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 – OTT시대 돌파구

2025년 천만 영화의 부재와 함께 한국 영화산업 위기론이 등장하였다.

그러나 “왕과 사는 남자”는 이 사실을 비웃듯 왕과 사는 남자는 1500만 관객을 동원하였다.

심지어 역대 한국 영화 매출액 1위까지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는 단종을 활 줄로 교살한 통인, 단종의 시신을 회수해 장사를 지내준 엄흥도를 합쳐 재해석한 팩션 사극이다.

계유정난 이후 유배당한 단종을 다룬다는 점, 단종의 시점에서 단종 복위 운동을 묘사한다는 점 등에서 기존 매체에서 다루던 계유정난과 차이를 보인다.

악역으로 세조가 아닌 한명회를 사용한다는 점 또한 차별된다.

 

(감독은 이정재 배우를 카메오 출연시켜 세조의 모습을 보여주려 생각했으나, 역할이 아닌 배우가 보일 것 같아 포기하였다고 한다.)

왕과 사는 남자는 1500만 관객이란 대기록을 세우며 흥행에 성공하였지만 다양한 비판 역시 받고 있다.

 

 

톤앤매너

영화 초반, 극의 분위기가 너무 상반되어 몰입을 저해했다는 비판이 많다.

(해당 이미지를 위해 15kg을 감량했다 한다)

 

자신을 따르던 신하들이 고문당해 죽고, 유배당하는 단종.

그에 대한 서사를 풀어가며 관객은 영화에 진지하게 몰입하기 시작한다.

단종 역을 맡은 박지훈 배우의 열연과 함께 잡힌 무거운 분위기 이후 등장한 장면은 엄흥도 역을 맡은 유해진 배우의 노루잡기 장면이다.

극의 분위기가 너무 낮아지길 원하지 않았을 탓일까.

 

(같은 작품인지 의심되는 캐릭터 간의 낙차)(해당 이미지는 영화 내 장면은 아니다, 그러나 극중 분위기는 비슷하다)

 

감독은 막동아재 (이준혁 분)를 통해 갑자기 개그를 시작한다.

활시위를 놓기 직전 유해진을 놀라게 하며며 방해하는 것이 그것.

개그의 퀄리티 문제를 떠나 분위기의 낙차가 너무 커서 당황스러웠다.

이후 노루골 촌장 역을 맡은 안재홍 배우와 함께 단종이 광천골로 오게 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이 과정 역시 안재홍 배우의 코믹한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살리며 코믹하게 진행된다.

한명회가 있는 것을 모르고 관아에서 유배지 쟁탈권을 가지고 싸우는 장면에서 극의 분위기의 가벼움은 절정에 달한다.

개그 씬에 시간 소모를 많이 한 만큼 극의 분위기는 매우 가벼워졌고, 유배지의 단종이 도착했을 때는 단종의 존재가 어색할 지경이었다.

유해진 주연의 시트콤을 속에서 혼자 정극의 태도를 취하니 말이다.

 

 

스테레오 타입 의존성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만큼 관객은 어떤 사건이 이뤄질지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

때문에 개연성을 부여하지 않아도 거부감 없이 다음에 일어날 사건에 몰입할 수 있다.

왕사남은 고정관념을 활용해 한발 더 나아간다.

“마을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순박해 왕을 환영할 것이야.”

“단종은 선왕이니 당연히 백성을 지킬 것이야.”

같은 고정관념으로 당위성을 부여한다.

행동 동기를 고정관념으로 대체하자 캐릭터의 입체성이 사라졌다.

대신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감정에 대한 몰입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몰입을 유도했다.

때문에 영화가 끝나고 남은 감상은

“유해진 연기 잘한다.”

“유지태 연기 잘한다.”

“박지훈 연기 잘한다.”

같은 배우의 연기에 대한 칭찬뿐이다.

 

네이버 평점 공감순 상위 항목

 

가장 큰 문제는 단종의 각성 역시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마치 2000년대 순정 만화의 “나한테 이런건 네가 처음이야” 처럼 자신에게 막말을 한 유해진을 보고 각성해 호랑이를 쏴죽인다.

이후 단종이 마을 사람 한명 한명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선왕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모습은 지나치게 편리해 보인다.

 

 

유해진으로 대표되는 캐릭터 의존성

 

유해진 배우는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한다.

그의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는 극의 동력으로 작동하였다.

결말에 이르러서 폭발한 그의 연기력은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며 영화를 완성시켰다.

