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이라는 건 생각보다 하찮지 않다.
우리는 쉽게 바람을 말하고,
희망을 떠올리고,
선호를 고른다.
하지만
‘소원’은 다르다.
그건
대가를 전제로 하는 간절함이다.
소원의 대가
소원을 이루어주는 핸드폰 어플, 기리고.

소원을 접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소원자의 사주.
생년월일과 이름.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건넬 수 있는 정보이지만,
사실은
한 사람의 운명을 통째로 묶어둔 것.
종이에 그것을 적고,
어플을 켜 소원을 말하는 순간,
그 소원은
더 이상 가볍게 흩어지고 마는 존재가 아니게 된다.
운명을 넘기고 비는 소원은
‘수학 시험에서 만점 받게 해 주세요.’
‘여자 친구의 주말 훈련이 취소되게 해 주세요.’
‘누구를 죽여주세요.’
‘내 친구를 살려주세요.’
그 소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반쯤 장난이었든, 순간의 감정이었든,
한 번 내어준 운명은
반드시 값을 치르게 만든다.
소원과 저주의 경계
저주는 무겁고
악의로 가득 차 있다.
정말 그럴까.
가볍게 뱉었다고 해서
그 소원이 가벼이 취급되지 않듯,
홧김에 지른 악담이 어쩌면 저주가 될 수도 있다.
‘기리고’에 빌어본 누군가의 죽음은
가벼운 소원과
이미 무거워지기 시작한 저주.
둘 중 무엇에 더 가까울까.
대가는 빠르게
소원 혹은 저주, 그 바람이 이루어지면
그 다음은 소원자가 대가를 치를 순서다.
소원자에게 남은 시간은
24시간.

시간이 다 되면
소원자는 죽는다.
스스로의 몸을 제어하지 못하고,
직접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누게 되며,
그것을 지켜보는 낯선 존재의 비웃음을 산다.
그리고, 주어진 시간이 흐르는 것은
막을 수 없다.
핸드폰에 자리 잡은 어플은
어떤 식으로도 지워지지 않는다.
강제 종료를 시도하다가는
흐르지 않는 시간에 화가 난 낯선 존재가
24시간의 유예도 주지 않고 찾아온다.
누군가의 하루가 지나는 걸 막기 위해서는
또 다른 누군가가 소원을 비는 수밖에 없다.
‘내 친구를 살려주세요.’
그 소원만이 시간을 멈추게 한다.
하지만,
그 순간.
방금 막 생겨난 새로운 소원자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다.
저주를 막기 위해 : 나의 저주를 바라보기
시간이 흐를수록,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또렷해지는 것이 있다.
낯선 존재.
그가 이끌고 간 곳은
새롭고 낯선 공간이 아니다.
기억 속에 묻어두었던 순간,
외면해 왔던 감정,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공간.
도망칠수록
그 공간은 더 또렷해진다.
외면할수록
더 가까이 다가온다.
결국,
그 앞에 멈춰 서는 순간에야
비로소 알게 된다.
이곳에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라는 것을.
도망치지 않는 것.
시작점
‘기리고’는 소원에서 시작하여
해답 없는 죽음의 공포를 거치고
저주 받은 이들은 무속이라는 통로를 이용해
개인의 끔찍한 기억으로부터 스스로 독립한다.
그 다음엔
저주의 끝, 기리고의 진실에 도달한다.
매끄럽게 변화해 가는 순간적인 상황들 속에서
절대 부정할 수 없는 것.
‘기리고’의 시작은, 저주가 아니라
‘나’였다는 것.
가볍게 뱉은 말 하나가
누군가의 삶을 무너뜨리고,
그 대가가 다시 나를 향해 돌아오는 순간,
우리는 깨닫는다.
소원은
그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을.
‘기리고’가 진짜로 두려운 이유는
누군가의 죽음을 만들어낼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 모든 시작이
결국,
나였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무심코 뱉은 말 하나에도
값이 따른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