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드라마 팬들 사이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용두사미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용두사미는 시작은 창대하지만 끝은 미약하다는 뜻이다. 드라마로 치면 초반과 중반은 완벽했지만 결말에서 아쉬움을 남긴 작품을 의미한다. 인터넷에서는 말 그림으로 표현될 정도로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다.
그만큼 드라마에서 결말은 중요하다.
결말이 좋지 않으면 재시청이 어려워지고, 작품 전체에 대한 평가도 달라진다. 그래서 나는 드라마를 볼 때 종종 종영 이후에 정주행을 시작하기도 하고, 리뷰 역시 반드시 종영작만 작성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여러 작품에 “데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스물다섯 스물하나>다.

나는 이 드라마의 굿즈를 구매했고, 좋아하는 대사를 외울 정도로 반복해서 봤다. 그렇기에 이 글은 단순히 “주인공이 이어지지 않아서 화가 난 시청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좋아했던 작품이기에 더 아쉬웠던 부분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무너진 것은 로맨스가 아니라 서사였다
많은 사람들이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결말에 실망한 이유를 나희도와 백이진의 결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현실적인 이별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문제는 그 과정이었다.
드라마는 초반부터 수많은 복선과 떡밥을 던진다. 최근 드라마들이 점점 정교한 구조를 갖추게 되면서 복선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 역시 그런 작품이었다.
현재 시점의 나희도와 딸 김민채, 오래된 일기장, 과거를 회상하는 구조까지.
시청자들은 자연스럽게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며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그런데 후반부로 갈수록 그 연결고리가 희미해진다.
초반에 중요하게 보였던 장치들이 충분히 회수되지 못하고, 현재와 과거의 관계 또한 점점 약해진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왜 이런 복선을 넣었을까?”라는 의문이 남게 된다.
그래서 결말 자체보다도 서사를 쌓아 올리는 과정과 마무리 방식 사이의 괴리가 더 크게 느껴졌다.
성인이 된 이후 달라진 이야기
개인적으로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크게 세 시기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다섯 친구가 학생이었던 시절.
두 번째는 성인이 된 이후의 이야기.
세 번째는 고유림이 러시아로 귀화한 이후다.
특히 후반부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고유림의 귀화 서사였다.
가족의 빚을 해결하기 위해 러시아 국적을 선택하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비난받는 길을 택한다.
심지어 백이진에게까지 자신의 이미지를 망가뜨려 달라고 부탁한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오해가 쌓이고, 다섯 친구의 관계 역시 급격하게 흔들린다.
물론 현실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문제는 작품이 보여주던 분위기와의 간극이었다.
12화까지의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청춘의 낭만과 성장, 우정과 희망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그런데 종영이 가까워질수록 현실의 무게가 급격하게 커진다.
현실을 다루는 것은 좋다.
다만 그 변화가 너무 급격해서 마치 다른 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서 많은 시청자들이 “작가가 바뀐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가장 빛났던 순간은 12화였다
내가 가장 많이 재시청한 회차는 12화다.
공교롭게도 12화 마지막 장면에서 희도, 유림, 지웅, 승완은 학생에서 성인으로 넘어간다.
개인적으로는 이 지점이 드라마가 가장 아름답게 빛나던 순간이었다.
청춘 특유의 무모함과 가능성,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이 가장 잘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작품의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래서인지 많은 시청자들이 12화를 하나의 분기점처럼 기억한다.
그럼에도 계속 보는 이유
그럼에도 나는 이 드라마를 계속 본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백이진이라는 인물 때문이다.
백이진은 UBS 스포츠국 신입 기자가 된 이후 수많은 좌절을 겪는다.
고졸 출신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선배들에게 모욕을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주변 사람들의 든든한 어른으로 남는다.
희도가 금메달 판정 논란으로 흔들릴 때 가장 먼저 손을 내민 사람도, 유림이 힘든 선택을 해야 할 때 응원을 건넨 사람도 백이진이었다. 뿐만 아니라 지웅이가 유림이에게 고백하는 것도 은근슬쩍 도와주고 승완이가 학교에서 문제가 생기자 더 크게 번지지 않도록 수습해주는 것 역시 이진이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는 “고딩들 일은 고딩끼리 알아서 해. 나 직장인이야. 이럴꺼면 임용을 봤지”라고 투덜거리면서도 결국 가장 먼저 움직인다.
백이진은 단순한 남자 주인공이 아니라 누군가의 가능성을 끝까지 믿어주는 사람이었다.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대사들
무엇보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명대사가 많은 작품이다.
시대적으로는 IMF 외환위기와 코로나19를 지나고, 개인적으로는 성공과 실패, 희망과 좌절을 함께 다룬다.
그래서 작품 속 대사들이 더욱 깊게 남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현재 시점에서 등장한다.
“실력이 비탈처럼 느는 것 같지? 아니야. 실력은 계단처럼 늘어. 그런데 사람들은 계단 끝쪽에서 포기하고 싶어 하지.”
이 대사는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떠올리는 문장이다.
하지만 내가 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히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만 전달하지 않기 때문이다.
12화에서 희도는 이런 말을 한다.
“포기도 도전이에요.”
운동선수에게 포기는 누구보다 어려운 선택일 수 있다.
그리고 작품은 그 선택마저 존중한다.
계속 가는 사람도, 멈추는 사람도 모두 응원한다는 메시지.
그래서 이 드라마는 단순한 성장 드라마를 넘어선다.
결말은 아쉬웠지만, 청춘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분명 결말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긴 작품이다.
복선 회수와 서사 연결, 후반부 전개는 지금도 호불호가 갈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가진 가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청춘이 가진 가능성과 불안, 우정과 성장, 그리고 서로를 일으켜 세우는 힘.
그 모든 순간들은 여전히 빛난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이 드라마를 다시 본다.
결말은 아쉽지만, 그 과정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작품은 완벽하지 않아도 오래 기억된다.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바로 그런 드라마다.



