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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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영화는 밀양이다.

종교적 가치관에 따라 달리 해석되는 영화.

영화에 대한 감상이 나의 상태에 따라 바뀌는 경험을 가장 극단적으로 느꼈기 때문.

 

 

줄거리

남편을 잃은 신애(전도연)는 아들과 함께 남편의 고향인 밀양을 찾아온다.

돈이 없지만 얕보이지 않으려 땅을 보러다니던 신애.

때문에 그녀는 부자로 오해 받아 그녀의 아들이 유괴, 살인 당한다.

절망한 신애는 교회에서 구원을 받았다 느끼게 된다.

종교에 따라 유괴범을 용서한다며 그녀는 유괴범과 면회를 신청한다.

그러나 그녀가 용서하기 전 유괴범은 자신이 용서받았다 선수친다.

교도소 교회에서 하나님께 용서 받았다는 유괴범.

신애는 절망하고 반기독교적인 행위를 저지르다 자살을 시도한다.

앞서 밝히자면 현재 나는 특정 종교를 믿고 있지 않은 상태이다.

나는 모태신앙 출신이다.

주말에 교회에 가는 것은 익숙했으며 명절에 예배를 드리는 것이 일상적이었다.

내게는 차례가 더 낯선 문화였다.

중학교 시절 사춘기와 함께 나의 종교적 가치관은 반기독교적 성향으로 바뀌었다.

단순히 신은 없다는 무신론을 넘어 기독교적 가치관을 부정했다.

이 시점에 밀양을 처음 접했다.

이 영화를 보게된 계기는 지극히 단순했다

“네 원수를 사랑해라” 라는 성경 구절에 반박하는 영화라 들었기 때문.

때문에 영화 후반 신애의 반기독교적인 행위에 큰 카타르시스를 얻었다.

집회 중에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를 틀거나, 장로를 성적으로 유혹하여 간통을 저지르려나 하는 것들 말이다.

장로가 그녀의 몸을 탐할 때 하늘을 바라보며 “보여? 잘 보이냐고?” 라고 묻는 장면은 당시 내게 최고의 장면이었다.

신에 대한 도발적인 그녀에 태도에 집중하였고 그 부분에 대해서만 공감했었다.

보이는 것에 대해서만 믿었기에 기독교는 논리적으로 정의될 수 없는 배척의 대상이었다.

성인이 되고 밀양을 다시보게 되었다.

버닝을 인상적으로 보았기에 감독의 다른 작품에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밀양이 그의 작품임을 깨닫고 단순히 기독교를 비판하려 만든 영화는 아니겠다 싶기도 하였고 말이다.

이 때는 나의 종교적인 가치관은 변화된 이후였다.

종교의 효용, 종교적 가르침의 긍정적인 면을 인정했다.

교회 활동 또한 커뮤니티의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좋게 보게 되는 등 기독교의 보이지 않는 부분을 인정했다.

이 시점에서 마주한 밀양에 충격을 받게 되었다.

영화는 기독교를 비판적으로 다루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기독교인들의 행태가 사실적으로 묘사될 뿐이고, 내가 그것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밀양, 비밀스러운 햇빛이란 지명은 영화 초반 직접적으로 언급된다.

주인공 신애는 과거를 지우고 비밀스러운 새출발을 시도한다.

동네 약사는 신애에게 성격책을 전해주며 말한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이군요” 라고.

이 부분이 내게 가장 인상깊은 부분이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과 의심 사이 갈등하는 모습이 나와 겹쳐보였기 때문이다.

신애는 보여지는 것에 집중한다.

과거를 숨기고, 땅 투자를 알아보며 없는 재력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동시에 신애는 보이지 않는 것 또한 믿는다.

바람난 남편이지만 가정에 충실했다는 상상을 믿으며, 밀양에 온 이유도 보이지 않는 햇볕 때문.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불신 또한 가지고 있다.

전도하는 기독교인을 배척하는 것 뿐만 아니라 유괴범에게 아들의 목소리를 들려달라 재차 부탁하는 것 또한 이러한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감독은 이러한 신애의 모습을 통해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 – 종교

신애는 교회를 다니게 되며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믿기 시작한다.

이 시점에서 그녀의 세상은 명료해진다.

모든 것은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자 아들을 잃었음에도 그녀는 활짝 웃으며 행복하다 주장한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불신 – 배교

신애는 신의 뜻에 따라 (그녀가 해석한 신의 뜻) 유괴범을 용서하러 간다.

