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지보다 못한 〈4등〉,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울림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감동 스포츠 영화’에는 클리셰처럼 내려오는 법칙이 있다. 만년 꼴찌나 재능이 없는 주인공이 피나는 노력 끝에 마침내 메달을 목에 걸고 환하게 웃는 결말. 하지만, 수영장 레인 끝에서 4등으로 터치패드를 짚는 순간이 나의 결말이라면? 메달도, 박수도, 아무것도 없는 그 자리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2015년에 개봉한 정지우 감독의 영화〈4등〉은 관습적인 감동의 공식을 정면으로 거부한 채 침묵 속에서 시작된다. 1등만을 기억하는 세상에서 단 한 계단도 아닌 4등이라는 등번호를 달고 서 있는 아이의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 모두가 어느 순간 살아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12살 준호는 재능은 있지만 늘 4등에 머무는 수영 선수다. 재능이 있어 수영을 계속 시키기도 그렇다고 그만두게 하기고 애매한 4등. 그런 준호를 바라보는 엄마 정애의 마음은 한없이 타들어간다. 한편, 새로 부임한 코치 광수는 폭력적인 훈련 방법으로 준호를 훈련시키게 되고 엄마는 결과를 위해 눈을 감는다. 영화는 이 세 사람의 관계를 촘촘하게 엮으며, 승리자가 아닌 이들의 노력을 늘 실패로 규정하는 한국 사회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맞아서라도 1등만 하면 돼?”

영화를 보면서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주인공 준호의 엄마가 “나는 준호가 맞아서라도 1등만 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이 대사를 듣는 순간 우리가 성공이라는 결과 아래 얼마나 많은 과정의 폭력을 묵인하고 있었는지를 느끼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4등>이 단순한 ‘체육계 폭력 고발 영화’에 머물지 않는 이유는, 코치 광수를 단순한 악인으로 그리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집요하리만큼 그의 과거를 파헤쳐 가고 그 끝엔 그 역시 한때 준호와 같은 피해자의 자리에 있었고, 똑같은 방식으로 길들여졌으며, 그렇게 해서 1등이 됐다. 광수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자신이 그토록 혐오해왔던 스승의 모습 그대로 준호에게 매를 든다. 그에게 폭력은 사랑의 언어였을까, 아니면 그렇게 믿도록 훈련되어진 것일까.

 

 

 

 

사랑하는 일을 향한 어린아이의 발차기

이 영화가 가장 큰 감동으로 도달하는 순간은 주인공 준호가 폭력적인 코치와 극성스러운 엄마의 품을 벗어나 홀로 수영장으로 뛰어들 때 다가온다. 스크린 속에 아름다운 미학을 잘 남기는 감독으로 유명한 정지우 감독은 이 영화에서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빛의 산란과 물의 흐름으로 준호가 수영장에서 혼자 수영하는 모습을 아름답게 담아냈다. 준호에게 있어서 이 순간만이 유일하게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치열한 전쟁이 아니라, 12살짜리 소년이 온전히 자유로워지는 시간이다. 준호는 마지막 대회에서 코치도 엄마도 없이 스스로의 의지로 물을 가르며 달린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원하던 결과를 이뤄내고 만다. 영화가 주는 최고의 감동은 준호가 메달을 땄다는 사실이 아니다. 타인의 압박과 폭력의 사슬을 끊어내고, 스스로 사랑하는 것의 본질을 찾아냈다는 점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1등을 향한 집착’과 그 뒤에 숨은 폭력의 굴레를 직시하게 만든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보고 나서 한참을 멍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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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한 점의 부끄럼에 대하여

이 단백미는 풍경을 한 번 더 보게 만들고, 인물의 표정을 오래 바라보게 하며, 대사 한 줄을 그냥 흘려보내지 못하게 만든다. 아무것도 과하지 않기에, 관객은 자연스럽게 그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게 된다. 과도한 상업성과 거리를 두고 있는 그 태도. 이야기를 소비하게 하기보다 마주 보게 만드는 그 태도. 나는 그 점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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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으로 만드는 아이돌, 프로듀스 101

