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미뮤엔토 1기 에디터 허시원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결말이 아쉬웠던 영화가 있으신가요?
영화의 진짜 끝은 어디일까요? 스토리가 마무리되며 상영관의 불이 켜질 때일까요, 아니면 엔딩 크레딧이 전부 올라갔을 때일까요?
작품은 그 자체로 아름다움과 감동을 선물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스크린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통째로 뒤흔들며 날카로운 비판점을 시사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예술작품을 분석하고 응시해야 하는 이유는, 그 이해의 과정 속에서 개인과 집단, 나아가 국가의 내적·외적 변화가 비로소 시작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저에게 있어 영화의 끝은 ‘그 영화가 세상에 미친 영향력’까지를 포함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소개해 드릴, 결말이 자꾸만 아쉽게 맴도는 영화는 2017년 개봉한 <아이 캔 스피크>입니다.
“나는 말할 수 있다” 민원의 왕! 나옥분 할머니


구청 직원들 사이에서 ‘도깨비 할머니’라 불리는 민원의 왕, 나옥분(나문희) 할머니.
불법 주차부터 도로 정비, 쓰레기 문제까지 불의를 보면 절대 참지 못하는 성정 탓에 매일 구청으로 출근 도장을 찍는 유명 인사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옥분 할머니의 무차별 민원에 대적할 만한 원리원칙주의 공무원 박민재(이제훈)가 나타납니다.
늘 투닥거리며 삐걱대던 관계 속에서, 옥분 할머니는 민재에게 뜻밖의 부탁을 건넵니다.
바로 영어를 가르쳐달라는 것이었죠.

시간이 흐를수록, 민재는 할머니가 쉴 새 없이 쏟아냈던 민원 뒤에 숨겨진 서글픈 사정을 이해하게 됩니다.
할머니는 그냥 영어를 배우고자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옥분이 영어를 배우려 했던 진짜 이유는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음을 세상에 직접 말하기 위해서였는데요.
“I Can Speak”
그녀는 외국의 의회에서 다른 이의 입을 빌리지 않고, 자신의 입으로 역사적인 민원을 넣게 됩니다.
아쉬운 결말 : 아이 캔 스피크 BUT…

영화는 한 인간의 용기 있는 목소리가 마침내 세상에 닿는 승리의 순간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립니다.
그러나 이 목소리가 닿은 것은 결코 작은 사건이 아닙니다.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그간 홀로 짊어져야 했던 폭력의 상흔,
먼저 떠나간 동료들의 억울함과 슬픔,
그리고 역사적으로 쌓여온 무관심과 관심 등이 모두 응축되어 쏘아 올려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왜 이 영화를 ‘아쉬운 결말’이라고 꼽았을까요?
영화 속 증언은 성공했을지언정, 현실의 위안부 피해자들은 여전히 진정한 사과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일본 정부가 여러 차례 유감과 사죄를 표명했으니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혹은 피해자가 만족할 때까지 사과해야 한다면, 그 감정을 영원히 미루며 이익을 취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아니냐는 냉소적인 시선을 던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와 일본의 역사적 담화 맥락을 짚어볼까요?
-
1995년 무라야마 담화: “아시아 국가 국민들에게 엄청난 피해와 고통을 안겨줬다.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를 표한다.”라고 밝혔으나, ‘위안부’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누락되었습니다.
-
2001년 고이즈미 총리 서한: “과거 일본군이 수많은 여성들의 명예와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일본의 총리로서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한다.”
-
2007년 4월 아베 총리는 미·일 정상 공동 기자회견에서 “위안부 여성들이 극도의 고난과 희생을 감수해야만 했던 상황에 대해 가슴 깊이 애도를 느낀다.”라며 “일본의 총리로서 그들이 그러한 상황에 처했다는 사실에 대해 사과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이처럼 여러 차례 사과를 되풀이했기에 자신들의 책무를 다했다고 주장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이 공식 문서와 외교 석상에서 집요하게 누락시키고 있는 단 하나의 진실이 있습니다.
바로 위안부의 ‘강제 동원‘ 여부입니다.
일본 정부는 자발적 참여가 주를 이뤘다는 논리를 펼치며, 이것이 국제법상 처벌이 가능한 ‘전쟁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피해자들과 일본 정부가 수십 년째 평행선을 달리는 지점이 바로 이곳입니다.
피해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국가 권력과 군대가 주도하여 조직적으로 여성의 성을 착취한 ‘전시 여성 성폭력‘,
즉 전쟁 범죄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이에 기반한 법적 사죄를 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법적 문제에 있어서도 진정한 사과를 받지 못했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후속 태도에 있습니다.
제2의 세계 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을 돌아봅시다.
현재 독일 사회는 비극을 저지른 세대가 거의 남아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국가가 저지른 전범 행위를 기억하고 반성하는 의식을 체화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독일 교육 현장에서는 나치를 연상시키는 박수나 손을 펴서 드는 행위(나치 경례)를 법적으로 엄격히 규제하고 경계하는 태도 등이 있죠.
그러나 일본은 어떤가요? 아직도 역사에 대해서는 솔직하지 못합니다.
국제 사회의 압박이 있을 때만 마지못해 고개를 숙였다가도, 돌아서면 교과서를 왜곡하고 과거를 덮어두려 합니다.
이러한 태도의 간극이 위안부 문제의 결말을 여전히 미완의 비극으로 남겨두는 이유입니다.
이제 영화를 시청하고 분석하게 된 우리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합니다.
강물의 한 장면을 캡처하듯 과거의 사과 몇 마디로 역사를 박제하려는 시도에 맞서,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진실이 잊히지 않도록 끊임없이 목소리를 보태는 것’입니다.
나옥분 할머니가 당당히 “아이 캔 스피크”를 외쳤듯, 이제는 우리가 그 배턴을 이어받아 역사의 증인이자 연대자로서 세상을 향해 말해야 할 때입니다.
그 기억의 연대가 이어지는 한, 이 영화의 결말은 결코 아쉬움으로만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미뮤엔토 에디터 허시원이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