그러나 이미 신에게 용서 받았다는 유괴범의 말에 신애는 배교를 선택한다.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 “보여? 잘 보이냐고?” 라 묻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

그러나 감독은 신이 없다는 그녀의 주장을 반박한다.

집회에서 “거짓말이야”를 틀었지만 사람들은 신을 의심하지 않았으며 몇몇 신도는 더 열정적으로 신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그녀는 장로의 간통을 유도했지만 실패로 끝나게 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게 된 것이다.

 

 

주체성

신애는 혼란 속에서 신의 뜻을 믿기를, 신의 뜻을 믿지 않기를 선택하며 방황한다.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이후 그녀는 스스로를 믿기로 선택한다.

퇴원 후 찾은 미용실, 그곳에서 유괴범의 딸을 만난다.

신애는 이전에 딸이 폭력을 당하는 것을 보고 도망친 적 있다.

운명 같은 만남, 신애는 딸에게 그때에의 용서를 구하고 동시의 유괴범의 딸이라는 사실을 용서하며 화해의 길을 갈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자리를 박차며 신이 마련한 것 같았던 화해의 기회를 걷어차버린다.

이후 집으로 돌아와 그녀는 직접 머리를 자르며 앞으로 그녀의 삶에서 주체가 자신일 것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밀양' - 독서신문

 

마당 흙바닥에 내리쬐는 장면을 길게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밀양' - 독서신문

 

그전까지 신애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보이지 않는 것의 근원에 대해 물음을 던져왔다.

그러나 영화 말미에선 그것이 비추는 세상을 포착하며 끝이 난다.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을 통해 보이는 것에 집중한 것이다.

보는 주체가 신애라는 점에서 “신의 뜻”이 아니라 “신애 뜻”으로 변화한 것.

 

 

이런 사랑도 있다

영화 포스터에 적혀있는 글귀이다.

뿐만 아니라 감독은 이 영화가 멜로 영화라 주장한다.

앞선 글에 따르면 신애의 내면이 성장하는 영화로 보이는데 말이다.

 

2007 송년결산] 올해의 영화 베스트 5

 

영화의 또다른 주인공, (조연급의 비중이지만) 종철(송강호)에 주목해야한다.

39의 노총각, 신애에게 첫눈에 반해 따라다니는 인물이다.

그는 신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눈치가 없는 캐릭터임은 덤.

하지만 신애 옆에서 맴돌며 그녀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영화는 그 끝없는 노력에서 희망을 찾고 이를 조명한다.

아이가 유괴되었을 때 신애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종찬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다.

그러나 영화 마지막 신애가 머리를 자를 때 거울을 들어주겠다는 종찬의 도움을 거절하지 않게 변화한다.

신애가 먼저 도움을 요청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로 바뀌지는 못했지만, 도움을 거절하지 않는 수준의 관계로의 변화.

그 미미한 변화 속 희망을 포착한 것이다.

인간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지만, 끝없는 노력을 통해 가까워질 수 있다 말이다.

 

 

용서

영화의 핵심적인 질문은 용서이다.

“피해자가 용서하기 전에 누가 용서할 수 있느냐, 라고. 그리고 가해자가 참회한다는 것이 얼마나 진실한 것이냐, 그리고 그것을 누가 알 것이냐.”

이창동의 <밀양> ② 이창동 감독, 영화평론가 허문영 대담 中

라는 질문에서 영화가 시작되었다고 이창동 감독은 밝혔다.

그리고 영화는 용서의 주체가 자신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것의 어려움을 보여주며 용서의 길 역시 험난함을 보여준다.

상대방의 참회 했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신애가 교통 사고를 낼 뻔하자 상대방은 이렇게 묻는다.

“사람 죽일 뻔 하고 미안하다면 답니까?”

용서를 비는 것도, 용서를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종철이 신애에게 보여준 사랑처럼 노력한다면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밀양은 결국 답을 주지 않는 영화다.

신은 있는가, 용서는 가능한가, 인간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에 대해 영화는 끝내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대신 하나의 태도만을 남긴다.

보이지 않는 것에 기대어 살아갈 수도, 그것을 부정하며 살아갈 수도 있지만

결국 선택하고 감당하는 것은 온전히 ‘나 자신’이라는 사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달라진다.

어떤 날에는 신애의 분노에 공감하고,

어떤 날에는 그녀의 믿음을 이해하며,

어떤 날에는 그저 종철의 방식처럼 곁에 머무는 것이 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아마 앞으로도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은 계속 바뀔 것이다.

그 변화 자체가, 내가 아직 이 질문들 속에 머물러 있다는 증거일 테니까.

그래서 이 영화는 내 인생 영화다.

 

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밀양' - 독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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