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치병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17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드라마 ‘블러디 플라워’의 주인공 ‘이우겸’을 설명하는 문장이다.
‘블러디 플라워’는 연쇄살인범 ‘이우겸’과 그를 변호하게 된 변호사 ‘박한준’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우겸’은 비록 17명을 살해했지만, 그의 주장대로 그가 만든 치료제가 모든 불치병을 낫게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살인자인가, 아니면 구원자인가?
작품은 크게 ‘이우겸’의 재판이 이루어지는 1막과 치료제 개발의 배후가 밝혀지는 2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1막까지 그는 미스터리한 연쇄살인범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감정의 동요나 죄책감 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사체를 토막 내 보관하는 잔혹함을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조사 내내 여유로운 표정과 메트로놈을 연상케 하는 습관들-손가락으로 책상 위를 두드리거나 입으로 ‘똑딱’ 소리를 내는 행동-은 인물의 미스터리함과 스산함을 증폭시킨다.
하지만 치료제를 둘러싼 진짜 배후가 밝혀지는 2막을 기점으로 그는 가해자보다는 피해자에 가깝게 그려진다. 특히 부자지간을 연상시키는 ‘박한진’과의 유대, 그가 아이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따듯함은 시청자들의 정서를 흔든다. 애초에 그가 살해했던 인물들이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전과자라는 사실 역시 그가 명백한 가해자로 비춰지는 것을 방지하는 장치다. 시청자들은 ‘이우겸’의 살인에 대한 심리적인 정당성을 느끼며 그를 ‘절대악’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 대신 ‘절대악’의 자리는 그를 이용하여 돈과 권력을 취하려 했던 자들이 차지한다.
다만 이러한 그의 포지션 변화가 다소 갑작스럽게 느껴져 인물에 대한 해석에 혼란을 주기도 한다. 잔혹하게 살인을 저지른 그가 후반부에 아이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는 다정함과 큰 희생정신을 보이는데, 이러한 그의 행동은 ‘내가 만든 치료제로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는 신념 혹은 목적의식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그에게 살인은 치료제 개발을 위해 불가피한 행위이며, 아이들을 치료하는 것 역시 자신의 신념을 실현하는 방식인 셈이다. 하지만 살인을 저지르던 그의 섬뜩한 표정과 아이들의 손을 감싸 쥐는 모습은 서로 대조되며 생명에 대한 그의 신념에 의문을 갖게 한다.
그가 이러한 신념을 갖게 된 계기 역시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과거 그는 공부에 열의를 보이는 평범한 의대생일뿐, 연구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나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비춰지지 않는다. 이런 그가 일련의 사건들로 인하여 인격적인 변화와 연구에 대한 집착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그를 이토록 강력히 추동시킨 것은 과연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이러한 인물에 대한 의문은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17명을 죽인 연쇄살인범’이라는 캐릭터의 신선함과 캐릭터가 지닌 흡인력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17명을 죽인 연쇄살인범’이라는 캐릭터는 그 자체로 딜레마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며, 인물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따라서 시청자들은 그가 비록 살인자라고 하더라도 그의 신념과 삶을 이해하고 싶어 하며, 앞서 언급한 여러 의문 역시 이러한 호기심의 결과이다. 따라서 작품의 후반부에서 ‘이우겸’을 또 다른 피해자로 그려내는 것 대신, 그의 신념과 인간성을 밀도 있게 탐구하는 방향 또한 이 작품만이 보여줄 수 있는 독보적인 흥미를 선사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