더 가깝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자수성가 캐릭터는 대개 작품 내에서 부모의 신분이나 능력이 낮고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한 탓에 극중 내내 많은 시련과 방황을 겪습니다. 그래도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성경 구절과 정확히 들어맞는 스토리에 따라 결말에서 마침내 자신이 바라던 형태의 성공을 얻게 됩니다. 물론 그 성공에는 물질적, 경제적인 풍요가 뒤따릅니다. 그래서 꼭 로맨스 장르에만 치중되지도 않으며 감동적인 인간 승리가 바탕이 되는 성장 드라마의 외형을 많이 지니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남성 주인공이 보여주는 포기하지 않는 자세와 성실성, 참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낙관주의, 사람과 조직에 대한 신뢰 등을 대중들에게 주제 의식으로 전달합니다. <공포의 외인구단>의 오혜성, <록키> 시리즈의 록키 발보아, <이태원 클라쓰>의 박새로이 등이 이 자수성가 캐릭터 유형에 속하는 인물들입니다.

자수성가 캐릭터의 미래를 응원하는 여성 주인공

자수성가 캐릭터는 이렇듯 완성형이 아닌 성장형 캐릭터이기 때문에 극중 대부분에서 여성 주인공에게 별다른 경제적 혜택이나 이를 통한 매력을 선사해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녀에게 민폐를 끼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합니다.

<태풍상사>에서 강태풍은 집이 압류를 당하는 바람에 졸지에 여성 주인공인 오미선의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게 됩니다. 명색이 사장이면서 결제 대금을 마련할 능력이 되지 못하자 이를 딱하게 여긴 그녀가 자신의 대학 등록금과 가족들의 생활비로 쓰려고 모아둔 적금을 그에게 내밀게 됩니다. 그 밖에 강태풍이 아직 상사 업무에 익숙지 않은 데다 감정을 앞세워 무리한 일을 벌이는 바람에 오미선이 사고 뒷수습하는 장면도 자주 등장합니다.

도저히 상속자 캐릭터에게서는 볼 수 없는 구질구질하고 답답하며 때론 찌질한 모습들을 강태풍은 오미선에게 연속적으로 보여줍니다. 꼭 그녀에게 감정이입을 하지 않더라도 실제 우리네 아빠, 형제, 자식이라면 때론 외면하고 싶은 그런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여성 주인공 오미선은 그런 남성 주인공 강태풍의 곁을 언제나 든든히 지키며 묵묵히 그를 응원합니다. 비록 지금은 강태풍이 아직 미약한 존재이지만, 언젠가는 창대해질 것이라는 신념, 누군가를 응원하고 사랑하는 데 현재의 조건은 중요하지 않으며 그 사람의 성격과 열정, 자신감과 책임감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녀는 행동으로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보고 싶지만 보기 어려워질 자수성가 캐릭터

IMF 외환위기는 대한민국을 심각한 경제적 위기에 빠트렸고 그로 인해 수많은 가정과 회사에 저마다의 비극을 연출했습니다. 그래도 강태풍처럼 세월의 풍파를 견딘 이들이 오늘날의 경제 성장을 일궈내는 데 일조했습니다.

어쩌면 <태풍상사>의 시대적 배경이었던 1990년대 말은 성공의 사다리가 작동했던 마지막 시기였을지도 모릅니다. 강태풍처럼 가진 건 없어도 포기하지 않는 열정과 집념, 그리고 여성 주인공 오미선과 태풍상사 식구들처럼 연인과 동료의 격려와 도움만 있다면 얼마든지 실패를 딛고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

그런데 오늘날 MZ세대들에게 강태풍이라는 자수성가 캐릭터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기성세대의 프로파간다를 전달하는 비현실적이고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인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1997년 아니라 2025년 현재라면 과연 그는 태풍상사를 전도유망한 회사로 성장하고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을 지키는 든든하고 매력적인 남성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미래의 가능성보다는 현재의 조건, 그것도 경제적 조건이 연애와 결혼을 결정짓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오로지 그의 내면과 성장 가능성만 보고 무일푼인 남성 주인공을 응원하고 사랑하는 여성 주인공 또한 과연 대중들이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일까요?

수저계급론이 MZ세대에게는 일종의 진리처럼 되어 버린 오늘날에 흙수저가 금수저가 되는 스토리, ‘크리스토퍼 보글러의 영웅 서사 12단계’가 딱 들어맞는 전형적인 성장 서사이자 마치 JRPG의 ‘왕도물’ 속 주인공인 자수성가 캐릭터는 그래서 대중들과 콘텐츠 제작자들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태풍상사>와 같은 작품이 나온 것에 대해 반가울 따름입니다. 본인이 그 시대를 살았기에 본인은 아직 믿고 있는 신념, 그리고 아직 그리워하는 그 시절의 추억과 낭만을 꼭 보여줘서만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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