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과거를 바꿔보겠다는 오만, 되풀이되는 후회 : 나쁜엄마, 라이프온마스

후회는 삶의 일부다.
우리는 ‘그때의 내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당시의 내가 이렇게 행동했었더라면’ 하고
스스로를 과거 어느 지점에 묶어 두곤 한다.

이미 지나간 시간임을 알면서도, 그 순간을 몇 번이고 되짚어보게 만드는 감정, 후회.
그 비굴한 감정은 생각보다 우리 마음에 크게 들어차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상상한다.
이미 지나간 시간에 다시 닿을 수 있는 방법을.

시간을 되돌려 그때를 다시 살아보거나,
현재의 내가 과거와 연결되거나,
과거라는 낯선 시간 속에 홀로 떨어지는 방식으로.

그리고 여기,
선물처럼, 기적처럼,
그리고 지옥처럼,
과거와 만나버린 이들의 이야기가 있다.

드라마 <나쁜엄마>와 <라이프 온 마스>.

각각의 방식으로 과거를 대면한 이들의
다시 한번 살아보는 삶.
그 시간은
이들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을까.

 

 

나쁜 엄마, 한 번 더 나쁜 엄마


최강호. 서울 중앙지검의 검사.

그가 태어나기 전 억울하게 죽은 부친과
그 죽음을 가슴에 채 묻지도 못한 모친 진영순.

때문에 최강호는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아버지로부터
앞날에 대한 결정권 없는 삶을 물려받았다.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줄 판검사가 되는 것.
그것만이 이미 죽은 아버지로부터,
그리고 아버지를 아직 떠나보내지 못한 어머니로부터
허락받은 단 하나의 길이었다.

영순이 7살 어린 아이를 체벌하면서까지 한자 공부에 열을 올린 것은
판검사가 되기 위해서는 한자를 알아야 한다는 이유였고,

“배 부르면 잠 와. 잠 오면 공부 못 해.”
성장기 아이를 항상 배곯게 한 마법의 주문은
최강호를 항상 무언가에 굶주리게 만들었다.

학업에서도 늘 최상위 성적을 놓치지 않는 아이가
그림에 재능을 보이면 전국 대회에서 상을 타 오기라도 하면
영순은 학업에 방해되는 관심사를 모조리 죽이려 들었다.

그림을 찢고 그림 도구에 불을 지르고
야구 경기를 보는 아이를 못마땅히 여겨 TV를 부숴버렸다.

최강호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
배부른 한 끼, 취미, 여가, 그리고 사랑.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올곧음을 믿고 버티다가 꺾여버리는 것.

영순은 강호를 전교 1등 수석으로 만들고 싶었던 게 아니다.
그저 판검사가 되어, 아버지의 억울함을 밝혀주는 것.
그리고 남들이 무시하지 못하는 지위를 얻어 떵떵거리고 사는 것.

그러기 위해선
올곧음을 믿고 부정에 흥분하는 최강호를 우선적으로 꺾어야 했다.

부모 백 가진 동기에게 수석 자리를 빼앗기고 모욕을 들어도, 사과는 최강호의 몫이었다.
영순은 대단한 집안의 미움을 사
아들이 판검사가 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피해,
판검사라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도 방법도 가리지 않는 비겁한 속물이 되도록
정의를 두른 최강호를 먼저 선수 쳐 꺾었다.

 

 

나쁜 엄마를 사랑한 나쁜 아들


검사가 된 최강호는
오랜 연인도, 홀로 저를 키워준 모친 영순도, 등지고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대학 시절 내내 함께 지내던 연인과는 헤어졌고,
반찬을 싸 들고 찾아온 영순은 집에 들이지도 않고 돌려보냈다.

나쁜 엄마 밑에서 자란 나쁜 아들은
결국 돈과 권력을 비호하는 나쁜 검사가 되어
억울한 누명으로 옥살이하는 이들을 생산해 냈다.

대단한 집안의 딸을 홀려 결혼을 결심하고
그게 걸맞는 집안의 아들이 되고자
자신의 모친을 찾아가 ‘입양 동의서’를 건넸다.

‘지금껏 저를 키워준 송회장의 양자로 들어가겠다.’는 통보는

오랜 기간 나쁜엄마에게 상처받고 자라온 아들이
자기 삶을 개척하는 나쁜 아들로서 그간의 상처를 고스란히 돌려주는 순간이었다.

나쁜 엄마에게. 나쁜 아들이.

 

그리고 그 순간의 끝에서 사고가 났고,
최강호는 당분간 7살의 기억과 지능만을 가진 채
다시 나쁜 엄마의 앞에 놓였다.

그 순간은 나쁜엄마 영순에게 지옥 같은 기다림인 동시에
나쁜 엄마에서 좋은 엄마로 탈바꿈할 기회가 되었다.

어릴 적에 못 해준 만큼, 영순은 강호에게 많이 먹이고 많이 웃게 해 주려 들지만,

“배 부르면 잠 와. 잠 오면 공부 못 해.”

한 번 새겨진 주문은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영순은 이제 나쁜 엄마인 자신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랜 기간 홀로 아이를 키우며 얻은 몸과 마음의 상처가
앞으로의 영순의 삶을 길게 허락하지 않았다.

자신이 떠난 다음 홀로 남겨질 일곱 살의 아들을 위해
영순은 다시 한번 혹독한 나쁜 엄마의 가면을 쓴다.

영순은 걷지 못하는 아들을 일부러 계곡에 빠뜨리며
스스로 일어나는 법을 가르쳤고,
겨우 일곱 살에게 계좌 정리를 비롯한 홀로서기 방법을 숙지시켰다.
그리고 자신의 장례에 상주로 설 아들에게
장례 예절을 알려주고 매일 밤 시뮬레이션했다.

