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민트 – 베를린에서의 진일보

휴민트는 베를린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류승완 감독의 14번째 장편 영화다.

왕과 사는 남자에게 압도적으로 밀려 흥행에 실패하였긴 하지만 흥행과 별개로 영화는 수작이라 생각된다.

 

베를린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기에 류승범은 출연하지 못하였다. (아무래도 죽었으니)

 

 

 

추천 대상

베를린을 재밌게 본 이.

하드보일드 액션을 좋아하는 이.

류승완식 아픈 액션을 좋아하는 이.

 

비추천 대상

주인공은 왜 이렇게 총을 잘 쏘고 악역은 왜 이렇게 총을 잘 맞을까?

같은 의문을 품는 현실주의자.

주인공이 권총이 아니라 기관총을 들고 악역을 시원하게 쓸어주길 원하는 중화기 중독자.

 

 

줄거리

[동남아에서 벌어진 국제 범죄를 추적하던 국정원 블랙 요원, 조 과장(조인성)은

자신의 휴민트 작전에서 희생된 정보원이 남긴 단서를 쫓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한다.

그곳에서 북한 식당 종업원 채선화(신세경)와 접촉한 조 과장은 새로운 휴민트 작전의 정보원으로 그녀를 선택한다.

한편, 국경 지역에서 발생한 실종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로 파견된 보위성 조장 박건(박정민)은

해당 사건의 배후에 북한 총영사 황치성(박해준)이 연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서로 다른 목적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충돌하게 된 사람들.

짙어지는 의심과 불확실한 진실, 각자의 선택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향하는데…

 

 

총평

전체적으로 무거운 분위기와 빠른 액션 전개를 통해 높은 흡입력을 유지하는 하드보일드 액션 영화다.

전작과 스토리적으로 직접 연결되는 지점은 거의 없기 때문에 두 작품은 사실상 별개의 영화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는 전작을 보지 않은 관객에게 진입장벽을 낮춰주는 요소로 기능한다. 연결점이라면 전작의 주인공이 향했던 블라디보스토크를 이번 작품의 주요 배경으로 삼았다는 정도. 전작 사건에 대한 간단한 언급 될 뿐 이야기 진행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따라서 후속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그러나 이야기의 동력과 전개 방식이 유사하면서도 보다 직관적으로 정리되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개선점 – 자막

전작에서 비판받았던 대사 전달 문제는 자막 사용을 통해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 특히 북한 인물의 대사에 전면적으로 자막을 삽입함으로써 정보 전달의 명확성이 강화되었다.

지명을 소개하는 방식 또한 자막을 통해 이루어졌다.

장면 전환 후 장소에 대한 설명을 자막으로 대체한 것.

다찌마와 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떠올리게 하는 방식이다.

차이라면 다찌마와 리에선 아무리 봐도 한강 다리, 심지어 같은 장소인데 두만강, 압록강, 흑룡강으로 세번이나 활용하는 것.

가끔은 류승완의 뻔뻔한 B급 감성이 그리워진다.

물론 휴민트에선 자막을 보다 세련되게 하단에 작게 적어두었다.

 

 

개선점 – 액션

전작에서의 비판점 중 하나는 저퀄리티의 폭발 CG였다. 무거운 분위기와 세련된 대인 액션씬과 대비되어 아쉬움을 남겼던 장면.

이를 의식한 듯 폭발 중심의 액션 시퀀스는 사라졌고, 대신 섬광탄이나 자동차 상향등 등 빛을 활용한 액션 연출이 적극적으로 사용하였다. CG 부담도 없을 뿐 아니라 빠른 전개 방식과 어울리는 효과적인 연출이라 생각된다.

 

비판점 – 자막

자막 사용은 사건의 흐름을 관객이 명확히 인지하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효과적이었다. 전작에서는 복잡한 설정과 배신 관계, 흑막의 존재 등이 대부분 대사를 통해 설명되었고 여기에 전달력 문제까지 겹치며 관객에게 피로감을 유발했다. 이번 작품은 이러한 비판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대사와 지명은 자막을 통해 전달했다. 또한 플롯에서 조직과 배경 등의 비중이 낮아졌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플롯 자체가 얄팍해졌다는 인상을 남겼다. 자막을 통해 관객의 이해 속도는 빨라졌는데 이해할 내용이 사라진 것. 결과적으로 대사 전달력은 강화되었지만, 정작 대사의 필요성은 줄어드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또한 북한 인물의 대사에 지속적으로 자막이 등장하면서 남한 인물과 북한 인물을 물리적으로 분리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남북 관계를 다룬 영화는 이념적 차이를 넘어 유대감을 형성하고 결과적으로 연대하며 완성된다. 그러나 이번 작품의 자막 연출은 오히려 두 집단의 차이를 강조하게 되어 유대되는 인상이 약해졌다.

 

 

공통점

전작과 이번 작품 모두 여성 인물이 북한 남성 주인공의 반역 동기로 기능한다. 이러한 설정은 기존의 스토리를 답보한단 비판을 받는다.

