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성과 여성 — 「마더」(2009) 리뷰
봉준호 감독 / 김혜자, 원빈 주연
영화는 갈대밭에서 홀로 뜻 모를 춤을 추고 있는 혜자(김혜자)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읍내 약재상에서 일하며 아들과 단둘이 사는 그녀에게는 지적 장애를 가진 아들 도준(원빈)이 있다. 그리고 혜자는 도준을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챙긴다.
어느 날 밤, 술에 취해 귀가하던 도준은 한 여고생을 따라가고, 다음 날 그 여고생이 옥상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현장 근처에서 발견된 골프공으로 용의자로 몰린 도준을 구하기 위해 혜자는 진범을 찾는다. 당일 날 함께 있었던 진태를 의심한 혜자는 그의 집에 찾아갔다 결정적인 증거로 보이는 골프채를 발견한다. 서둘러 집에서 빠져 나가는 데에 실패한 혜자는 옷장에 숨은 채로 진태가 성관계하는 상황을 지켜보고, 이후 경찰에 골프채를 전달하지만 사건과 무관한 물건이었음이 밝혀진다. 진태는 혜자의 집에 찾아와 위협적인 태도로 위자료를 요구하고, 나가는 길에 도준의 일에 대한 조언을 해준다. 그에 따라 혜자는 혼자 탐문 수사를 시작하고, 사건을 파헤치다 쌀떡소녀라는 별명을 가진 아정의 사연을 알게 된다. 결정적인 증거가 될 핸드폰을 찾아 도준에게 보여주자 도준은 그 날 현장에서 봤던 백발 노인(혜자가 이전에 만난 적 있던 고물상)을 기억해내고, 그를 진범으로 확신한 혜자는 무료 침술 봉사단체로 위장해 고물상을 찾아간다. 하지만 그 곳에서 그녀는 노인으로부터 ‘사실 아정을 죽인 진범은 도준이 맞았다’는 진실을 듣게 되고, 사건의 은폐를 위해 고물상을 살해한다.
극의 종막, 지체장애인 종팔이 도준 대신 범인으로 몰려 감옥에 간다. 면회를 간 혜자는 그에게 엄마가 없냐고 묻는다. 없다는 종팔의 답변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혜자. 한편 도준은 고물상의 집에서 혜자의 침통을 발견하고, 아무 말 없이 그것을 돌려준다. 서로가 서로의 비밀을 안다.
관광버스에서 사람들과 섞여 아무렇게나 춤을 추는 혜자의 모습으로 극은 끝난다. 오프닝과 같은 몸짓으로.
마더는 표면적으로 “그릇된 모성애”에 대한 이야기로 보인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혜자라는 인물이 겪는 일련의 감정들을 단순히 ‘모성애’라는 범주 안으로 묶을 수 있는 것일까?
<마더>는 엄마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일종의 오이디푸스 영화다.
혜자는 도준이 어릴 적 동반 자살을 시도했고, 그 일로 인해 아들의 지능 장애가 생겼다고 믿어 죄책감에 시달리며 도준을 비정상적인 수준으로 과보호하는 인물이다.
도준이 용의자로 몰린 이후부터 혜자의 모성애는 손 쓸 수 없이 커지고, 극단으로 치달은 감정은 결국 그녀 자신을 파멸시킨다.
중요한 건, 그녀의 행동이 단순히 ‘아들을 위한 희생’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들을 지키고 싶다”는 감정은 분명 모성애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자신의 욕망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마더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이 영화는 결국 “욕망을 이기지 못한 개인의 파멸”이라는 아주 단순한 서사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마더>는 지나치게 신성화되던 모성애라는 감정과 엄마라는 존재를 보다 다면적으로 바라보는 영화이다.
봉준호의 영화는 대개 사회 구조에서 비롯되는 갈등을 풍자적으로 조명하는 형식이다.
설국 열차, 기생충은 계급 문제를, 살인의 추억, 괴물은 사회 시스템의 부재 또는 빈틈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마더는 유일하게 사회가 아닌 개인 내면의 갈등과 파멸을 다룬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물론 혜자가 경찰이나 변호사들에게 법적, 공적 도움을 받지 못하고 혼자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점에서 공권력의 무능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영화의 초점은 혜자의 내면에 맞추어져 있다)
매체 속 어머니에게는 관습이 있다. 가족에게 무조건적으로 헌신하고, 개인의 욕망은 지워진 채 역할로만 존재하며, 성적인 존재로 읽히는 것은 금기다.
「마더」의 혜자는 겉으로는 그 전형처럼 보인다. 모자란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헌신, 아들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하는 보호 본능.
그런데 이 전형적인 외양을 사유로 삼아 살인이 정당화되는 순간, 그 전형은 산산이 부서진다.
영화는 그에 더해 어머니와 성(性)의 금기를 의도적으로 건드린다. 혜자가 진태의 성행위를 목격하는 장면, 진태와 혜자 사이의 모호한 긴장감, 도준과 혜자 사이에서 느껴지는 근친상간적 뉘앙스.
영화 전체적으로 성적인 함의가 깔려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어머니를 가정의 ‘역할’이 아닌 한 ‘인간’으로 바라보겠다는 선언이다.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이 정확히 이 영화가 의도한 반응이다.
마더는 모성애를 찬양하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그 신화를 해체하는 영화에 가깝다.
이 영화가 끝났을 때 남는 것은 감동이 아니라 질문이다.
사랑은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사랑이 타인과 자신을 파괴한다면, 그것도 여전히 사랑인가.
봉준호는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대신, 춤추는 한 여자를 보여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