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네 거, 나는 내 거.” │ ‘사이코지만 괜찮아’

 

※ 해당 글에는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에게 감정이란 어떤 의미일까. 감정은 때로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삶을 버티기 위해 가장 먼저 억눌러야 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감정을 거침없이 표출하는 동화작가 ‘문영’과 감정을 억압한 채 살아가는 보호사 ‘강태’, 그리고 감정을 읽는 방식이 남들과는 조금 다른 그의 형 ‘상태’의 이야기이다. ‘강태’는 왜 자기 감정과 욕구를 억누른 채 살아왔으며, 어떻게 삶의 방점을 자신에게 찍을 수 있게 되었을까.

 

세 인물이 지닌 정서적인 상처의 중심에는 ‘문영’의 어머니 ‘도희재’가 있다. 그녀는 ‘문영’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며 엄격히 통제했다. 그리고 ‘문영’을 향한 그녀의 지나친 소유욕과 통제욕은 드라마의 핵심 갈등이자 비극적 요소인 그녀의 살인 행위로 드러난다. 그녀의 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게 된 강태 형제의 어머니가 어린 ‘문영’의 상태를 걱정하며 치료를 권유하자, 이를 자신의 소유물에 대한 모욕과 간섭이라고 생각한 ‘도희재’가 그녀를 살해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지고 있었던 ‘상태’는 나비에 대한 트라우마까지 갖게 되었고, ‘강태’는 장애와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형과 함께 살아가며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삶의 무게를 짊어지게 되었다. 이런 ‘강태’에게 감정은 사치였다.

하지만 ‘강태’가 억누르고 있는 것은 감정뿐만이 아니었다. “당최 욕구란 게 없잖아. 먹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그렇다고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이 매사 시큰둥.”(7화 中) 이라는 ‘문영’의 대사처럼, 그는 자신의 단순한 욕구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가 이러한 삶의 태도를 지니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우선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 혹은 형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를 표현하는 법을 충분히 익히지 못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관심과 사랑은 언제나 장애가 있는 형에게 먼저 향했고, ‘강태’는 늘 뒷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형에게 질투하거나 투정을 부리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사실 어머니로부터 ‘형을 지켜주고 돌봐주기 위해 너를 낳았다’는 말을 듣고도 안긴 어머니의 품이 좋아 차마 떨어지지 못할 정도로 사랑이 고팠던 아이였다. 그리고 어머니의 이 말은 ‘강태’가 자신의 존재 이유를 형을 돌보는 일이라고 여기게끔 만들었다. 이후 그의 삶의 중심은 자기 자신이 아닌 형이 되었고, 자신의 감정과 욕구는 중요치 않게 되었다.

그가 자기의 감정과 욕구를 억압하는 모습은 스스로에게 내린 형벌로 이해해 볼 수도 있다. ‘강태’는 어릴 적 ‘상태’가 물에 빠졌을 때 그를 구하지 않고 도망쳤던 것에 큰 죄책감을 안고 있다. ‘강태’는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형을 버리고 도망쳤던, 형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지운 채 ‘상태’에게 헌신한다. 이는 형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에서 비롯된 행위인 동시에, 자신이 악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앞선 두 가지 이유를 함께 고려해 보면, ‘강태’는 형을 돌보는 행위를 통하여 자신의 존재를 규정해 온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그에 반하는 행위를 한 순간, 단순한 죄책감을 넘어 존재 자체가 흔들리게 된 것이다.

이런 ‘강태’는 ‘문영’으로 인해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인정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된다. 감정과 욕구를 꾹꾹 눌러둔 채 살아온 ‘강태’와 달리, ‘문영’은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참지 않고 분출해 내는 인물이다. 그녀는 고요해 보이는 ‘강태’의 심연 안에 잠들어 있는 감정과 욕구를 엿본다. 이런 강태의 모습이 말 그대로 흥미로웠던 그녀가 그의 심연에 툭툭 돌을 던지자, 소름 끼치도록 고요했던 그의 심연에 파동이 인다. 그는 ‘문영’이 만들어내는 파동이 불편하면서도, 낯선 해방감을 느낀다. 결국 그는 ‘문영’을 통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인정하는 법을 깨닫고, 스스로에게 내린 형벌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결말부에서 ‘강태’가 자신이 없어도 괜찮겠냐고 묻자, ‘상태’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문강태는 문강태 거. 너는 네 거. 나는 내 거.”  누군가에게, 혹은 자기 자신에게 저당 잡혀 살아가는 삶만큼 스스로를 메마르게 하는 삶은 없을 것이다.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삶 속에서 어쩌면 ‘온전한 나의 삶’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삶의 방점을 자신에게 찍을 용기를 지닐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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