그러다 발견한
최강호의 오랜 일기.

어머니.

공소시효가 끝나버린 아버지의 사건으로는 더이상
그들과 싸울 수 없습니다.
아니 어쩌면 아버지의 사건은 처음부터 제게
큰 의미가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진짜 복수하고 싶었던 건
그들로 인해 철저히 망가져버린 어머니의 삶.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에게 평생을
나쁜 엄마로 살아야 했을 그 아픔입니다.

나쁜 엄마의 가면을 쓴 영순이
제가 잠든 뒤에야 가면을 벗고 회초리질로 터진 저의 다리에 연고를 발라주었다는 사실을,
자신이 책상을 떠난 새벽에야 그 책상에 앉아 낮에 찢어버린 그림을 다시 풀칠해 붙였다는 사실을,
그 그림을 한참 바라보았다는 사실을,
사실은 알고 있었던 아들의 나쁜 아들 가면이 벗겨진다.

 

 

과거의 가면을 벗고 마주보기


최강호가 몸만 큰 일곱 살 어린 아이로 돌아간 시간은
최강호에게, 그리고 진영순에게,
가면을 쓰고서야 서로를 마주할 수 있었던 과거를
비로소 맨얼굴로 다시 살게 했다.

진심을 숨긴 채 쌓아온 후회를
이제야 내려놓을 수 있게 된 시간.

그렇다면, <라이프 온 마스>의 과거는 어떤 방식으로 후회라는 감정을 풀어갈까.

 

 

88년, 상식 밖의 외계 도시, 화성


올곧아서 외로운 실력파 형사. 한태주.

내부고발자로 찍혀 좌천당한 곳이 과학수사대 팀장직인,
얄미울지언정 부정 못 할 실력의 소유자.

영전을 위해 연쇄살인 사건을 집요하게 좇아 범인을 잡는 데 성공했으나
한 치의 미심쩍은 증거도 눈감아주지 못해
중요한 재판에서 결국 증거의 효력에 의문을 제기하고 범인을 세상에 풀어주는 데 일조해 버린.

억울한 좌천을 덮을 영전보다도
올바른 절차로 진실에 닿는 것을 중요시하는 인물.
그것이 한태주다.

하지만 그가 그의 올곧음을 끝까지 지켜낸 선택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릴 줄 알았다면,

재판장에서의 한태주는 다른 선택을 했을까.

 

그가 올바른 절차로,
한 치의 미심쩍은 점 없이 범인을 잡을 다음을 기약하는 동안
그와 함께 일하던 그의 전 연인이 그 범인에게 납치당했고,

 

그를 좇는 과정에서 한태주는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

 

기적처럼 살아 주차해 둔 차에 다다랐을 때,
한태주가 본 것은 켜둔 적 없는 라디오의 지지직거리는 전파음과
198.8 채널.

 

그리고 그 순간 한태주를 치고 달아난 낡은 차량 한 대.
번호판 19가 88 …

 

잊었던 기억을 따라 서서히 눈을 감았다 떴을 때
한태주가 마주한 세상은

 

1988년.
그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시간, 화성이었다.

 

 

화성인 바이러스


무죄추정의 원칙도,
미란다 원칙도,
과학수사도,
용의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면 안된다는 일말의 상식도 없는 세계에
한태주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적응해 가는 동안,
몇 번이고 그를 불러세운 목소리.

한태주 씨. 정신 차리세요. 제 말이 들리세요? 눈 좀 떠봐요.

지금 네가 살아 숨 쉬고 있다고 믿는 곳은 거짓이고
너는 지금 이곳에서 눈을 뜨지 못한 채 긴 잠에 빠져있다고 알리는 목소리.

현실로 돌아갈 유일한 실마리처럼 느껴지던 그 목소리가 점점 거슬리기 시작했을 때,
한태주는 자신이 이 화성에 동화되고 있음을 깨달았을까?

그는 88년의 화성에서
젊은 시절의 고모를 범죄로부터 구해냈고,
외국에서 일하다 돌아가셨다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목격했으며
남편을 잃은 자신의 어머니를 위로하고
어린 자신을 만나 안아주었다.

그리고,
함께 웃고 함께 식사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2018년의 한태주에게는 허락되지 않던 일.

그리고 어느 순간,
그가 원치 않는 방식으로 2018년의 병실에서 눈을 떴을 때,
그는 알게 된다.

자신이 타의로 88년을 떠나버린 그 순간에,
그곳에 남아있던 팀원들은 모두 그날 자신이 사라진 현장에서 사망했다는 것을.

이제 한태주에게는
자신을 깨우는 의사의 집요한 목소리가 아닌,
그날 자신을 부르짖으며 죽어갔을 팀원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마냥 이성적이기만 한 자신에게
감정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이들의 죽음.

한태주는 그 죽음을 막기 위해서는 자신이 88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자신이 다녀온 1988의 화성이
진실인지, 꿈인지, 확실치 않지만,

한태주는 자신의 심장이 더 세게 뛰는 세계를 향해서
투신한다.

 

 

남겨진 이들, 죽음과 삶의 경계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한태주는
과연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가.

2018년의 그는
총에 맞은 순간부터 죽어가고 있었던 것일까,
차에 치인 그 순간이 경계였을까,
아니면 여전히 깨어나지 못한 채 긴 잠에 빠져 머물고 있는 것일까.

혹은 그 모든 가능성을 넘어
정말 1988년의 화성에 도달해 버린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2018년에 남겨진 사람들과
1988년에서 기다린 사람들을 본다.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같은 한 사람을 만나 관계 맺고, 또 잃으며
몇 달의 시간을 지나온 이들.

그 사이에서 한태주는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의 시간을 모두 끌어안은 채,
여전히 그 경계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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