하지만 영화가 그에게 의존한다는 점이 한계로 작동한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유해진 배우가 연기한 “엄흥도”라는 캐릭터가 아닌 배우 유해진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배우의 코믹한 이미지를 그대로 사용하였기에 배우와 극 중 캐릭터가 분리되지 않게 되었다.

 

 

호랑이 CG

(나무 위에서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는 호랑이)

 

호랑이 CG는 왕사남에서 가장 화제가 된 부분이다.

호랑이가 얼마나 부자연스러운지 확인하고자 한 것이 관람 동기가 될 정도로 이슈가 되었다.

제작진 역시 이를 인지하고 천만 감사 인사에 머리를 긁적이는 호랑이를 등장시켰다.

의의로 호랑이는 영화 관람을 방해하지 않았다.

관람 전부터 관련 이야기를 너무 많이 접한 탓일까, 저 호랑이가 그 저퀄 호랑이구나 싶었다.

영화의 톤앤매너가 제맘대로라 호랑이 정도는 신경도 안쓰이지 않았을까 싶다.

 

장점 – 쉬운 영화

배우 및 고정관념에 의존한 서사의 진행은 영화의 완성도 측면에선 단점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대중 영화이기에 이러한 단점은 동시에 장점으로 작용한다.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직관적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비유 역시 직관적이다.

화살을 피해 도망 다니던 노루와 화살에 맞서 싸운 호랑이는 직관적으로 단종을 떠올리게 해주며 성장을 알린다.

호랑이를 잡고, 재기를 꿈꾸게 만들었던 도구인 활로 목 졸려 죽는 결말 역시 수미상관의 구조를 적극적으로 따른다.

 

우려

영화 산업이 침체되었다? 왕사남을 봐라, 좋은 영화를 만들면 흥행에 성공하지 않느냐?

라는 식의 평가 또한 다수 존재한다.

그러나 좋은 영화의 개념이 무엇일까.

적어도 왕사남은 좋은 영화는 아니라 생각한다.

배우에 의존해 대중적으로 성공한 영화일 뿐이다.

왕사남은 감동, 코미디를 섞어 명절에 개봉하는 흥행 공식이 건재함을 알렸다.

천만 관객을 달성한 시리즈인 범죄도시 역시 마동석이란 캐릭터성에 의존한다.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가 약 300만 관객 동원에 그친 것, 이창동 감독의 차기작 “가능한 사랑”이 투자사를 구하지 못해 넷플릭스 개봉을 택한 것 등을 떠올려보자.

좋은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닌 쉽고 재밌는 영화를 때맞춰 만들어내는 것이 옳은 방향일까?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2025년 박스오피스 상위 10개 항목

 

2025년 국내 박스오피스를 분석해 보자.

F1을 제외하면 상위 7개의 영화는 기존 IP를 활용한 영화이다.

또한 귀멸의 칼날, F1, 아바타, 체인소맨, 미션 임파서블의 경우 영화관에서의 체험이 강조되는 작품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9, 10위에 위치한 미키17과 어쩔수가없다의 경우 봉준호와 박찬욱 이란 감독의 이름값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이를 종합하면 신규 IP를 가진 작품이나 신인 감독, 극장에서의 경험이 강조되지 않는 저예산 영화들이 진입하기 어려운 구조임을 알 수 있다.

왕사남의 히트는 이러한 기조 속에서 기존의 흥행공식이 건재함을 알렸고, 투자자들은 실험적인 작품 대신 공식을 따르는 영화를 선호하게 될 것이라 예측할 수 있다.

대중문화의 힘은 약화되고 있다.

모두가 공유하는 문화 코드 대신 개인화되고 파편화된 취향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취향이 분화되는 과정에서 영화계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왕사남은 OTT시대 속 돌파구를 보여준다.

역사적 소재와 같은 전 국민이 공감할 만한 코드.

국민적인 캐릭터를 가진 배우.

배우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마케팅.

명절 대목 가족 영화.

그러나 이러한 방안은 장기적으로 영화계에 발전을 저해할 우려가 남긴다.

결국 왕사남의 성공은 하나의 가능성이자 동시에 경고로 읽힌다.

분명 이 영화는 OTT 시대 속에서도 극장이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 증명해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영화 산업의 ‘정답’이 되어버리는 순간, 다양성과 실험성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작가주의 작품이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새로운 시도들이 투자 단계에서부터 배제된다면, 산업은 단기적 흥행과 맞바꾼 장기적 침체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흥행 공식은 언제나 존재해왔지만, 그것만으로 산업이 유지된 적은 없다.

중요한 것은 ‘쉬운 영화’와 ‘좋은 영화’가 공존할 수 있는 생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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