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미 본상 후보에 오른 케이팝, 로제 APT.·골든·캣츠아이

그래미가 드디어 문을 열었다. 그동안 ‘장르 음악’ 혹은 ‘특수 케이스’로 취급되며 주변부에 머물렀던 케이팝이, 제68회 그래미 어워즈 본상(General Fields)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의 노래(Song of the Year)’, ‘올해의 레코드(Record of the Year)’, ‘신인상(Best New Artist)’까지—말 그대로 그래미의 중심부에 진입한 것이다. “케이팝이 그래미 본상 후보에 오른다”는 말을 이렇게 자연스럽게 쓰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다. 그만큼 세계 음악 시장에서 케이팝의 영향력이 얼마나 커졌는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특히 주목받은 것은 블랙핑크 로제(Rosé)의 약진이다. 지난해 10월 발매된 ‘아파트(APT.)’가 ‘올해의 노래’, ‘올해의 레코드’, 그리고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까지 총 3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케이팝 아티스트가 그래미 본상 두 부문에 동시에 지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빌보드는 “브루노 마스와의 협업으로 완성된 세련된 사운드가 로제를 케이팝의 새로운 상징으로 끌어올렸다”고 평가했고, 할리우드 리포터는 “그래미가 케이팝을 더 이상 ‘특수 장르’로 보지 않고, 글로벌 팝의 한 흐름으로 인정했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예전에는 케이팝 팬이라고 하면 해외에서 ‘오타쿠 같다’는 편견 섞인 시선도 있었다고 하는데, 이제는 이런 기사가 너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케이팝이 더 이상 소수 마니아들의 취향이 아니라, 확실히 메인스트림으로 올라섰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로제와 함께 올해 그래미 논의를 이끈 또 하나의 중심축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K-Pop Demon Hunters(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OST ‘Golden’이다. 지난 6월 공개된 이 곡은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 앨범 부문 5주 연속 2위, 비연속 통산 8주 1위를 기록하는 등 여전히 막강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Golden’은 ‘올해의 노래’를 포함해 총 5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전 세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가디언은 “케이팝 곡이 본상 경쟁에 오른 것은 그래미 역사에서도 드문 일이며, 애니메이션 OST가 본상 후보가 되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설명했고, 인디펜던트 역시 “빌리 아일리시, 켄드릭 라마, 레이디 가가 같은 이름들과 나란히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케이팝의 위상을 증명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평가를 접할 때마다 케이팝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새삼 크게 실감하게 된다. 예전에는 ‘해외에서 케이팝 좋아한다고 하면 조금 민망한가?’ 싶은 시선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래미 본상 후보 명단 한가운데 케이팝이 자리하고 있다. 정말 놀랍고,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설령 수상에 이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후보 지명만으로 이미 엄청난 성취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발표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소식은 하이브와 미국 게펜 레코드의 합작으로 탄생한 다국적 걸그룹 캣츠아이(KATSEYE) 이름이다. 그들은 케이팝 그룹으로서 최초로 그래미 신인상(Best New Artist) 후보에 올랐다. ABC는 “그래미 주요 부문에서 걸그룹이 지명되는 것 자체가 드문데, 글로벌 걸그룹의 후보 진입은 더욱 이례적”이라며 케이팝 제작 시스템의 확장성을 높이 평가했다.

해외 주요 언론의 논조는 한 가지로 수렴한다. “케이팝이 이제 주변이 아니라 중심 무대에 섰다.” AP통신은 “로제가 케이팝 아티스트로서 처음 본상 후보에 오르며, 그래미가 케이팝을 진지하게 평가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고, CNN은 “방탄소년단이 열어젖힌 문을 로제가 완전히 통과했다”고 표현했다. 로이터 역시 “‘APT.’와 ‘Golden’의 본상 진입이 그래미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며 케이팝이 이제 “주류 팝 음악의 일부가 되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음악 매체 피치포크(Pitchfork)의 분석이 인상적이었다. 이들은 이번 후보 지명이 단순한 글로벌 인기의 확산이 아니라, 케이팝이 서구 음악계의 심사 기준 안에서도 창작성과 완성도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짚었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역시 “이제 케이팝은 ‘현상’이 아니라 ‘예술’로 평가받는다”고 평가했다. 드디어 케이팝의 음악성과 예술적 가치가 ‘현상 너머의 무언가’로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순간을 목격하는 듯한 느낌이다.


K-pop이 그래미와 첫 인연을 맺은 것은 2019년이다. 그해 방탄소년단(BTS)이 한국 가수 최초로 제61회 그래미 어워즈에 시상자로 참석했고, 이듬해에는 K-pop 아티스트로서는 처음으로 그래미 무대에 올라 퍼포먼스를 펼쳤다. 이후 BTS는 제63회부터 제65회까지 3년 연속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아쉽게도 수상에는 닿지 못했다.

그런데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그래미의 최고상 부문에 K-pop이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 자체가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단순한 ‘첫 진출’의 차원을 넘어, K-pop이 본격적으로 그래미의 핵심 경쟁 무대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제68회 그래미 어워즈는 내년 2월 1일, 로스앤젤레스 크립토닷컴 아레나에서 열린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번 후보 발표 자체가 이미 하나의 이정표라고 생각한다. 케이팝은 더 이상 초대받은 손님이 아니라, 그래미의 중심부에 서 있는 주체로 인정받고 있다. 오랫동안 케이팝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이번에 후보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큰 의미가 있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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