동시에 두 여성 캐릭터 모두 이야기 전개를 위한 도구적 존재로 소비되었다는 지적 역시 존재한다.

 

차이점

이번 작품은 등장인물의 인간적 서사에 보다 집중한다. 전작에서 행동의 동기가 정치적 맥락에 가까웠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개인적 감정과 선택이 보다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한다. 제목에 담긴 ‘Human’의 강조 역시 이러한 방향성과 연결된다.

영화가 제시하는 범죄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대치동 청소년 마약 사건, 둘째는 탈북민 인신매매다.

전자는 북한 마약 브로커가 한국에 마약을 유통한다는 의혹이며, 후자는 탈북 브로커가 여성 탈북민을 러시아 마피아에게 넘겨 인신매매가 이루어진다는 설정이다.

그러나 서사 비중은 사실상 1:9에 가깝다. 마약 사건은 영화 초반에 등장할 뿐 이후 이야기의 중심은 인신매매 문제로 이동한다. 전자의 서사는 주인공에게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로 기능한다. 즉 이 영화는 첩보 영화라기보다 첩보 활동을 수행하는 인간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액션

류승완 감독의 액션에 대한 애정은 익히 알려져 있다. 특히 그의 액션은 ‘통쾌함’보다는 아파보이는 액션의 특성을 지닌다. 계단에서 구르거나 추락하는 장면처럼 공감할만한 고통의 상황을 조성한다.

전작에서는 목에 스테이플러를 꽂는 장면 같은 충격적 연출이 등장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콧구멍에 펜을 넣고 딸깍거리는 장면으로 생활친화적 액션(?)의 계보가 이어진다. 다만 이번 볼펜 씬은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져 몰입을 방해하는 측면도 있다. 물론 시각적으로 ‘정말 아파 보인다’는 효과는 여전히 유효하다.

초기 작품에서 즐겨 사용하던 와이어 기반 공중 회전 액션은 하드보일드 장르로 전환하면서 점차 줄어들었지만, 회전에 대한 연출적 욕심은 다른 방식으로 남아 있다. 자동차 드리프트를 통해 수평 회전을 구현하며 총격전으로 연결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는 인물의 수직적 회전에서 물체의 수평적 회전으로 액션 언어가 변주된 사례로 볼 수 있다. 액션에 대한 감독의 애정과 동시에 고민의 흔적이 드러나는 인상적인 시퀀스다.

 

수동적 여성 캐릭터 논쟁

전작에서 여성 캐릭터가 지나치게 수동적이라는 비판이 존재했다. 특히 남성 주인공의 전향을 위한 서사적 수단으로 기능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이번 작품에서도 유사한 구조가 반복된다.

다만 두 캐릭터를 동일 선상에 놓는 것은 과도한 평가일 수 있다. 이번 작품의 여성 인물은 첫사랑이라는 감정적 동기와 암 투병 중인 어머니라는 현실적 속박을 동시에 지니며 보다 입체적인 갈등 구조를 형성한다. 거기에 더해 인신매매 경매장에서 갇혀있는 동료들을 구하고, 리볼버를 훔쳐 러시아 마피아의 머리를 조각내는 장면은 충분히 주체적인 캐릭터로 구성했다 생각한다. 물론 이보다 더 능동적인 역할을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드보일드 장르의 특성상 여성 주연을 전면에 세우는 선택은 제작자 입장에서 부담이 될 수 있다. 극단적 폭력 상황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관객의 정서적 불편함을 유발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성 주인공 얼굴에 주먹이 꽂히는 것과 여성 주인공 얼굴에 주먹이 꽂히는 것. 후자는 제 4의 벽을 넘어 불쾌함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

 

인간 중심

베를린의 경우 사회적 부조리를 강하게 담고 있다. 김정일 사망 이후 이루어진 북한 내 권력 다툼. 남한 쪽으로의 전향 의사를 밝혔지만 시베리아 횡단열차 사업을 위해 북에 넘겨질 위기에 처한 하정우 등을 통해 부조리한 사회 속 개인의 투쟁이 내용의 중심이다.

반면 휴민트의 경우 사회적 부조리가 다소 약해졌다. 인신매매라는 흉악범죄가 소재로 등장하긴 하나 구조적 부조리가 인물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지 않는 모습. 대신 인간적인 갈등, 감정에 집중한 모양새다. 이러한 부분에 집중하면 김성훈 평론가의 “첩보 스릴러 ‘멜로’ 수작” 이란 평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상 깊었던 장면.

경매장이라 불리는 곳에는 러시아 마피아에게 팔린 북한 여성들이 전시되어 있다. 살아있는 채로 유리로 된 사각형 유리 케이스에 담겨 있는 것. 이러한 모습은 북한 여성들의 인권이 유린되는 모습을 효과적으로 전달했다고 생각한다. 해당 유리의 소재가 방탄이라는 특성을 활용하여 방패로 사용되는 모습은 비참한 상태를 더욱 강조했다. 맨발에 하얀색 원피스만 입고 있는 여성들로 엄폐하며 이루어지는 총격전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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