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살인범 ‘이춘재’를 모티브로 한 드라마가 또 등장했다. 바로 ENA 월화 드라마 <허수아비>이다.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은 다큐멘터리나 영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이미 여러 번 다뤄진 소재다. 따라서 이야기의 중심 축으로서의 신선함이 떨어질 수 있다는 한계를 지녔지만, 이 작품은 실제 사건에 가상의 설정을 영리하게 버무려 서사적 약점을 훌륭히 극복해 냈다. 특히, ‘허수아비’라는 제목은 실제 사건 당시 경찰의 ‘너는 자수하지 않으면 사지가 썩어 죽는다’라고 써 붙여 세워놓은 허수아비로부터 따왔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있다. 이 작품은 전개되는 내내 ‘허수아비’는 과연 누구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그 시절 ‘허수아비’로 전락해버린 사람들과 사회를 소상히 보여준다.

‘허수아비’의 상징성
작품에서 ‘허수아비’는 단순히 제목이라는 상징성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우선, 작중 배경인 ‘강성’연쇄살인사건 진범의 범행 수법을 나타내는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가 아니며, 드라마로 오면서 각색된 부분이다. 강성연쇄살인범인 ‘이용우’는 옥수수밭에 숨어 스타킹을 신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른다. 그는 ‘밭’이라는 장소적 특성을 이용해 허수아비인 척을 하며 범행 대상에게 다가가는 소름 끼치는 수법을 사용한다. 이는 ‘이용우’라는 범인의 치밀하고도 기이한 범행 수법을 가시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인간성’이 말살된 채 사람의 탈을 쓴 텅 빈 허수아비로서만 기능하는 그의 모습 또한 비춘다.
이 작품에서는 범인만을 허수아비라고 말하지 않는다. 연쇄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투입된 공권력 또한 허수아비라고 비판한다. 이는 10화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을 잡았다는 공로로 표창을 받게 된 경찰들은 어린아이인 ‘혜진’의 시신을 통해 사실 진범이 잡히지 않았음을 깨닫고 시신을 은폐하려고 한다. 막내 형사인 박대호(류해준)도 마지못해 이에 동조하지만, 양심에 가책을 느껴 잠시 다른 곳으로 옮겨놨던 혜진의 시신을 다시 찾기 위해 밤에 그곳을 다시 방문한다. 이를 발견한 태주는 “시킨다고 다해? 네가 허수아비야? 너 인간이야, 너 사람이야. 어떻게 인간이 그딴 짓을 해!”라며 경찰로서, 또 인간으로서 해선 안 되는 일을 저지른 대호에게 분노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자신의 명예와 권력을 위해서라면 범인을 만들어서라도 공을 세우고 싶어 하는 검사, 그런 권력에 한번 빌붙어 보고자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다 고문해 거짓 자백을 받아낸 형사들. 허수아비를 잡으려다 되려 허수아비가 되어버린 사람들이다. 이처럼 드라마 <허수아비>에선 직업 윤리를 버리고 지위를 이용해 억울한 희생양들을 만들어낸 그 시절 공권력의 이면을 신랄하게 고발한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이 작품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전개된다. 강성 연쇄살인사건이 시작된 1988년부터, 마침내 진범을 마주한 2019년까지. 이는 30년 동안이나 실제 범인이 잡히지 않았다는 불편한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드라마에서는 2019년의 태주가 면회를 통해 진범을 마주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그는 범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를 잡기 위한 수사 과정, 그로 인해 잃어야만 했던 사람들 등을 되짚어보며 자신의 과오를 마주 보고 또 반성한다. 또한 그 당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사실들을 진범의 고백을 통해 알게 되며 자신의 성급한 판단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는지에 대해 깨닫는다. 태주는 누구보다도 ‘진실’에 다가가고자 발버둥 쳤던 형사였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마저 그 당시 한계가 있었던 부정확한 검사 결과, 가설의 오류 등에 가려지며 그 역시도 누군가에겐 ‘부패 경찰’과 같은 역할로 기능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태주 역시도 ‘차시영(이희준)’의 권력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을 이용하기도 하고, 또 그 권력에 이용당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의 이중적인 면모 또한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태주 X 시영의 복잡한 관계
드라마 <허수아비>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인물은 강태주와 차시영, 이 두 명이다. 태주와 시영의 관계는 단편적이지 않다. 원래는 친한 친구였던 둘이었지만, 특정 시점 이후로 시영은 태주를 괴롭힌다. 그로 인해 둘도 없는 친구에서 태주는 단숨에 학교폭력 피해자로 변모하게 된다. 성인이 된 태주는 강성 연쇄살인사건으로 다시 시영과 조우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애써 외면했던 기억들이 다시 떠오르면서 트라우마 증세를 보인다. 후에 시영이 태주를 괴롭힌 것이 자신의 아버지가 술집에서 일하는 태주의 어머니와 차 안에서 만남을 갖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인 것이 밝혀진다. 시영의 아버지는 영향력 있는 정치인으로서, 시영의 집안은 명예와 권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시영 역시도 서자라는 약점이 있으며, 그렇기에 항상 형과 비교당하며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자격지심이 있다. 그에 반해 태주는 굉장히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환경적인 배경을 제외한 그들을 둘러싼 나머지 특징들이 대체적으로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둘은 각자 추구하는 지향점이 너무나도 다르다. 시영은 오로지 자신의 출세를 통한 ‘인정’이 목적이며, 태주는 형사로서 범인을 잡아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한 대척점에 서있는 둘은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 ‘강성 연쇄살인사건’의 공조 파트너가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또 다시금 서로를 혐오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과연 둘의 관계가 과거에서 현재로 왔을 때 어떻게 변모할지에 대해 궁금증을 유발한다. ‘허수아비’에서는 시영의 악행을 그저 철없는 어린 시절 일탈로 그리지 않는다. 그의 악한 면모는 결코 교화될 수 없음을 확실히 보여주는 한편, 시영이 가진 입체적인 모습 또한 동시에 그려내며 과연 그들의 관계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깊은 의문과 기대감을 품게 만든다.
드라마 <허수아비>는 단순히 범죄의 자극적인 재연에 치중하지 않는다. 그 대신, 수차례의 살인 사건에도 불구하고 진실에 다가서지 못했던 시절의 답답함과 그로 인한 사람들의 고통에 초점을 맞춘다. 정의가 사라진 사회와 권력 앞에 아무 힘도 없이 고개 숙여야 했던 사람들을 조명하며 이러한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