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폐허 속 피어난 연대, 〈벌새〉

누구나 저마다의 재료로 세상을 구축한다. 대학생의 세상이 학업과 진로탐색으로, 직장인의 세상이 일터와 휴식의 반복으로 채워진다면, 1994년을 사는 15살 중학생의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그맘때 아이들의 세상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집 안팎에서 마주하는 관계의 실타래들이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성장의 뼈대를 세우기 때문이다. 영화 <벌새>는 90년대 여성청소년의 성장 과정을 아주 세밀한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2019년에 개봉한 김보라 감독의 장편 데뷔작 <벌새>는 많은 영화제에서 상을 거머쥐며 한국 독립영화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벌새>는 성수대교가 붕괴되었던 1994년, 중학생 은희에게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사이에서 아이의 성장을 그리고 있는 영화다. 주인공 은희의 세상은 크게 두 개로 나뉘어 진다. 집 안에서, 그리고 집 밖에서.

 

 

집 안에서

주인공 은희는 대치동에서 떡집 장사를 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거주지는 대치동이지만 그 속에서도 계급은 존재하는 법. 은희의 위치는 그렇게 높지 않다. 학구열이 높은 동네인만큼 부모님의 기대도 남다르다. 하지만, 은희는 공부에 흥미도 없고 무엇이 되고 싶은지도 아직 잘 모르는 고작 15살 어린아이일 뿐이다. 은희에게 큰 관심은 없지만 그렇다고 아예 방치하는 것도 아닌 부모님, 걸핏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작은오빠 대훈, 자기와 함께 자는 방에 남자친구를 데려오는 비행소녀 큰언니 수희 사이에서 불편한 기색 하나 못 내비치는 막내딸 은희는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을 혼자 삭히며 살아간다.

 

영화에서 집이라는 특수한 공간은 은희에게 불편한 곳으로 묘사된다. 육체적 폭력이 방치되는 집안에서 은희는 대체로 온순한 태도로 크게 반항하지 않는데 이런 태도는 자기 방어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인간은 대체로 불합리한 상황에 놓여도 그 상황을 뒤엎을만한 힘을 갖지 못했을 때, 차라리 불평등함에 적응하면서 내면의 분노를 어떻게든 멀리 떨어뜨리고 일상에 통제감을 얻으려 한다. 너무 어릴 때부터 이런 상황에 익숙해졌던 걸까, 15살 은희는 그 나이 또래 아이들 답지 않게 의젓하다. 어린 나이에도 부모님을 이해하며 마냥 그들에게 어리광을 부릴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묵묵히 받아들인다. 그렇게 집 안에서 사랑 받고 싶고 관심 받고 싶은 15살 어린 여자아이의 욕망을 천천히 누그러뜨린다.

 

 

 

집 밖에서

은희의 욕망은 그렇게 집 안에서 집 밖으로 흘러간다. 남자친구 지완과는 비상계단에서 수줍은 첫키스도 하며 자기 나름대로 세계를 넓혀가는 은희지만 지완과의 연애도 불안정하다. 안정감을 받고 싶은 은희는 걸핏하면 마음이 바뀌는 남자친구 지완에게 실망하게 되고 이 실망감을 후배 유리를 통해 채우려 한다. 자기를 무조건적으로 좋아해주는 유리를 만나며 집 안에서 그리고 남자친구에게서 조차 얻지 못했던 특별한 감정에 도취된다. 유리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면서 자신을 진지하게 좋아해주는 사람에게 제멋대로 구는 은희에게 유리는 “언니, 그건 저번 학기잖아요”라는 쿨한 이별멘트를 날리며 사라진다. 그런 은희에게 학원선생님 영지는 유일한 삶의 도피처다.

 

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 ‘얼굴을 아는 사람은 천하에 가득하지만 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은희가 한문학원 교실에서 영지를 처음 만났을 때 배운 말이다. 은희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영지 선생님 뿐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걸까. 영지는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알아채지 못한 은희의 외로움을 알아봐 주고, 그 마음을 혼자 달래는 법도 알려주며, 은희가 스스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시야를 확장해 준다. 이 영화에서 감독은 영지라는 인물을 통해 불안정한 10대 소녀에게 있어서 온기 어린 눈길을 가진 한 사람의 어른이 얼마나 소중하고 의미 있는 존재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에게 어떤 어른이 될 것인지를 권해온다.

 

 

 

 

 

사회는 개인을 어떻게 뒤흔드는가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한국 사회를 깜짝 놀라게 한 큰 사건들이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1994년 10월21일, 압구정과 마장동을 잇던 성수대교가 붕괴되는 큰 사건이 일어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수희는 둘도 없는 친구들을, 은희는 소중한 영지 선생님을 잃게 된다. <벌새>에서는 모든 캐릭터마다 각자의 이야기가 분명히 존재한다. 오빠 학비를 대기 위해 학교를 다니지 못했던 엄마도, 성인 남자가 자기를 때릴까봐 무서웠다는 친구 지숙도, 어떻게 보면 은희보다 집안에서 더 큰 차별을 겪고 친구들까지 모두 잃어버린 수희도 모두 각자의 이야기 속에서 여전히 삶을 이어나간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파생되어지는 에너지에 관심이 많다고 한 김보라 감독은 인간의 생명력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어렵고 힘든 불행한 고리를 연결하고 있는 또 다른 희망적 연결성’. 인간은 굉장히 약해보이고 쉽게 바스라질 것 같지만 항상 고난과 역경을 툭툭 털고 일어난다. 그 끈질기고 희망적인 생명력이 서로를 연결해주는 것이다. 비록 영지를 다신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영지의 가르침으로 불완전했던 은희는 조금 더 큰 사람으로 성장하게 된다.

 

 

 

벌새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조류이자 1초에 날갯짓을 수십 번 해야 날 수 있는 새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서 남들보다 더 많은 날갯짓을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만큼 다른 새들이 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벌새는 가장 비행 능력이 뛰어난 새로 후진 비행, 체공, 급선회, 전방위 비행 등등 다양한 비행 능력을 구사하며 공간의 제한 없이 자유롭게 날 수 있다. 영화 제목인 ‘벌새’는 아마도 은희를 뜻하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벌새처럼 작고 누구보다 힘찬 날갯짓으로 매일을 살아가는 많은 ‘은희’들이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며 자유롭게 비상하는 그 날까지, 그들의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 무너지지 않는 사랑과 다정한 손길이 함께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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