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이’를 만난 뒤 늑대소년 ‘철수’의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밥을 먹을 때에도, 함께 들판에서 뛰어놀 때도, 심지어 ‘순이’가 그를 떠나는 순간마저도 말이다.
마을에서의 소동 이후,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순이’는 “기다려. 나 다시 올께.”라는 쪽지를 남긴 뒤 ‘철수’와 함께 살던 집을 떠난다. 그리고 수십 년이 흐른 뒤, 할머니가 된 ‘순이’는 다시 그 집을 찾는다. ‘순이’가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그녀가 남긴 쪽지를 손에 쥔 채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철수’다.
한 소녀가 할머니가 되는 긴 시간 동안 홀로 그 집에서 그녀를 기다리던 늑대소년이 결국 그녀와 재회한다는 결말은 ‘늑대소년’이라는 존재의 순수성을 드러내며 서사의 여운을 짙게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결말은 동시에 왜 ‘순이’는 조금 더 일찍 ‘철수’를 만나러 오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을 남기기도 한다. 그녀가 오랜 시간 ‘철수’를 찾아가지 못한 데에는 이민으로 인한 물리적인 거리와 더불어 자신과의 만남으로 인해 그가 또다시 사람들의 눈에 띄어 위험에 처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자리했을 것이다. 많은 애정을 주었지만 동시에 아픈 기억이 되어버린 그를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건물 철거 소식을 듣기 전까지 수십 년 동안 그 집에 와보지 않았다는 사실은 결말의 비극성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느껴진다. ‘순이’는 ‘철수’가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릴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풀과 꽃이 자란 헛간, 철사로 어설프게 고쳐진 ‘순이’의 기타, ‘철수’가 그린 동네의 풍경…. 누군가는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할 만큼 두 사람의 재회는 따뜻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이것은 온전히 ‘순이’의 관점에서 바라본 결말일 뿐이다. ‘철수’의 관점에서는 또다시 기약 없는 기다림이 예고된다는 점에서 비극적이다. 영화는 차를 타고 떠나는 ‘순이’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는 ‘철수’의 표정을 담은 클로즈업 샷으로 끝을 맺는다. 그의 표정에는 또다시 홀로 남겨지는 것에 대한 슬픔과 외로움이 서려 있다. 특히 해당 장면에서는 그의 볼에 남은 흉터가 눈에 띄는데, 이는 그의 내면에 남은 상처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깨끗이 지워지지 않는 흉터처럼, 그의 내면에도 세상과 ‘순이’로부터 받은 상처의 자국이 존재할 것이다. 그에게 가장 큰 상처는 단순히 혼자라는 사실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버려졌다는 사실이었을지 모른다. 사람의 손을 탄 동물이 야생에 적응하기 어렵듯, 인간의 온기와 사랑을 경험한 그가 다시 혼자가 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결말은 돌아갈 집과 가족이 있는 ‘순이’에게는 오랜 그리움과 죄책감을 덜어내는 계기가 되지만, 다시 홀로 남아 그녀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철수’에게는 또 한 번의 기약 없는 이별로 남는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