2016년에 데뷔하고 2017년에 해체한 걸그룹 I.O.I (아이오아이)를 아는가? 최근 데뷔 10주년을 기념해 아이오아이가 재결합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10년 전 오직 약 8개월 활동했음에도 여전히 회자되는 이 팀, 사실 당신이 뽑았을지도 모른다. 한국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 열풍을 일으켰던  ‘프로듀스 101’ 시즌 1이 그들의 시작이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하루 종일 ‘픽미 픽미 업’을 불러댔다. 그 뒤엔 ‘얌얌’. ‘핑거 핑거팁스’. 피구를 하며 불렀던 기억이 있다. ‘당신의 소녀에게 투표하세요!’ 내가 걸그룹을 만드는 데에 일조할 수 있다니. 그리고 생각했다. ‘세상엔 자신의 꿈이 간절한 사람이 많구나.’     ‘프로듀스 101’은 Mnet에서 2016년 1월부터 4월까지 방영한 11부작 예능이다. 50여 개의 기획사에 소속된 101명의 여자 연습생 중, 서바이벌을 통해 살아남은 11명만이 새 걸그룹으로 데뷔할 수 있었다. 모든 방식은 ‘국민 프로듀서’의 투표. 말 그대로 오로지 시청자의 투표로만 만들어지는 걸그룹이었다.    레벨 테스트, 그룹 배틀 평가, 포지션별 심층 평가, 콘셉트 평가, 데뷔곡 평가를 거치며 총 4번의 순위 발표식이 이루어진다. 완벽한 고음을 뽑아내고 엔딩 요정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그룹 배틀 평가 <다시 만난 세계>, 그 시절 장기 자랑에 무조건 있었던 포지션 평가 <BANG BANG>,  명곡이라 불리는 콘셉트 평가 <같은 곳에서>까지.     또한 ‘프로듀스 101’ 시즌 1 이후로 프로듀스 시리즈는 세 차례나 더 지속되었으며, 이외에도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이  ‘프로듀스 101’ 시즌 1의 화력은 모두가 인정하는 바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 추억에 이리도 열광하는 것일까? ‘프로듀스 101’이 있기 전까지의 오디션들은 심사위원이 존재했다. 전문가의 냉정한 평가와 이에 따른 성적이 프로그램을 결정했다. 그러나 ‘프로듀스 101’은 달랐다. 시청자가 프로듀서가 되어, 소녀들의 운명을 결정한다. 연습생들은 시청자를 ‘국민 프로듀서님’이라 칭하며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까지 한다. 당시 시청자들은 관객을 넘어서, ‘나의 원픽 소녀’를 데뷔시키기 위해 매일 투표하고 홍보하는 열정적인 기획자였다.     연습생들의 서사 또한 한몫했다. 소속사에서 연예인의 형태로 완벽하게 준비하고 나온 완성형 아이돌이 아닌, 연습생 신분으로서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춤 실력이 부족해 눈물을 흘리던 연습생이 무대 위에서 완벽하게 안무를 소화해 내는 과정은 성장 드라마 같았다. 신비주의는 제로. 과정의 가치를 보여주었다. 이는 ‘국민 프로듀서’에게 감동을 전했으며, ‘내가 이 아이를 데뷔시켜야 한다’는 팬덤의 의지로 이어졌다.   최종 데뷔 순위권에 안착한 11명은 Ideal Of Idol의 약자인 I.O.I로 데뷔했다. 당대 TWICE, Red Velvet, BLACKPINK (일명 트레블), 1위 킬러였던 여자친구 등 여러 인기 걸그룹들이 치고 올라오는 상황에서도 이들과 맞먹는 팬덤을 가지고 있었다. 음악방송 9관왕이나 신인상을 3차례나 수상하는 것은 물론, 활동 기간이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속옷을 갈아입을 시간만 주어져도 너무 감사했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바쁜 스케줄을 소화했다. 시청자가 직접 뽑은 걸그룹인 만큼, 사랑을 받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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