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인류인가 우리가 좀비인가, 영화 “군체”가 비춘 거울상

안녕하세요! 미뮤엔토 대학생 에디터 1기 허시원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통해 ‘인간’과 ‘기술’의 경계를 나눌 수 있을까요?

과학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하면서 인간의 신체를 대체하는 의수와 의족의 존재를 우리는 당연히 아는 시대입니다.

만약 기술이 더 나아가 우리의 뇌와 장기, 신경망까지 완벽하게 연동해 버린다면, 우리는 그 때 나를 나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인간이라 부를 수 있나요?

영화관의 불이 켜진 후에도 지워지지 않는 이 묵직한 실존적 질문을 던지는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초고층 빌딩이라는 폐쇄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정체불명의 집단 감염 사태를 다룬 영화, <군체>입니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감염자들은 우리가 흔히 알던 생각 없는 좀비와는 다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이질적이면서 동질적인 기이한 감각을 느꼈는데요.

스크린 속 그들의 기괴한 행동 방식이, 거울에 비친 우리 인간들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인류인가 우리가 좀비인가

작중 감염자들은 학습 능력을 지닌 균류에 기반한 존재로,

모든 개체가 균사체를 통해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특성을 보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한곳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업데이트’를 진행하며 진화한다는 사실입니다.

초기의 좀비들은 지능이 없어 네 발로 기어 다니고 마네킹조차 구분하지 못하지만, 단 한 개체라도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면

이족보행을 학습하고, 협동을 하며, 후반부에는 컴퓨터를 다루고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기에 이릅니다.

갓 태어난 아기가 세상과 부딪히며 경험을 쌓고, 선대의 지식을 흡수해 마침내 온전한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는 인류의 흐름과 완벽히 일치하는 도약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무차별적으로 인간을 물어뜯고 공격하기 때문에 인간이 아닌 괴물인 걸까요?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반대편에서 도사리는 잔혹한 전쟁들은 무엇이라 설명해야 할까요.

서로의 이익을 위해 총성을 울리고, 폭탄을 투하해 인간의 형체를 파괴하는 잔인한 국제사회의 현실은

영화 속 좀비 아포칼립스와 하등 다를 바가 없습니다.

또한 이 좀비들은 종족을 번식하고 균사체를 최대한 퍼뜨리기 위해 타자를 공격합니다.

우리 인간 역시 ‘인류’라는 종을 유지하고 번성하기 위해

숲을 밀어내고, 동물들을 좁은 우리에 가두어 사육하며, 지구를 끊임없이 파괴하고 점령해 나가지 않나요?

거시적인 관점에서 인간과 군체는 타자를 희생시켜 주체를 확장한다는 점에서 완벽히 같은 궤적을 그립니다.

우리는 어쩌면 다른 생명체들에게 가장 끔찍한 좀비일지도 모릅니다.

 


‘밈(meme)’이라는 균사체

거시적인 문명의 확장을 지나, 조금 더 미시적인 우리의 일상으로 시선을 돌려봅시다.

여러분은 ‘밈(meme)’이라는 단어를 잘 아실 겁니다.

오늘날 우리는 대중문화 속에서 유행하는 짧은 영상이나 사진을 밈이라 부르지만,

이 용어의 진짜 어원은 1976년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 등장한 개념입니다.

도킨스는 생물학적 유전자를 넘어, 문화가 진화하고 전파되는 과정을 설명하며 이를 ‘비유전적 문화 요소’라 정의했습니다.

즉, 모방과 공유를 통해 뇌에서 뇌로 전달되는 사회적 지식의 네트워크인 셈입니다.

영화 속 좀비들은 새로운 정보가 공유될 때마다 갑자기 머리를 치켜들고 온몸을 기괴하게 경련하는 행동을 보입니다.

단 한 명의 경험이 집단 전체의 지성으로 동기화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죠.

저는 이 장면에서 문자의 발명부터 활판 인쇄술, 그리고 마침내 인터넷을 구축해 내며 선대의 지식을 실시간으로 축적해 온 인류의 찬란한 전승 과정이 겹쳐 보였습니다.

우리 역시 과거부터 현대까지, 보이지 않는 사회·문화적 구조 속에서 서로의 지식을 모방하고 업데이트하는 ‘머리를 치켜드는 행위’를 반복하며 문명을 일궈왔기 때문입니다.

특히 인터넷과 초연결망이 극도로 발달한 현대 사회는 물리적인 한계를 완전히 지워내며 지구 반대편의 지혜와 문화까지 찰나의 순간에 동기화시킵니다.

인류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고 촘촘한 ‘초연결의 집단지성’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실시간으로 수많은 정보와 문화를 교류하며 상호작용하는 우리의 모습은, 행위를 넘어 문화적 진화를 이뤄내는 군체의 번성과도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영화 <군체>는 단순한 재난물이 아니라, 연결을 통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생명력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우리가 향유하는 ‘밈(meme)’은 인류가 역사로부터 이어받아 끊임없이 진화시키고 있는 가장 강력한 비유전적 문화 활동입니다.

이것은 맹목적인 복제도 아니며, 그렇다고 완벽한 도덕적 이상향도 아닙니다.

밈으로 진화한 군체의 모습은, 오직 인간의 안위만을 위해 자연을 도구화하고 생태계를 점령해 온 ‘인간중심주의’와 닮아 있기도 하기 때문이죠.

또한 그들이 좀비인가 우리가 인류인가라는 질문은, 선(인간) 악(좀비) 이라는 이분법적인 틀 속에서만 유효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혼자서는 마주할 수 없었던 삶의 한계를 거대한 집단 지성의 유기체가 되어 함께 넘어서되,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인간중심주의적’ 오만과 전쟁이라는 구조적 폭력을 끊임없이 비판하고 성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초연결의 파도의 흐름이 만들어낼 내일을 기대하며, 지금까지 미뮤엔토 에디터 허시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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