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 습격사건 : 다시는 볼 수 없는 코미디

내 추억의 영화는 주유소 습격 사건이다.

추억이라 칭할 만큼 본 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추억의 영화로 꼽은 이유는 2000년대 한국 영화의 패러다임인 조폭 코미디 장르의 선두주자이기 때문이다.

 

조폭코미디의 출발

2001년 조폭마누라, 두사부일체, 달마야 놀자가 연달아 히트를 치며 한국 영화계의 조폭 열풍이 불었다.

이 셋 중 특히 달마야 놀자를 가장 좋아하는데 단순 무식한 조폭 캐릭터를 불교와 훌륭하게 연결지었기 때문이다.

해당영화의 백미는 무엇보다 조폭과 스님이라는 직업 개그.

369 게임 중 40에 박수를 친 조폭을 보고 묵언 수행을 깬 스님 이라던지, 잠수 시합하는데 해병대 기수가 나온다던지 하는 개그는 매우 한국적이기에 우리 정서에 정확히 꽂힌다.

 

잠수 장면

 

이후 위 세 영화가 시리즈화 되었을 뿐만 아니라 조폭을 소재로 한 영화가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가문의 영광 시리즈는 2023년까지 이어졌으니 (흥행은 별개지만) 조폭 코미디 장르의 수명이 굉장히 질기다 볼 수 있다. 적은 제작비, 정형화된 캐릭터로 의한 정형화된 문법 그리고 흥행 보증 3박자가 어우러지며 조폭코미디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현재엔 조폭 코미디 장르는 끝없는 자기복제에 의해 사장 되었으니 조폭이란 소재는 살아남아 한국 영화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해바라기(2006), 부당거래(2010)에 이어서 황해(2010), 범죄와의 전쟁(2012), 신세계(2013), 내부자들(2015) 등 조폭을 소재로 한 한국 느와르 장르의 시초가 된 것이다.

 

 

 

당시 국민 예능이었던 무한도전에서도 조폭을 소재로한 콩트가 자주 등장했다는 점에서 조폭의 밈적 유행을 확인할 수 있다.

 

 

갱스 오브 뉴욕 특집(2009)

 

영화 갱스 오브 뉴욕를 패러디한 무한도전의 갱스 오브 뉴욕 특집(2009년), 달력특집(2013), 맞짱특집(2013)

현재에 와서도 조폭 소재는 사장되지 않았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첫 편을 제외하고 모두 천만관객을 동원하였고, 극한직업 역시 천만관객을 돌파하며 아직 조폭 영화가 건재함을 보여준다.

현대에 와서 더이상 조폭이 주인공은 아니지만, 만만한 악역으로 꾸준히 등장한다.

 

주인공이 아니기에 조폭의 서사는 더이상 관심의 대상은 아니지만 2000년대부터 쌓아올린 조폭의 서사 덕에 이해하는데 배경지식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절대악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왜 한국 영화에는 조폭이 유난히 많이 등장할까?

 

-2000년대 : 낭만주의 조폭

첫째로는 조폭의 낭만주의적 성격이다.

조직 내 의리를 중요시 하는 이들의 태도는 동경의 대상으로 작용한다.

“단순 무식하지만 의리를 중요시 하는 열혈 주인공 캐릭터”는 스테디 셀러로 대중적인 인기가 보장되어있다.

조폭은 이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갈등의 서사를 만들기도 용이하단 점에서 쉽게 활용될 수 있다.

나아가 조폭이 된 이유, 혹은 해바라기처럼 조폭을 그만둔 이후에 대한 이야기는 해당 캐릭터의 서사를 쉽게 쌓게 만들어주고 공감하기 쉬운 구조를 띈다.

2000년대 초반 조폭 코미디 장르는 이러한 기조 위에 쌓아올려졌다.

 

-2010년대 : 절대악 조폭

둘째로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절대악이기 때문이다.

범죄와의 전쟁(2012)을 기점으로 조폭은 낭만적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제 잇속만 챙기는 비열한 존재로 변화되었다.

즉 조폭의 낭만성이 거세된 것이다.

마침 범람하던 조폭 코미디에 대한 피로감이 쌓여있던 시점이기에 조폭에 대한 패러다임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이 시점에서 조폭은 절대악으로 기능할 기반을 얻는다.

“속은 착한 놈” 이란 기존의 이미지는 희화화 되는 동시에 동경의 대상이된다.

그러나 비열한 이미지로의 변혁이 일어나며 조폭은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영화 속 조폭은 더욱 폭력적이고 어두워지지만 역설적으로 조폭에 대한 이미지는 더욱 가벼워졌다.

 

2020년대 : 조연으로의 조폭

부당거래(2010), 내부자들(2015) 등에서 직업 비하 논란이 생기며 특정 직업을 부정적으로 다루는 것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한다.

청년경찰(2017)의 경우 조선족 차별 논란과 함께 상영금지 운동이 이루어졌다.

또한 혐오와 차별 조장 명목으로 소송까지 일어나기도 하였다.

악역은 필요하지만 쉽게 내새우기 힘든 상태가 되었다.

조폭은 이시점에서 만만하게 다룰 수 있는 악역이 되었다.

동시에 주연에서 조연으로 강등당하게 된다.

주연으로 범죄 동기 등을 다루게 된다면 범죄를 미화활 우려가 생기기 때문이다.

