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이 있는데, 여기에서 말하면 왠지 이루어질 것 같아서 이야기할게요. 친구들이 자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전자 음악에 조금씩 관심을 갖던 내가 우연하게 접한 가수, ‘키라라’. 이미 알 사람들은 다 아는, 한국 전자음악 씬에서 잘 나가는 아티스트였다. 음악의 첫 인상은 혼란하고 복잡스러운 사운드에 뭔가 마음 한 켠을 건드리는 서정적인 멜로디였다. 이상하게도 신나게 춤을 춰야 할 것 같은 역동적인 에너지를 가짐에도 서정적인 부분이 느껴지는 그 음악에 관심이 갔다.
“사실 3집은 트랜스젠더 힘내라고 만든 앨범인데, 다른 사람들은 위로받고 트랜스젠더는 죽어 버리니까 너무 짜증이 났던 거예요.
내 친구들은 다 죽었는데. 그래서 ‘살린 사람보다 살리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이 생각난다’고 SNS에 쓰기도 했고요. 저는 제 음악 중에서 절망을 이야기하는 4집이 제일 좋거든요.
그런데 아무도 그 얘길 안 하는 걸 보면 사람들은 희망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3집은 나이브했어요, 그냥… 절실한 마음이면 이뤄지는 줄 알았죠.”
“20대 때 있었던 (트랜스젠더) 친구들은 정말 99% 다 자살했습니다. 그리고 30대가 돼서 생존자들끼리 친구가 된 사람들은 있죠.
저는 세상이 갑자기 좋아질 것 같지는 않아요. 차별금지법이 생겨도 아마 반쪽짜리일 거고요.
저는 트랜스젠더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우리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사회성을 가지고 사람답게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지금은 DM이 너무 많이 와요. 제 노래가 살렸대요, 누구를. 하루에 한10개씩 오는 것 같아요. 근데 솔직히 다 살았을 거면서.”
– 그 노래가 없었어도요.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출처_[인터뷰] 우리는 ‘포기한 트랜스젠더’가 만든 음악에 맞춰 춤을 출 것이다 | 여성신문
앨범 소개글을 보면 키라라의 음악에 ‘슬픔’이라는 감정이 중심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친구들을 잃은 슬픔, 자신의 정체성을 둘러싼 사회의 시선, 나라는 존재를 인정받고 싶은 욕구 등 키라라가 음악을 만들면서 겪은 모든 감정들이 음악에 담겨있다. 특히나 해당 곡 <Wish>의 경우, 더 이상 다른 친구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고 있으며 울면서 춤출 수 있는 음악이라는 웹진의 글에 걸맞게 눈물을 차오르게 하는 슬픈 멜로디에도 몸을 흔들게 하는 에너지를 준다. 그 아이러니한 부분이 왠지 더 감정을 건드리는 힘이 있었다. 슬픔을 숨기기 위해 웃는 사람이 더 안쓰러운 것처럼, 이 음악에도 그러한 감정을 억지로 끌어안았지만,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을 건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진행한 해당 무대에서 이 음악의 가치를 더욱 선명하게 발견했다. 신디사이저 인트로가 재생되자마자 바로 따라부르는 사람들, 음악에 그저 몸을 맡기고 즐기는 사람들, 키라라를 외치며 응원하는 사람들의 모습. 음악과 아티스트를 둘러싼 슬픔과 절망, 편견, 혐오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과는 달리 그저 희망에 가득찬 모습으로 보인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음악 아래에서 자유롭고 서로에게 애정어린 시선을 던지는 것처럼 보였다. 음악이 사람 안에 남아 있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연대를 이끌어내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이 장면은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보다 끊임없이 분류하고 판단하는 분위기 속에서, 그 공간만큼은 아주 잠시 다른 방식의 세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티스트의 정체성이 무엇이든 상관이 없다. 그냥 음악이 아름답고, 그런 음악을 전달해주는 키라라가 아름답고, 그런 음악을 즐기는 모든 사람들이 아름답다.
키라라의 음악은 그 자체로 아티스트 본인을 살아있게 하고, 누군가에게 살아갈 힘을 주고, 위로를 건넨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가 아름답고, 모두가 그저 존재하는 자체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Wish>의 메시지를 이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전달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