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게임 〈드래곤 퀘스트〉 속 성장 서사에 대해서

〈드래곤 퀘스트〉란?

<드래곤 퀘스트(Dragon Quest)>는 <파이널 판타지>와 더불어서 JPRG(일본식 롤플레잉 게임)을 대표하는 비디오게임입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40여 전인 1986년에 1편이 발매한 이후 현재까지 정식 넘버링 타이틀은 11편, 각종 외전을 포함하면 무려 수십 편에 달하는 대형 프랜차이즈 게임 시리즈입니다.

또한, 시리즈 누적 판매량은 무려 8천만 장을 돌파했으며 초창기에는 발매 당시에 품절을 우려한 소비자들 사이에서 학교와 직장을 땡땡이까지 쳐가며 오픈런을 할 정도로 국민적인 관심을 끌었던 게임이기도 합니다. 작년과 올해에는 소위 ‘로토 시리즈’라고 일컬어지는 1편부터 3편까지가 새롭게 리메이크되어 80년대에 이 게임을 즐겼던 중장년층 게이머와 새롭게 입문하려는 젊은 게이머 모두로부터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드래곤 퀘스트〉의 여러 구분

<드래곤 퀘스트>를 플랫폼 측면으로 구분했을 때는 비디오게임, 장르적 측면으로 구분했을 때는 롤플레잉 게임에 속합니다.

비디오게임은 소위 ‘콘솔(console)’이라고 불리는 게임기를 통해서 즐기는 게임을 말합니다. 현재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는 꼭 콘솔이 아니더라도 PC나 스마트폰을 통해 즐길 순 있지만, 과거에는 패미콤, 슈퍼 패미콤, 닌텐도 DS, 플레이스테이션 등과 같은 특정 콘솔을 이용해야만 즐길 수 있었습니다.

롤플레잉 게임은 가상 세계에서 게임 유저가 조작하는 캐릭터가 모험의 주인공이 되어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게임을 정의합니다. 여기에 캐릭터와 무기의 성장(레벨업)이나 아이템의 수집(파밍) 요소 등이 가미됩니다. 구성과 스토리 진행 방식에 따라 크게 ‘서양식(WRPG)’와 ‘일본식(JRPG)’로 구분합니다. 전자는 주로 자유도가 높으며 오픈월드에서 진행된다는 특징이, 후자는 자유도가 낮으며 대체로 직선적인 미로에서 진행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물론 요즘 롤플레잉 게임들은 이처럼 확연하게 서양식과 일본식으로 구분하기가 어렵긴 합니다.

왕도물과 성장 서사

<드래곤 퀘스트>를 스토리텔링 측면으로 구분했을 때는 ‘왕도물’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왕도물이란 맹자의 왕도정치에서 비롯된 용어인 왕도(王道)에서 기원하는데 현재는 과거 JRPG나 일본 만화가 유행하던 시기에 여러 작품에서 공통되게 사용하던 요소들을 적용한 작품을 일컫습니다.

왕도물에서는 용사나 운명적인 태생을 가진 주인공이 모험을 떠나면서 여러 동료를 만나고 그들의 도움, 가르침, 격려 등으로 인해 점차 각성하거나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러는 가운데 결말에 이르러서는 최종 보스나 빌런을 만나 승리하면서 세상을 구하는 해피엔딩을 맞이합니다. 이것이 왕도물이 가지는 전형적인 스토리입니다.

왕도물은 장르의 특성상 자연스레 교훈적 메시지를 담아내게 됩니다. 주인공은 모험 도중에 갖은 시련과 고통을 겪지만, 그러면서도 우정, 사랑, 정의, 용기 등을 배우거나 체득합니다. 즉, 일종의 육체적·정신적 성장이 이루어지는 성장 서사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성장 서사’란 주인공이 인격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는 과정을 담아낸 이야기를 뜻합니다. 이러한 서사에서 주인공은 처음엔 미숙하고 불완전한 존재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다양한 시련과 통과의례를 거치고 갈등을 극복하고 진정한 자아를 인식하면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납니다.

따라서 성장 서사 속의 주인공은 대부분 초반부에 결핍과 상실의 정서를 갖습니다. 그러다 그가 성장해 나가면서 이것들이 점차 해소되는 과정을 그려냅니다. 이게 어른들로서는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매우 교훈적인 요소로 다가옵니다. 2010년대 초반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책 제목이기도 했던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딱 들어맞는 가치관인 것입니다. 그래서 왕도물은 과거에 주로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자주 접하던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의 작품에서 자주 구현되었습니다.

아프면 병원을 가야지...

주인공이 힘든 시련과 고통을 겪지만 참고 견디며 성장한다는 서사, 사랑하는 연인과 동료로부터 얻게 되는 사랑, 우정, 정의, 용기, 지혜 등의 가치, 정의로운 자는 반드시 악한 자를 물리친다는 권선징악의 결말 등은 시대를 초월해 왕도물이 발산하는 매력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대중들, 특히 MZ세대에게는 과연 공감과 환영을 받는 장르일지 의구심이 자리합니다.

대부분의 MZ세대들은 현재 경제 불황과 낮은 취업률 등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왕도물 속의 용사처럼 참고 견딘다고 해서 무언가 성장이나 발전이 이루어질 거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용사와 그의 동료들이 소중히 여겼던 사랑, 우정, 정의, 용기 등의 가치는 과연 현실 속 세상에서는 존재하며 인정받고 있는지 의문투성입니다. 오히려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욕망 앞에서 무기력해질 따름입니다. 이 세상에 과연 정의가 있는지도 의문이며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정의로운 자보다 나쁘고 부도덕한 사람들이 오히려 더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게 MZ세대들이 느끼는 허탈함과 분노입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비꼬아서 ‘아프면 병원을 가야지’라고 자조하고 있습니다.

회빙환의 범람 속에서 빛을 발하는 왕도물

최근 웹툰과 웹소설에서는 주인공이 환생, 빙의, 회귀라는 초자연적 현상을 통해 단기간에 엄청난 능력을 지닌 먼치킨이 되는 스토리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매우 이른 시간에 작중 주인공이 연인, 권력, 재력 등을 손에 넣고 이를 통해 자신을 괴롭혔거나 죽였던 이들한테 통쾌하게 복수한다는 내용을 비슷하게 담아냈습니다. 이는 특히 현재 강한 박탈감과 허무감에 지닌 MZ세대들한테 강한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킬 만합니다.

하지만 최근 비슷한 작품들이 너무 많아지면서 차별적이거나 색다른 요소를 부각하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조명하고 있는 게 바로 왕도물입니다. 왕도는 ‘정석(定石)’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정석이라는 게 어떤 때는 느리고 답답하며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래도 시대, 민족, 문화를 초월해 통용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 대중들이 공감하지 못한다 뿐이지 왕도물이 가지는 메시지와 주제의 가치는 퇴색하지 않았습니다. 왕도물의 매력에 다시금 대중들이 흠뻑 빠지는 날이 분명 올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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