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너레이션, 콘셉트, 그리고 음악적 완성도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지만 어라, 결말이 왜 여기서 끝나지? 혹은 이 매력적인 세계관을 이렇게 마무리한다고? 하는 아쉬움을 남긴 SM 여자아이돌의 뮤직비디오가 있습니다. 제가 꼽은 가장 아쉬우면서도, 그렇기에 더 깊게 몰입할 수밖에 없었던 작품은 바로 레드벨벳(Red Velvet)의 ” Chill Kill ” 입니다. 이 뮤직비디오가 왜 그토록 아름다우면서도 아쉬운 여운을 남겼는지, 그리고 제가 진심으로 바랐던 그들의 진짜 결말은 무엇이었는지 깊이 있게 리뷰해 보겠습니다.
레드벨벳의 ‘Chill Kill’ 뮤직비디오는 한 편의 웰메이드 스릴러 영화를 연상시키는 압도적인 영상미와 서사를 자랑합니다. ‘고요함을 깨뜨리는 거대한 사건이나 존재’를 뜻하는 제목처럼, 뮤직비디오는 어둡고 폐쇄적인 저택 안에서 가부장적이거나 강압적인 존재(혹은 그들이 벗어나고 싶어 하는 과거의 굴레) 아래 억압받는 다섯 자매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억압과 우발적 사건 – 자매들은 숨 막히는 환경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버티다, 결국 그들을 억압하던 인물을 ‘처리’하는 극단적인 사건을 저지르게 됩니다.
비정상적인 평화 – 사건 직후, 자매들은 공포에 질리지만 이내 시체를 숨기고 집안을 청소하며 기괴할 정도로 밝고 평화로운 일상을 보냅니다. 피가 묻은 옷을 빨고, 파티를 열어 춤을 추는 모습은 위태롭고 위태롭습니다.
파멸로 향하는 후반부 – 결국 경찰차가 저택 앞에 도착하고, 사이렌 불빛이 붉게 번지며 자매들의 기묘한 평화는 깨어집니다. 그들은 손을 잡고 숲속으로 도망치지만, 결국 경찰들에게 포위당하는 처절한 엔딩으로 마무리됩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 뮤직비디오가 아쉬운 이유는 ‘클리셰적인 현실의 법적 심판’으로 이야기가 너무 허무하게 닫혀버렸기 때문입니다.
레드벨벳이 그동안 쌓아온 세계관(예: ‘Peek-A-Boo’에서의 피자 배달원을 사냥하는 미스터리한 소녀들, ‘Psycho’에서의 기괴하지만 매혹적인 관계성)은 언제나 현실의 규칙을 뛰어넘는 잔혹동화 같은 매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Chill Kill’은 다섯 자매가 마침내 해방을 맞이하려는 순간, 너무나 정직하게 ‘경찰의 체포’라는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히며 끝이 납니다. 자매들이 서로를 껴안고 눈물 흘리며 포기하듯 손을 드는 장면은 감정적으로는 애절하지만, 그들이 보여준 주체적이고 기괴한 에너지가 순식간에 ‘비극적인 범죄자 잔혹사’로 격하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만약 제가 이 뮤직비디오의 연출자였다면, 혹은 이 매혹적인 잔혹동화의 각본가였다면 현실적인 체포 엔딩 대신 다음과 같은 2가지 방향성 중 하나로 결말을 이끌었을 것입니다.
경찰들이 저택을 포위하고 숲속까지 쫓아오는 상황은 그대로 유지합니다. 자매들은 막다른 길에 다다르고, 경찰들의 서치라이트가 그들을 비춥니다. 하지만 그 순간, 자매들은 공포에 질리는 대신 서로를 바라보며 기괴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짓는 거죠. 곡의 킬링파트인 찬란하고 벅차오르는 밝은 코러스 음악이 극대화되면서, 자매들이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존재였음이 드러나는 연출을 희망했습니다. 경찰들이 방선총을 겨누며 다가오는 순간, 다섯 자매가 연기처럼 사라지거나 나비 떼로 변해 어두운 밤하늘 속으로 날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카메라가 그들이 서 있던 자리를 비추면, 자매들이 묶여 있던 쇠사슬이나 억압의 상징물들만 바닥에 툭 떨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너희들의 세상(현실의 법과 규제)에 갇히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주며, 완벽한 해방을 이뤄내는 카타르시스를 보고 싶었습니다.
또 다르게 해석을 해본다면 , Chill Kill 은 “고요함을 깨뜨리는 사건”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소름 끼치는 고통(Chill)을 죽여버린다(Kill)”는 능동적인 해석도 가능합니다. 경찰이 올 것이라는 걸 이미 진작에 알고 있었던 자매들이, 도망치는 대신 정면으로 맞서는 결말입니다. 그들은 도망치다 잡힌 나약한 소녀들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판을 짠 설계자여야 했습니다. 경찰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왔을 때, 자매들은 이미 단서가 될 만한 모든 것을 불태우고 저택 뒷문으로 유유히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태운 잿더미 속에서 그동안 자신들을 억압했던 계약서나 사진들이 불타 없어집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옷을 입고, 낯선 이국의 해변이나 탁 트인 도로 위에서 자유롭게 웃으며 드라이브를 즐기는 레드벨벳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비극을 완전히 끝내버리고(Kill), 진짜 자신들의 삶을 찾아 떠나는 주체적이고 통쾌한 엔딩이었다면 곡의 청량하면서도 비장한 사운드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을 것입니다.

결말에 대한 진한 아쉬움을 토로하긴 했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아쉬움이 남는다는 것 자체가 ‘Chill Kill’ 뮤직비디오가 관객을 몰입시키는 힘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증명합니다. 자매들의 비극적 체포 엔딩은 팬들로 하여금 “이게 끝이 아닐 거야”, “사실 이 뒤에 다른 반전이 숨겨져 있을 거야”라며 수많은 해석과 세계관 분석을 낳게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제작진은 완벽한 닫힌 결말 대신, 대중의 상상력 속에서 뮤직비디오가 계속해서 이어지기를 바랐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레드벨벳이라는 독보적인 비주얼 디렉팅을 가진 그룹이었기에, 현실의 경찰 사이렌 불빛에 허무하게 무릎을 꿇는 소녀들의 모습보다는 세상의 틀을 부수고 날아오르는 당당한 파멸이나 완벽한 탈출을 보고 싶었던 마음은 여전히 지울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이 잔혹동화의 진짜 엔딩은 어떤 모습인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