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사극의 정의와 위상
TV사극은 역사 속 인물이나 사건을 소재로 하거나 역사적 시간과 공간을 배경으로 창작된 TV드라마를 의미합니다. TV역사드라마, 텔레비전 역사드라마 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TV사극은 일반적인 TV드라마에 비해 높은 제작비와 제작기간의 부담을 안고 있음에도 2010년대에는 연평균 7편 내외가 방영되었습니다. 이러한 추세는 2020년대에도 이어져서 2025년 11월 현재까지 총 31편이 안방 시청자들을 찾아갔습니다. <춘화연애담(티빙)>, <탁류(디즈니 플러스)>와 같이 OTT 서비스를 통해 발표된 작품들을 더한다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또한 이후에도 <문무(KBS)>를 비롯한 다수의 작품이 방영 예정인 터라 로맨스 및 판타지 장르와 더불어 TV드라마를 구성하는 주요 장르로 계속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입니다.
픽션사극이란 무엇인가?
TV사극은 등장인물, 사건, 세계관의 설정 등에서 사료의 비중이 크고 적음에 따라 크게 정통사극, 퓨전사극, 픽션사극의 세 가지 하위 장르로 구분됩니다. 이중 픽션사극은 사료의 구애를 받지 않고 가상의 역사를 세계관으로 설정해 그곳을 무대로 펼쳐지는 사극을 말합니다. 조선시대의 문화나 제도는 빌리지만, 이를 제외하면 소재나 형식에 있어서 현대물과 변별점이 두드러지지 않은 감성적인 내용과 인물들을 통해 대중의 역사적 판타지를 자극합니다.
픽션사극은 정통사극과 퓨전사극에 비해 그 역사가 짧습니다. 그렇지만 2020년대에 들어서는 현재까지 벌써 22편이 방영되면서 TV사극을 대표하는 장르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는 드라마적 상상력을 자유롭게 발휘한 새로운 캐릭터, 사건, 상황을 설정해 강렬한 극성을 발현할 수 있다는 픽션사극의 매력에 많은 제작자가 관심을 가졌다는 측면이 자리합니다. 더불어 어느 정도 사실적이고 정확한 역사를 반영해야 하는 다른 사극 장르에 비해 역사 왜곡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이점이 작용한 바도 클 것입니다.
〈시크릿 가든〉의 조선시대 버전, 〈이강은 달이 흐른다〉
<이강은 달이 흐른다>는 2025년 11월에 MBC에서 방영하기 시작한 신작 TV사극입니다. <옷 소매 붉은 끝동(2021)>, <연인(2023)>, <밤에 피는 꽃(2024)>으로 잇달아 시청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던 MBC TV사극의 명맥을 이어갈지 관심이 주목받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조선시대 버전 <시크릿 가든(SBS, 2010)>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남녀 주인공 길라임과 김주원은 서로의 영혼이 바뀌면서 좌충우돌의 소동을 빚어냅니다. 그런데 <이강은 달이 흐른다>에서도 남녀 주인공 이강과 박달이가 똑같이 서로의 영혼이 바뀌면서 비슷한 소동극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판타지 설정도 픽션사극이라는 장르에서만 발견되는 독특한 묘미라 할 수 있겠습니다. 비중이 크든 작든 역사의 기록이 작품에 녹아든 다른 사극 장르에서 남녀 주인공의 영혼이 바뀐다는 스토리는 도저히 적용할 수 없는 매우 이질적인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영혼 체인지를 통한 웃음의 유발과 로맨스의 강화
<이강은 달이 흐른다>에서 남성 주인공인 이강과 여성 주인공인 박달이는 영혼이 서로 바뀌는 바람에 다시 돌아가기 전까진 어쩔 수 없이 육신의 주인처럼 연기를 해야 하는 상황을 맞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한테 혼란과 의심을 초래하고 맙니다. 아무리 똑같이 흉내 내려고 해도 둘은 궁궐 안과 저잣거리라는 살았던 환경이 달랐고 왕세자와 등짐장수라는 신분이 달랐습니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성별이 달랐으니, 하루아침에 육신의 주인과 똑같이 행동하고 말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둘은 자신도 모르게 언행, 성격, 가치관의 차이를 드러냅니다. 이걸 무마해 보려고 하지만 그들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우스꽝스러움이나 해프닝이 곁들여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에게 자연스레 웃음을 선사합니다. 하지만 비단 이것만이 남녀 주인공의 영혼이 바뀐다는 설정을 사용하는 이유는 아닙니다. 이러한 소동극을 통해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이해하면서 결국 그것이 서로를 애틋하게 여기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다시 말해 둘의 로맨스 서사를 강화하는 장치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과거 <시크릿 가든>이 그러했듯이 <이강은 달이 흐른다>도 그러할 것입니다.
젊은 시청자의 사극 유입을 위한 전략?
최근에는 웹소설이나 웹툰에서 성전환, 즉 남성과 여성 간 육체적 성별이 변하는 요소를 다루는 창작물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하나의 장르를 구축하고 있다. 이를 ‘TS물(Trans-sexual Fiction, TSF)’이라고 지칭하는데 주인공이 이성(異性)으로의 변장, 변신, 환생하는 설정 등을 주요 소재로 활용합니다. 이중 남성의 몸에 여성의 영혼이, 반대로 여성의 몸에 남성의 영혼이 빙의한다는 설정의 작품들도 종종 발견됩니다.
따라서 웹소설이나 웹툰을 많이 접하는 MZ세대에게 육신과 영혼에서 성별의 불일치가 일어난다는 <이강은 달이 흐른다>의 전개는 생소하거나 불편한 설정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친숙함과 코미디의 강화로 인한 젊은 시청자의 유입을 기대할 수 있기에 마련한 장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사극은 예로부터 중장년층이 주로 시청했던 TV장르였습니다. 현재는 그 양상이 많이 바뀌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젊은 시청자들의 많은 관심이 필요한 건 사실입니다. 역사를 잘 몰라도 된다는 부담감에서의 해방, 상상력을 자극하는 판타지 설정을 자유롭게 녹여낼 수 있는 픽션사극은 그래서 TV사극에 입문하려고 하는 이들에게는 좋은 시작점이 될 수 있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