때문에 주연은 경찰이, 조연은 조폭이 담당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게되었다.

동시에 조직의 개념 역시 약화되었다.

CCTV 확대 등 대한민국의 치안이 강화됨에 따라 조직적인 범죄조직을 사회에서 마주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전통의 조직폭력배 대신 양아치, 건달, 일진 등으로 변주되었다.

그러나 그들을 표면에 내새울 뿐 배후에 조직이 있다는 식으로 조직 폭력배는 한국 영화계에 잔류했있다.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극중 조폭의 위치와 역할은 변화하였다.

그러나 극한직업, 범죄도시 시리즈의 영화가 천만관객을 동원함을 통해 조폭이란 소재가 건재함을 보여준다.

 

 

 

주유소 습격 사건

 

주유소 습격 사건은 이러한 조폭 코미디의 원로 격으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줄거리

줄거리는 간단하다.

심심풀이로 주유소를 털던 양아치 4인방.

주유소를 털었지만 돈이 없자 주유소에서 일을 해 돈을 벌어가며 발생하는 좌충우돌을 다룬다.

일을 한다기 보단 손님들에게 기름을 가득 채우고 돈을 전부 받아가는 범죄이긴 하지만 말이다.

양아치 4인방을 주인공으로 한 피카레스크극으로 사실 그냥 범죄 코미디극이다.

다 때려부수고, 욕하고 소리지르고.

납치한 여성과 가위바위보 옷 벗기 게임을 하는 장면은 지금도 충격적이다.

 

왜 주유소 습격 사건인가

범죄도시 시리즈가 4편까지 제작된 시점에서 염증을 느끼고 있다.

악인은 처벌 받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사법에 대한 불만족도 이러한 기조에 일조했다 생각한다.

때문에 마동석이 등장하여 범죄자 얼굴의 안와골절 정도는 입혀줄 때 만족할 수 있는.

범죄 미화는 죄악시 되기에 악인의 서사는 상대적으로 빈약해지는.

정의를 지키는 언더독의 반란 같은 클리셰가 물리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범죄를 다루는 방식, 폭력성, 범죄의 대상, 범죄자의 설정 등이 전부 조심스러워졌다.

이러한 분위기를 속박의 형태라 느끼게 된다.

이 시점에서 주유소 습격 사건은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준다.

“심심한데 주유소나 털까” 하는 양아치 4인방이 주인공이기에 도덕적 판단이 들어갈 여지조차 주지 않는다.

불쾌한 골짜기를 넘어 대유쾌 마운틴에 도달해버린 것이다.

인질에게 심심하니 맞짱이나 뜨라니 말이다.

범죄 대상의 사회적 지위, 직업 심지어 패싸움 시 쪽수 조차도 신경 쓰지 않는 평등한 모습은,

현대에 조심스럽게 유지하려는 정치적 올바름에 보다 가까워 보일 정도이다.

현대의 영화가 조약돌로 조심스럽게 돌탑 쌓는다면,

주유소 습격 사건은 고인돌 수준의 거대한 바위를 세우고는 “이건 탑이야” 라고 말한달까.

심지어 살짝 설득된다

피카레스크 극인 만큼 양아치들의 과거가 조금씩 등장한다.

그러나 이 영화의 매력은 잘 쓰인 피카레스크 극이라는 점.

주인공들의 과거는 그들의 역린에 대한 이유를 설명할 뿐 범죄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정신나간 범죄 행위에 약간의 개연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최소한으로 사용된다.

범죄의 무맥락성 때문일까, 오히려 그들의 과거가 궁금해 질 정도로 흡입력이 강하다.

 

추억의 요소

99년 작인만큼 영화 곳곳에 향수를 자극시키는 요소가 배치되어있다.

“여기 주유소는 무슨 가득인데 휴지도 안줘!”

라는 대사라던지, 김수로 배우가 철가방을 들고 배달하는 모습이라던지 하는 장면들은 자연스래 추억을 자극한다.

무엇보다 향수를 자극하는 것은 당시의 분위기이다.

IMF와 세기말이라는 혼란 속 자유로운 분위기 말이다.

그들의 범죄는 이러한 시대상 아래 자유로움을 너머 통쾌함까지 선사한다.

배우진 역시 인상적이다.

주연이었던 유지태, 이성재 배우를 비롯하여 조연으로 등장한 유해진, 김수로 등의 젊은 시절을 마주할 수 있다.

배우진들의 세대 교체가 일어나던 시점이기에 데뷔초 풋풋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추천 대상

맥락 없는 범죄 코미디 극인만큼 내려놓을 준비가 된 이들에게 추천한다.

킬링타임의 관점으로 접근했을 때 만족도가 더 높을 것이라 예상한다.

90년대 배경이기에 작금의 시대와는 동떨어져있다.

때문에 과몰입을 피할 수 있으며 더욱 가볍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여유가 줄어들고 있다.

더이상 범죄자들에게 선처를 원하는 이는 없으며 “사람 고쳐쓰는거 아니다” 라는 말은 당연시 여겨진다.

논란을 일으킨 유명인들의 사과는 매장 시켜달라고 삽을 건네주는 격으로 용서가 사라지고 있다.

이 영화의 용서 따위 구하지 않을 양아치 4인방의 무맥락 범죄가 주는 카타르시스를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나쁘지만 멋있는 놈”이라는 추억의 캐릭터를 거부감 없이 느끼기 가장 좋은 영화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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