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에는 성역이 없다 | 프로보노

 

드라마에서 전문직을 다루는 장르는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법조물은 오랫동안 안정적인 인기를 유지해온 장르다.

각종 범죄 사건과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판사, 검사, 변호사 같은 법조계 직업군 역시 드라마의 중심 소재가 되었다.

최근에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직군과 전문 영역까지 세분화되며 장르 자체가 확장되고 있다.

이혼 전문 변호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낸 <굿파트너>, 어쏘 변호사들의 현실을 담아낸 <서초동>, 자폐 스펙트럼 변호사의 시선을 그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까지.

그리고 이제는 공익변호사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까지 등장했다. 바로 <프로보노>이다.

평범한 약자를 넘어선 사람들

보통 공익변호사를 다루는 작품이라고 하면 사회적 약자, 노동자, 장애인 같은 전형적인 의뢰인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프로보노>는 조금 다르다.

이 드라마는 어린 소년, 유기견, 장애인 문제를 넘어 겉으로는 약자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까지 조명한다.

청각장애인이 사용하는 수화, 그리고 청각장애인이 자녀인 코다까지 등장해 더 자세히 조명한다.

그렇기에 더 사회비판적이다. 대법원 부장판사 출신 강다윗은 누명을 쓴 채 공익변호사 팀 ‘프로보노’에 들어가게 된다.

사과박스에 현금이 가득 담긴 영상이 공개되고, 아무도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누명이지만 그는 진실보다 살아남는 데 급급한 상황에 놓인다.

승리만 하던 엘리트 판사가 법의 보호조차 온전히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현실 속으로 떨어지는 순간이다.

 

화려해 보이지만 가장 외로운 사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사건은 ‘국민 아이돌 엘리야 에피소드’였다.

엘리야는 지속적인 스토킹과 악성 댓글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유명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쉽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다.

오히려 사생팬 문제를 해결하려다 여고생 팬들을 폭행했다는 누명을 쓰게 되고, 이후에는 대표인 엄마와 친오빠인 매니저에게 재산까지 빼앗긴 채 전속계약 해지 소송과 친족상도례 문제에 휘말리게 된다.

겉으로 보면 그는 화려한 삶을 사는 스타다. 그러나 실제 모습은 전혀 다르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해 머플러를 꽁꽁 두른 채 혼자 촛불집회에 나가기도 하고,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가족 관계 때문에

부당한 계약 앞에서도 쉽게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결국 엘리야 역시 우리 주변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는 평범한 약자였다.

 

“대중”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폭력

엘리야 사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악플과 스토킹 문제를 다루는 재판 장면이었다.

재판에서 유난희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대중이 누굽니까?”

우리는 흔히 악성 댓글과 여론을 이야기할 때 ‘대중’이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사용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 거대한 여론처럼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소수의 집착과 악의일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극 중 밝혀진 댓글 250개 중 168개가 동일인의 작성이었다는 사실은

온라인 폭력이 얼마나 왜곡된 구조 위에 존재하는지를 보여준다.

이어지는 대사는 더욱 인상 깊다. “사람들은 흔히 스타를 보며 부러워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외롭고 약한 사람들입니다.”

반짝이는 조명 아래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상처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는 연예인을 단순한 공인이 아니라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그리고 익명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타인을 공격하는 사회 분위기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법이 닿지 못한 곳

<프로보노>가 인상적인 이유는 단순히 재판에서 승리하는 통쾌함만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반복해서 질문한다. “법은 과연 누구를 보호하고 있는가?”

극 중에는 “법이 그 문지방을 넘지 않으면 그 문 안에는 잔인한 무법지대가 펼쳐진다”라는 대사가 등장한다.

특히 친족상도례 문제를 다루는 과정은 인상적이다. 70년 넘게 유지된 법 조항은 ‘법적 안정성’이라는 이름으로 유지되고 있었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오랜 시간 고통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프로보노 팀은 단순한 승소에 머물지 않는다. 아예 국회로 향한다. “법도 시대가 바뀌면 바뀌어야 한다.”

이 대사는 법 역시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야 한다는 드라마의 메시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승리보다 중요한 것

강다윗이 들어오기 전의 프로보노 팀과 강다윗은 서로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 같은 존재였다.

강다윗은 승리만 하던 사람이었고, 프로보노 팀은 이기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함께 사건을 해결해나가면서 프로보노 팀은 ‘이기는 방법’을 배우게 되고, 강다윗은 승리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배우게 된다. 그리고 드라마는 마지막까지

현실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길 수 있을까요?” , “모르죠. 질 수도 있죠. 근데 말이에요. 지더라도 오늘의 패배를 발판으로 세상은 반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겁니다.”

이 대사는 단순한 희망론이 아니다. 세상은 거대한 한 번의 승리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작은 싸움과 실패들이 쌓이며 조금씩 변해간다는 의미에 가깝다.

 

사회풍자는 결국 사람을 향한다

최근 법조 드라마들은 점점 더 세분화되고 있다.

그만큼 사회문제 또한 복잡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프로보노>는 그중에서도 가장 직접적으로 사회의 사각지대를 들여다본 작품이었다.

악플과 스토킹, 연예 산업, 친족상도례, 노동 문제. 이 드라마는 법과 제도가 보호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비춘다.

그리고 말한다. 약자에는 정해진 얼굴이 없다고. 화려해 보이는 사람도, 강해 보이는 사람도 누군가에게는 보호받지 못하는 약자일 수 있다고.

그렇기에 이 드라마의 사회풍자는 단순히 제도를 비판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결국 사람을 바라보지 못하는 사회를 향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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