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난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만 안 풀리는 상황, 그로 인해 생기는 시기와 질투, 그리고 그 감정에 괴로워하다 결국
무너질 것 같은 인물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이 드라마는 단순한 성장 서사가 아니라 ‘무가치함과 싸우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황동만은 20년째 영화감독 데뷔를 준비 중이며, 대학 영화 동아리 선후배 사이인 8인회 중 유일하게 20년 동안 데뷔를 하지 못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누구보다 많이 떠들고, 세상 모든 영화를 신랄하게 까대는 성격이다.
어쩌면 그는 그렇게라도 해야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일까,
그 모습이 마냥 가볍게 보이지는 않았다. 실제로 그는 남들이 자는 시간, 이른 아침에 산 중턱에 올라가 자신의
이름을 외치고 스스로 “네”라고 답하는데,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었지만
보다 보니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스스로라도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방식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더 씁쓸하게 다가왔다.
변은아는 영화사 최필름 소속 기획 PD로, 한때는 ‘도끼’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시나리오를 무섭게 까던 인물이었지만 지금은 조직 안에서 점점 밀려나며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다.
남자친구가 떠나거나 회사에서 관계가 틀어질 때마다 아홉 살 때 방치되었던 기억으로 돌아가 코피를 쏟는다는 설정은,
이 인물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상태인지 보여주는 장치처럼 느껴졌다. 그 감정이 너무 극단적이라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결국 변은아 역시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는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이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들’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계속 보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것을 아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계속해서 버티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보고 있으면서도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콘텐츠를 보면 완벽한 인물보다 어딘가 부족하고 불안정한 인물들이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잘난 사람들 사이에서 느끼는 열등감, 나만 뒤처진 것 같은 감각, 계속해서 비교하게 되는 현실 같은 것들이 지금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더 지금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2화에서 황동만이 말하는 대사였다.
“내 인생이 왜 네 마음에 들어야 되는데요?”
이 대사를 듣고,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증명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 때는 대학을 가기 위해, 대학생 때는 취업을 하기 위해, 취준생일 때는 왜 나를 뽑아야 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직장인이 되면 계속해서 성과를 내며 나를 써야 하는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 이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나를 증명하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 대사는 그 흐름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내 인생인데, 왜 계속해서
남들의 기준에 맞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이 장면이 단순한 대사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위로처럼 느껴졌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부분은 동만의 주변 인물이다. 8인회 사람들 중에서도 동만이 무너질 때, 끝까지 옆에 남아있는 친구 준환이 있다.
이 관계를 보면서 드라마가 말하고 있는 또 하나의 메시지를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고, 결국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어야 버틸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이 관계가 더 크게 다가왔다.
결국 이 드라마는 개인의 무가치함에 대한 이야기이면서도 동시에, 그 무너짐을 혼자가 아니라 함께 견뎌내는 ‘연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특히 황동만이라는 인물은, 20년째 데뷔를 하지 못한 이유가 단순히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한 번도 자신의 시나리오를 제대로 봐주고,
부족한 점을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더 안타깝게 다가왔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이 부족한지조차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지점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반대로 변은아는 계속해서 시나리오를 접하고 판단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만, 그 시나리오들이 대부분 버려지는 수준이기 때문에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능력과 결과는 다를 수 있다는 현실이 더 가슴이 아팠다.
이 두 인물이 만나면서 변화하는 과정도 인상적이었다.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건 결국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피난처가 되어주는 관계가 형성된다. 이 관계는 서로를 성장시키기보다는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주는 관계에 더 가깝다.
남들 다 나보다 잘 나가고 다른 세상에 사는 것처럼 느껴지는 상황 속에서, 이 둘에게는 서로가 유일하게 작아지지 않아도 되는 존재였을 것이다.
결국 이 드라마가 지금 시점에서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아직 이루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위로를 주는 것을 넘어서, 이미 스스로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지금의 시청자들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현실적이어서 더 오래 남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이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 하루를 살아내느라 수고했다고. 비록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그 하루를 버텨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남들의 시선에 맞춰 나를 증명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령 스스로가 무가치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끝까지 버티며 살아가는 그 자체가
결국 나를 가치 있게 만드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