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는 방영된 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마니아층 사이에서 꾸준히 회자되는 작품이다. 자극적이고 빠른 콘텐츠가 눈길을 끄는 시대에 16부작을 정주행하도록 만드는 ‘괜찮아, 사랑이야’의 매력은 무엇일까.
작품은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이해가 부족했던 시기에 이를 전면적으로 다루며 몸이 아닌 마음을 챙기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전까지는 정신질환이 인물의 캐릭터성을 부각하거나 서사의 극적 전개를 위한 장치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괜찮아, 사랑이야’는 정신질환을 서사의 중심을 두고 풀어나간 것이다.
‘괜찮아, 사랑이야’는 각기 다른 과거의 트라우마를 가진 스타 작가 ‘재열’과 정신과 의사 ‘해수’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품은 단순히 두 인물의 로맨스를 중심에 둔다기보다 내면의 치유 과정에 집중한다. 그중에서도 ‘재열’의 트라우마가 형상화된 인물 ‘강우’는 작품의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존재다.
‘재열’의 열혈 팬이자 소설가 지망생인 ‘강우’는 조금 소심하지만 해맑은, 평범한 고등학생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가정 폭력과 죽음으로 인한 ‘재열’의 트라우마가 투영된 인물로, ‘재열’의 눈에만 보이는 환시라는 반전을 담고 있다. ‘강우’는 어린 시절 ‘재열’처럼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시달린다. 그럴 때마다 ‘재열’은 ‘강우’의 아버지를 향해 대신 주먹을 휘두르며 그를 구한다. 이러한 ‘재열’의 모습은 지켜주지 못했던 과거 자신을 구하기 위한 몸부림처럼 느껴져 애틋함을 자아낸다.
‘재열’은 과거에 묶여 있다. 그 과거 속에는 아버지의 학대로 인한 상처, 아버지에게 해를 입힌 것과 거짓 증언을 한 것에 대한 죄책감, 자신에 대한 연민 등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다. ‘재열’은 그 과거 속에서 괴로워하지만, 사실 누구보다 간절히 그 시간 속에서 헤어 나오기를 바랐던 것은 ‘재열’ 자신이다. 그래서 ‘재열’은 ‘강우’를 그토록 필사적으로 구한 것이다. 마치 ‘강우’를 구하면 어린 시절의 자신을 구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에게 필요한 것은 뒤늦은 구원이 아닌 놓아줌이었다. 우리는 현재의 ‘나’가 과거의 ‘나’와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종종 과거 어느 한 시점의 ‘나’를 수정하고 싶어 한다. 때로는 “그때 이렇게 하지 말걸.”과 같은 후회 속에서, 혹은 후회조차 허락되지 않는 과거 앞에서 말이다. 이것은 마치 볼펜으로 쓰인 글씨를 꾸역꾸역 지우개로 지우려 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럴수록 글씨는 지워지지 않고 종이만 너덜너덜해질 뿐이다.
‘강우’가 환시라는 것을 깨닫게 된 ‘재열’은 그의 상처 난 발을 씻기고, 새 운동화를 신기며 그를 놓아줄 준비를 한다. 끝내 ‘강우’가 떠나고 운동화 한 켤레만 시야에 남았을 때 ‘재열’은 어땠을까. 아마 그는 자신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상실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에게 ‘강우’는 단순한 환시가 아니라, 그가 놓지 못하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의 ‘나’를 놓아줄 때 비로소 현재의 ‘나’가 그 자리에 온전히 설 수 있다. 어쩌면 진정한 구원이란 과거의 ‘나’를 향해 손을 뻗는 게 아니라, 그의 안녕을 빌며 손을 흔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