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키키 브라더스 (2001) – 처연한 자기증명

 

감동이란 키워드는 현대에 와서 부정적인 인상이 강하다.

신파적이다 라는 표현은 감정적 과잉에 반감을 표하는 비판적인 평가를 내재한다.

해운대, 국제시장, 7번방의 선물, 신과 함께 등의 영화가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큰 흥행을 이끈 이후 신파는 일종의 흥행 공식이 되었다.

조폭 코미디가 그러하였 듯이 서사가 정형화 되었고 작품은 완성도보단 관객의 감동에만 집중하였다.

감동에 성공하고, 관객의 눈물을 뽑으면 흥행은 보장되기 때문이다.

정형화 되는 서사들 속 억지 감동 포인트들, 클리셰적인 설정들 (가령 가족 구성원을 잃는 등의) 그리고 감정적 과잉에 기반한 캐릭터 설계는 관객으로 하여금 피로감을 유발하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신파는 부정적인 단어가 되었고 사람들은 감동이란 키워드를 꺼리게 되었다.

 

그러나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감동에 대한 반감이 있는 관객들에게도 유효한 작품이기에 선정하게 되었다.

담담하게 예술가를 조망하는 이 작품은 깊은 여운과 감동을 선사한다.

 

줄거리

 

나이트클럽에서 연주하는 남성 4인조 밴드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불경기로 인해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출장 밴드를 전전한다.

팀의 리더 성우는 고교 졸업 후 한 번도 찾지 않았던 고향, 수안보의 와이키키 호텔에 일자리를 얻어 팀원들과 귀향한다.

수안보로 가던 중 색소폰 주자 현구는 밤무대 밴드 생활에 희망을 버리고 아내와 자식이 있는 부산으로 내려간다.

 

수안보에 도착한 성우는 고교시절 밴드를 하며 꿈을 나눴던 친구들과 재회한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순수했던 친구들은 어느새 생활에 찌든 생활인으로 변해있다.

약국을 하고 있는 민수는 돈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 있고, 시청 건축과에 근무하는 수철은 환경운동가가 되어있는 인기와 시위가 있을 때마다 마찰을 겪으며 불편한 관계에 놓여있다.

성우에게 음악의 지표였던 음악학원 원장은 알콜 중독에 빠져 출장밴드를 하는 폐인의 모습으로 변해있다.

성우의 첫사랑이었던 인희는 남편과 사별하고 트럭 야채 장사를 하며 억척스럽게 살고 있다.

성우는 어린 시절의 꿈과 사랑을 되새기며 이들의 변화에 서글픔을 느끼게 된다.

 

여자를 좋아하는 오르간 연주자 정석은 여전히 여자들을 꼬시며 문제를 일으킨다.

강직한 드러머 강수는 목욕탕의 때밀이 아가씨에게 연정을 느끼지만 정석만큼의 재주가 없어 데이트 한번 변변히 못하는데…

정석이 때밀이 아가씨에게 접근한 사실을 알게 된 강수는 정석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껴 큰 싸움을 벌이고, 급기야 대마초에 손을 대게 된다.

결국 강수는 밴드를 떠나고 밴드가 해체 위기에 놓이자 성우는 급하게 음악학원 원장을 팀에 합류시킨다.

그러나 여자 문제로 계속 골치를 앓는 정석과 알콜 중독이 심각한 원장과 팀을 이끌어가는 것은 성우에게 버겁기만 하다.

 

고단한 현실에서 어린 시절의 꿈 맞닥뜨린 성우에게 이제 선택이 남아있다.

계속 밤무대 밴드 생활을 계속할 것인가?

현구나 강수처럼, 또는 민수, 수철, 인기처럼 음악을 접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것인가?

-네이버 소개글

 

감독은 밴드의 침몰을 담담히 조망한다.

밴드 “와이키키 브라더스” 에게 재기의 가능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음악적 재능이 있다는 서술도, 음악에 대한 강한 열정도, 음악을 통해 성공한다는 열정조차 드러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할 수 있는 게 그것 뿐이라 악기를 잡을 뿐이다.

자신의 노래를 하지도 않는다.

반주기계가 대체하지 못한 지방 나이트에서 기계의 대체를 기다릴 뿐이다.

 

현실의 벽

성우를 제외한 밴드부들은 모두 도망친다.

고교시절의 와이키키 브라더스 구성원들은 모두 밴드를 탈퇴하고 일자리를 구했다.

수안보로 넘어온 시점에 구성원들 역시 모두 밴드를 나가게 된다.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밴드를 그만둔 것이다.

그러나 성우만은 밴드를 놓지 못한다.

유흥주점에서 옷을 모두 벗은 채 노래를 해야하는 수모 속에서도 그는 밴드를 포기하지 않는다.

 

노래

그는 왜 그러한 수모를 겪으면서도 밴드를 계속할까.

그는 진심으로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공연 외적으로 노래를 부르는 이들은 단 3명이다.

성우, 성우의 스승 그리고 성우의 첫사랑 인희.

 

인희는 마음이 답답할 때면 홀로 노래방을 찾아 노래를 부른다.

성우 역시 친구로 부터

“너, 행복하니? 너하고 싶은 음악하면서 살아서 행복하냐고. 우리 중에 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놈 너 밖에 없잖아. 행복하냐고. 진짜로 궁금해서 그래. 행복하냐?”
라는 마음을 듣고 빈 공연장에서 노래를 부른다.

그들에게 노래는 자기 표현이자 증명이다.

인희는 생존을 위해 만들어낸 억척스러운 이미지에 속에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노래를 부른다.

성우는 음악을 택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노래를 부른다.

이들은 현실의 벽 앞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증명한다.

때문에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더 깊은 감동을 준다.

그들의 처절한 자기 증명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당장면의 영구적인 장애를 얻었던 오르간 연주자의 손이 멀쩡한 것을 통해 그 노래 역시 상상에 그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꿈일지 모르는 그 증명, 그는 행복할 수 있을까?

그의 스승을 보자면 긍정적인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다.

술주정처럼 매일 같은 노래만 반복하며 흥얼거리는, 그럼에도 음악은 진심으로 사랑하는 스승의 모습은 성우의 미래를 감독이 엿보아준 것 아닐까.

 

이 영화가 신파극과 다른 점은 캐릭터의 감정적 과잉이 없기 때문이다.

밴드가 와해되고, 친구가 죽는 일련의 시련 속에서 등장인물은 담담히 현실을 받아들인다.

알몸으로 기타를 치게 되었는데도 얼굴은 담담하다.

그 담담한 표정 아래 행복을 증명해내야하는 부채감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큰 울림을 준다.

 

기태(류승범)

기태(류승범)는 극 중 주요한 인물은 아니지만 포스터의 센터를 차지한다.

음악을 동경하지만 악기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그는, 결국 나이트 DJ가 되어 성우의 자리를 빼앗는다.

성우는 그를 질투하지도 미워하지도 않고 그저 발걸음을 돌린다.

그 담담한 뒷모습이 오히려 더 쓸쓸하다.

기태는 반주기계의 연장선상에 있다.

영화 초반, 밴드는 반주기계가 자신들을 대체하지 못하는 지방 나이트를 전전한다.

그러나 결국 기계도 아닌, 악기조차 못 다루는 기태에게 자리를 내준다.

실력이 아니라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느냐가 기준이 되는 세계.

이 장면은 2001년의 이야기지만 낯설지 않다.

AI가 창작의 영역까지 침범하는 지금, 우리는 성우와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내가 쌓아온 것들이 기태 같은 무언가에 의해 대체될 때, 그래도 계속할 수 있는가.

성우는 질투 대신 새로운 형태의 꿈을 응원하며 발을 돌린다.

 

 

테세우스의 배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테세우스의 배 같다.

고교시절 부터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성우를 빼곤 전부 교체되었다.

그리고 수안보에 와서 색소폰 연주자가 먼저, 그 다음으로 드러머, 그 다음은 오르간이 각자의 이유로 밴드를 떠나게 된다.

그럼에도 와이키키 브라더스 라는 이름은 변치 않는다.

구성요소가 바뀌었는데도 우리는 그걸 와이키키 브라더스라 부를 수 있을까.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꿈을 쫓는 행위를 가진 우리 모두를 지칭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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